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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Apr 13. 2018

케이퍼 장르의 유희적 비틀기

로건 럭키 Logan Lucky(2017)

어쩐지 소리 소문 없이 극장에서 내린 것 같아 아쉽다. <로건 럭키>는 분명 꽤 재미있는 하이스트 무비인데 말이다. 이 계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오션스> 시리즈를 감독했던 스티븐 소더버그가 새로이 선보인 신작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유희적 비틀기를 시도한 이번 영화에선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스피디한 화면 전환과 화려한 연출로 대표되는 케이퍼 장르의 특성은 부러 배제시켰다. 대도시의 화려한 야경을 보여주는 샷이 당연히 있어야할 것 같은데 이 감독이 영화의 배경으로 고른 곳은 정반대로 웨스트 버지니아의 촌동네다. 착 붙는 정장 차림의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도 없다. 대신 불운하기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 로건 형제가 극의 중심이다. 형인 지미(채닝 테이텀)는 공사장 인부로 일하다 한순간에 해고 당한 실직 이혼남이고, 동생인 클라이드(아담 드라이버)는 동네 바에서 일하는 한쪽 팔 없는 바텐더로 시시껄렁 시비걸어오는 불량배들이나 상대하는 게 일상이다. 뭐 하나 마음대로 풀리는게 없는 이 시골 동네 블루 칼라 형제가 모의한 범죄극은 감옥에서 복역 중인 금고 폭파 전문가 조 뱅(다니엘 크레이그)과 형제들이 가담하며 예상보다 복잡해지고 만다. 과연 로건 형제는 불운의 사슬을 끊고 제대로 된 한탕에 성공할 수 있을까.



<로건 럭키>는 이상한 지점에서 자꾸 웃음을 유발한다. 이 영화의 개그는 세련되고 매끈하기보다는 어쩐지 투박하고 한박자 늦다. 일반적인 케이퍼 무비의 질주하는 속도감을 기대했다가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케이퍼 무비하면 각 분야 프로페셔널들의 팀업을 보는 재미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로건 럭키>의 인물들은 도대체 신뢰할 수가 없다. 심지어 이 작전에서 나름대로 리더라 할 수 있을 지미조차 그다지 믿음직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초짜들의 왁자지껄 오합지졸 소동극도 아닌데(이 영화는 전혀 소란스럽지 않다. 몇몇 스틸컷만 봐도 알겠지만 인물들 얼굴에 표정이랄 게 별로 없기도 하다), 의외로 이들이 꽤나 철저하고 담대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좀 얼기설기한 것 같으면서도 작전은 매끄럽게 이어져 나간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건 정말 설명하기 힘든 묘한 재미다. 그래서 이 영화엔 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이 미묘한 톤에 익숙해지면 그 어떤 영화보다 유쾌하게 즐길 수 있을 작품이다.


코미디에 있어서는 특히 다니엘 크레이그의 조 뱅 캐릭터가 압권인데, 나는 심지어 이 캐릭터의 이름만 봐도 웃음이 날 것 같다.(어쩜 이름도 조 뱅인거냐, 웃기게!) 나는 그가 지하 땅굴 속 벽면에 화학식을 써가며 로건 형제에게 강연하는 장면을 보고 일찌 감치 내 마음 속 올해의 코미디 영화로 점지했다. (이 배우가 이렇게 웃길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007 때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그외 다른 출연진들도 상당히 핫한 편이다.(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묻힌건지 모르겠다. 아쉬워라.) 소더버그와 함께 할 때 채닝 테이텀은 확실히 편해 보인다. 이번 영화 역시 <매직 마이크>처럼 채닝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출발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타, 아담 드라이버의 속내를 알기 힘든 무표정과 고저없는 목소리도 매력적이다. <패터슨>에서도 그렇고, 어째 요즘 이 배우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영화 후반부에서야 뒤늦게 모습을 드러내는 힐러리 스웽크의 얼굴도 반갑고 비중은 크지 않지만 세바스찬 스탠은 역시나 잘생겼다.


그러니까, 이미 조금 늦어버렸지만 뒤늦게라도 이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리한나의 <Umbrella>가 아닌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를 택하는 하이스트 무비는 정말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물론 조금 어이없고 허무할 수도 있다. 아쉽게도 세련된 하이스트 무비가 주는 질주감도 없다. 어쩌면 당신의 개그 취향엔 안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 명 중에 세 명 정도에게는, 이 영화가 끝내주게 웃긴 영화일 거라 나는 확신한다.(그리고 결말부는 은근히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러니 시도해보시라. 당신이 그 세 명 중 한 명일줄 어떻게 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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