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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Oct 28. 2018

스타이즈본,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10월이 가기 전에, 오랜만에, 책과 영화.

1.

근래에 이직을 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보내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었고, 여전히 정신없는 와중이다. 온통 신경을 곤두세운 채 하루를 보내고 나면 녹초가 되어 잠들기 일쑤라 내 인생을 풍족하게 해줬던 많은 것들에서 의도치 않게 멀어지게 되었다. 영화라던가 책이라던가. 평생의 취미로 삼겠다며 야심차게 집으로 모셔온 기타도 요즘은 방 한구석에 방치되어서는 눈길이 닿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고 있다. 못돌봐줘서 내가 미안해.


2.

그럼에도 기대작들은 꾸역꾸역 시간과 노력을 들여 챙겨보고 있긴 하다. 한참을 고대하고 있었던 <스타 이즈 본>과 <퍼스트맨>도 당연히. 둘 다 좋았지만 의외로 <스타 이즈 본> 쪽에 더 마음을 뺏겼다.



37년작 이후 벌써 세번째 리메이크라는 이 영화의 스토리는 사실 특별할 게 없다. 성공과 몰락의 교차를 절절한 애정사와 엮어냈을 뿐이다. 그럼에도 <스타 이즈 본>을 보고나면 왜 2018년에 또다시 이 이야기를 리메이크하기로 결심했는지 이해가 된다. 클래식은 클래식인 이유가 있다.


<스타탄생>의 특별함은 이 영화가 끝나는 지점에 있다. 언뜻 뻔한 신파극으로 진행되는 듯 했던 이 영화는 엔딩에서 의외의 서늘함을 남긴다. 잭슨 메인의 자살에 이어지는 엘리의 추모공연 장면은 일면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인 것 같았던 스타탄생이 사실은 얼마나 냉정한 시선을 바탕에 깔고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세계관 안에서 승자는 패자의 철저한 실패 속에 만들어진다. 한 사람의 스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다른 한 사람의 스타가 가라앉아야만 하고, 그가 철저하게 몰락할수록 새로운 스타는 더 화려하게 빛이 난다. 로맨스의 외피 안에 자리잡은, 두 개의 별이 함께 빛날 순 없다는 슬프고 잔인한 시각이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 냉혹함을 마냥 거짓으로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많은 경우에, 대중은 한 사람의 철저한 승리를 원하니까, 지금도.


+ 당연하게도 노래가 무척 좋다. 레이디 가가의 가창력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의외로 귀를 사로잡는 쪽은 브래들리 쿠퍼. 저음으로 울리는 잭슨 메인의 목소리는 영화관을 다시 찾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3.

얼마 전에 책 한권을 선물받았다. 요즘은 책을 많이 못보기도 했고, 그나마도 주로 전자책을 이용하곤 했는데 역시 종이책이 가진 특유의 온도가 있다. 게다가 작가님이 직접 보내주신 선물이라 더 감동적이었고.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나는 사실 하루키스트는 아니다. 꼽아보니 의외로 읽어본 하루키의 소설이 얼마 되지 않더라.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하루키는 확고한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는 작가다. 어쩌면 일본 현대 소설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해준 작가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접했던 건 고고한 문학 소녀인척 하던 10대 시절이었다. 나는 '야매' 문학소녀였지만 '진짜'인 친구도 있었다. 하루키를 소개한 것도 그 친구였는데 도서관에서 <해변의 카프카>라는 책을 읽고 있다며 추천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난해하고 야해'라는 평이었는데, '난해하다'와 '야하다'라는 두 개의 단어가 모두 당시의 나에겐 아주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지적 호기심과 성적 호기심을 모두 자극하지 않나.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간략히 말하면 실제로 읽고 난 소감도 동일했다. 난해하고 야하더라. 여전히 나는 하루키 작품은 담백한 에로티시즘과 모호한 환상성이 특징이라 생각한다.


그밖에 하루키 소설에서는 인물들의 일상성도 매우 중요한데, 소소한 일상 속 어떤 특별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 감성은 일본 문학 특유의 장점이기도 하다. 특히 하루키가 그리는 일상에 빠지지 않는 소재는 바로 '술'이다. 작가 본인이 워낙에 애주가이다 보니(한때 바텐더이기도 했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도 당연하다는듯 일상을 술과 함께 한다. 그것도 아주 다양한 주종으로.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는 바로 이점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전작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에서는 팝스타들의 삶과 음악을 술과 엮어냈던 작가가 이번에는 하루키의 인생과 소설을 다채로운 술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애주가로서의 하루키의 면모와 특히 술자리에서 풀어내면 좋을법한 흥미로운 술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나처럼 하루키나 술에는 문외한인 사람도 혹하게 되니 하루키스트나 애주가라면 신이나서 책장을 넘기게 될테다.


중간중간 소개한 술과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들도 추천하고 있는데, 덕분에 슬라이앤더패밀리스톤의 음악에 한동안 빠져있기도 했다. 하루키 소설 속에 나온 바로 그 술을 마시며, 소설 속에 나온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지 않을까. 정신없었던 요즘의 시기가 조금 안정화되고 나면 하루키 소설 한 권을 골라잡고 조만간 시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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