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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Feb 14. 2019

19.1~2월의 영화

인디아일,아쿠아맨,주먹왕랄프2,글래스,스윙키즈,툴리

특별히 하는 일이 많았던 것도 아닌데 어쩐지 정신없었던 연말연초를 보내고 나니 벌써 이월 중순이 되어버렸다. 이래서야 19년 연말도 곧일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기 시작한다.


작년은 내게 꽤나 큰 변화들이 있었던 시기였다. 덕분에 영화나 책 모두에서 살짝 거리를 두게 되었던 게 좀 아쉽다. 작년 실적(?)에 대하여 내 나름의 결산기를 가지는 것도 은근한 재미 중 하나였는데 심지어 그것도 못했고 말이다. 뒤늦게나마 나를 행복하게 했던 영화들을 대충 꼽아보자면, <셰이프 오브 워터>, <레디 플레이어 원>, <팬텀 스레드>, <버닝>, <보리 vs 매켄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어느 가족>, <스타 이즈 본>, <죄 많은 소녀>,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 정도일 것 같다. 미처 챙기지 못한 작품들이 유독 많았던 해이기 때문에 아쉽게 놓친 작품들을 찾아보고 있기도 한데, <어둔 밤>,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미쓰백>, <툴리>, <린 온 피트> 같은 영화들을 때맞춰 보지 못한 게 좀 후회된다.


작년의 후회를 교훈삼아 더 늦기 전에 개봉작을 비롯하여 올해 연초에 본 영화에 대한 짧은 감상을 남긴다.


인 디 아일

가장 상업적인 공간에서 가장 감성적인 세계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작고 특별한 세계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한해를 시작한 건 다시 생각해도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대형마트라는 공간이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진 건 <아메리칸 허니>에서 샤이아 라보프 패거리가 계산대를 흥겹게 장악하던 장면 이후 오랜만. 밀집된 공간 속에 여백을 심고 삭막한 공기 속에 온기를 불어넣는 고요한 카메라가 인상적이다.


아쿠아맨

개봉주를 놓치고 뒤늦게 주말 조조로 보러갔더니 영화관에 나 혼자였다. 이 즐거움 때문에 나는 조조를 포기할 수가 없는 거다. 캐릭터와 서사는 여전히 촌스러웠고 전반적인 영화의 톤도 고르지 못한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보는 맛만큼은 있었던 영화. 적어도 ‘물’과 ‘바다’라는 배경만큼은 잘 활용했다. 다만 그보다 더 눈을 즐겁게 했던건 니콜 키드먼과 엠버 허드의, 그저 감탄만 나오는 자태였지만 말이다.


주먹왕 랄프2 : 인터넷 속으로

자주 회자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주먹왕 랄프>는 꽤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특히 바넬로피의 잔망스러운 캐릭터가 돋보였고. 후속편이 나온다기에 꽤나 기대했는데 이번 편의 재미는 의외로 바넬로피와 랄프의 조합보다는 디즈니의 브랜드 가치에 있었다. 마블, 스타워즈에 디즈니 프린세스까지 쉴새없이 등장하는 특급 까메오들을 반기다 보면, 대형 기획사 제작 아이돌들에 줄줄이 충성하는 팬의 순정이란 이런거겠구나 싶어진다.


글래스

<언브레이커블>을 나름대로 나만 아는(?) 수작으로 아끼고 있었는데 <23 아아덴티티>와 엮여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 시리즈가 되었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한동안 신뢰를 잃었던 감독이었지만 아직 특유의 강점만큼은 유지하고 있다는 걸 이 시리즈로 증명해냈다. <글래스>는 영화의 전체적인 진행이나 스토리보다는 이야기의 끝맺음이 더 인상적인 영화였다. 굳이 그런 엔딩을 선택했다는게 다시 생각해도 역시 흥미로운 지점.


스윙키즈

아무래도 이런 류의 대중영화가 비극을 선택하면 좀더 점수를 주고 싶어진다. 실제로무척 어려운 선택이었을 테니까. 캐릭터나 스토리의 기본틀은 식상하지만 만듦새가 매끈하고 무엇보다 음악과춤에 대한 욕구를 영상화한 감각이 좋은 편.


툴리

톰 행크스가 감독한 <댓 씽 유 두>에서 조연으로 잠깐 얼굴을 내비쳤던 앳된 얼굴의 샤를리즈 테론을 기억한다.그때도 이미 아름다운 이목구비로 눈길을 사로잡긴 했지만, 그 배우가 지금의 이런 연기자가될 줄은 정말 몰랐다. 제작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그녀의 최근 몇 년 사이 필모와 캐릭터는 갈수록 더 다채롭고 흥미로워지고 있다.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과 함께 한 <툴리>는 <영 어덜트>와 연달아 보면 더 좋을 작품이다. 섣부른 위로나 희망고문을 경계하는 섬세함과 타고난 미모마저 잊게 만드는 배우의 진실된 얼굴이 무척 좋다. 극적 재미만이 아닌 영화적 메시지에 충실히 기여하는 반전의 사용도 납득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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