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다비 공항에서 마주한 첫 밤

낯섦과 두려움 속 작은 숨결


2012년 1월의 어느 밤, 나는 아부다비 공항에 내렸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마자 밀려든 공기는 내 예상과 달랐다. 중동은 무조건 뜨겁고 건조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곳의 밤공기는 묘하게 눅눅하고 짭조름했다. 바다의 기운이었을까, 아니면 사막 먼지의 흔적이었을까. 피부에 와닿는 그 첫 감촉은 단숨에 이방인으로서의 자각을 심어주었다.


20200627_232742.jpg 공항 나가는 중


공항 내부는 생각보다 단정했지만, 그 안의 공기는 숨 막힐 듯 복잡했다. 인도계 노동자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검은 히잡을 쓴 여성들이 조용히 옆을 지나쳤다. 공항 내부의 벽은 대리석으로 반짝였고, 천장은 높고 넓게 트여 있었지만 그 광활함조차도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상상했던 중동의 첫인상은 그렇게 한 순간에 틀어졌다. 현지인의 강한 존재감보다는 인도계 이주민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렸고, 공항 구석구석에 배어든 향신료 냄새가 낯설게도 친근하게도 느껴졌다.


나는 짐가방을 끌며 입국 심사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긴장으로 손에 땀이 맺혔고, 입안은 바싹 말라왔다. 심사관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차갑게 훑어봤지만, 예상 외로 몇 마디 질문만 던지고 금세 통과시켰다. 그제야 나는 억눌렸던 숨을 길게 내쉴 수 있었다.


택시 승강장으로 나서자 새카만 밤하늘과 반짝이는 공항 불빛이 대비를 이루며 눈앞에 펼쳐졌다. 검은 제복을 입은 택시 기사들이 무표정하게 줄지어 서 있었고, 무거운 손짓으로 나를 부르는 모습은 어쩐지 무뚝뚝했다.


나는 조금 주저하다가 가장 가까이에 있던 기사에게 다가가 목적지를 말했다. 기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얼굴을 몇 초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끄덕임에 마음을 놓으면서도, 여전히 심장은 두근거렸다.


택시에 올라 뒷좌석에 앉자마자 나는 창밖을 응시했다. 도로 위에는 불빛들이 흐드러지게 흩어져 있었고, 서울보다 훨씬 넓고 깨끗하게 뻗은 도로 위로 차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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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는 야자나무들이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바다가 보였다. 그러나 그 밤의 바다는 까맣게 잠들어 있었고, 멀리 고층 빌딩들의 불빛만이 도시의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간판에는 아랍어와 영어가 나란히 쓰여 있었는데, 익숙한 영어조차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택시 안 라디오에서는 아랍어 뉴스가 잔잔히 흘러나왔다. 낯선 언어와 리듬은 무의식 중에 나를 차분하게도, 어딘지 불안하게도 만들었다.


창문을 살짝 내리자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바다 냄새에 묻어난 먼지, 그리고 그 안에 숨어든 습기. 그 공기는 사막의 건조함보다는 동남아의 한여름 밤과 더 닮아 있었고, 나는 그 예상치 못한 기운에 마음이 묘하게 흔들렸다. ‘여기가 바로 아부다비구나….’ 스스로 되뇌었지만, 현실감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건물 외벽은 깔끔하고 현대적이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마음속 두려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12-03-24 18.16.43.jpg 부르즈 칼리파 빌딩


낯선 도시의 낯선 건물, 그리고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낯섦. 방에 들어서자 얇은 이불이 덮인 침대와 하얀 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창문을 열자 그제야 방 안으로 밤공기가 밀려들었다.


야자나무 잎이 살짝살짝 흔들리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오토바이의 엔진음, 그리고 간간이 울리는 개 짖는 소리가 묘한 리듬을 만들었다.


나는 짐을 풀고 조심스럽게 방 안을 둘러봤다. 옷장을 열어보고, 욕실의 샤워기를 확인하고, 창가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작은 공원이 보였고, 그 옆에는 불 꺼진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내려다보다 다시 침대에 앉았다.


지친 몸을 씻고 누웠지만,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오늘의 장면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스쳐갔다. 비행기 안에서 느꼈던 묘한 설렘, 공항의 첫 공기, 택시 안의 적막함, 그리고 지금 이 고요한 방까지. 마음속에서는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아주 작은 기대가 뒤섞여 알 수 없는 울림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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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이 낯섦도 언젠가는 익숙해지겠지.’ 그 말에 스스로 위로를 받으며, 끝내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낯선 곳에서의 첫날은 우리를 작게 만든다. 그러나 그 작아진 마음 틈새로 새로운 풍경과 감정이 스며들어 결국 우리는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지게 된다.


혹시 지금 당신도 처음 걷는 길 위에 서 있나요? 그 낯섦이 당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여러분은 처음 마주한 낯선 땅에서 어떤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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