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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May 18. 2018

이 히어로는 약속을 지킵니다

데드풀 2 Deadpool 2(2018)

1.

'가족 영화'라는 문구를 내세워 프로모션하는 걸 보며 웃었었다. 뻔뻔하고 가증스러운게 딱 데드풀답네. 어디서 이렇게 씨알도 안먹힐 구라를.


2.

그런데 뚜껑을 열고보니, 이 어이없는 약속을 진짜 지킨거다. 다른 영화도 아니고 데드풀이, 이렇게나 완벽하게 가족 영화라니. 예상치 못한 솔직함에 또 한 번 허를 찔렸다. 누가 데드풀을 입만 산 사기꾼이라 했나!


3.

굳이 스토리를 따지고 들자면, <데드풀2>는 <엑스맨>의 주제 의식과 <터미네이터>의 설정을 빌려온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엑스맨 시리즈가 꾸준히 제기해 온 뮤턴트 차별 이슈를 '파이어피스트(줄리안 데니슨)' 캐릭터를 통해 부각시키고, '케이블(조슈 브롤린)'이 터미네이터 롤을 맡아 스토 전개에 전환점을 만든다. 우리의 주인공 데드풀은 둘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역할이다.


워낙 산만하게 전개되는지라 이 스토리가 가진 나름의 의미가 크게 와닿진 않지만, 결국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보아 '안티히어로' 데드풀이 '히어로'로 거듭나는 일종의 성장담이라 할 수 있다. 히어로답게 실연의 상처를 선행으로 극복하고, 가족을 만들고, 친구를 지킨다. 우리 데드풀이 이렇게 달라졌어요!



4.

사실 데드풀의 성장은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데드풀의 가장 큰 매력은 불예측성에 있다. 캐릭터인 데드풀 A와 영화 데드풀 B가 있다고 하자. <데드풀1>은 A가 B와의 기싸움에서 기어이 이겨먹는 영화였다. 반면 <데드풀2>에서의 A는 조금 더 스토리에 종속적이다.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알고 그를 위해 캐릭터가 노력을 한다는 느낌이다. 다른 영화였다면 장점이었겠으나 데드풀이잖은가. 조금 더 관객과 영화의 머리 위에서 놀며 막 나가주길 바랐던 나로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5.

이건 사실 서사를 설득력있게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점이기도 하다. 데이빗 레이치는 장단이 명확한 감독인데 전작이 <존윅>, <아토믹블론드>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액션에는 일가견이 있으나 서사를 다루는 능력은 그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다. 애초에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이 아니기도 하다. 데드풀의 성장담이 특별한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이야기를 매끄럽게 전달하지 못한 탓으로도 보인다. 특히  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을 러셀(=파이어피스트) 캐릭터가 힘을 얻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다.



6.

그러나 그게 다 뭐가 중요하겠나. 데드풀을 보러 가는 관객이 대단한 스토리나 엄청난 감동을 기대할 리 없는데. 이번엔 또 얼마나 털어댈까- 우리가 궁금한 건 이것이다. 다행히도 혹은 당연하게도 데드풀이 가진 가장 거대한 능력, 재앙의 주둥아리는 여전하다. 셀 수 없이 많은 패러디와 인용으로 가득찬 대사들은 여전히 센스가 넘치고, 무엇보다 서브컬처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 느껴진다. 게다가 이 애정은 데드풀을 연기한 배우에게서 우러나온 순도높은 진짜배기라는 점이 더욱 덕후들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요소다. 마블과 DC,해리포터와 스타워즈를 넘나드는 데드풀의 입담은 심지어  패러디에도 서슴이 없는데, 이쯤되면 조롱도 재능으로 봐줘야 한다.


아무래도 서브컬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더 재미있게 볼 수 밖에 없다지만, 굳이 다 알진 못해도 상관없다. 나 역시 알아들은 농담만큼 못 알아챈 부분들도 많았지만 그냥 그 뉘앙스만으로도 어느정도 즐길 수 있었다. 원래 개그는 분위기를 타는거 아니겠나.


7.

데드풀보다 더 예측할 수 없는 매력을 뽐낸 캐릭터는 도미노다. 수송차를 추격하는 중반부의 로드액션씬은 역시 인생은 운빨, 다른 건 다 소용없구나를 느끼게 한다. 역대 슈퍼히어로 무비의 수많은 능력자 중 가장 부러웠다.



8.

카메오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한 분은 정말 눈을 의심했다. 방금 그 분인거 같았는데 맞나? 정말? 진짜?-를 반복하느라 잠깐동안 혼돈에 빠졌었다.


9.

그나저나 요즘 히어로 영화에는 타임슬립이 안나오는 데가 없는 것 같다. 일종의 만능키다. 워낙 히어로물 판이 커지고 이야기도 덩달아 커지다보니 신뢰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많이 써먹는 것 같다. 바꿔말하면 벌려놓은 이야기를 수습할 다른 방도를 못찾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적당히 벌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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