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멈춤의 떨림
아부다비에 산 지도 이제 막 두 달이 되었다. 두 달이라기엔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내 안의 많은 것이 무너지고 새로 세워졌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땐 온몸이 낯섦으로 뒤덮였다. 새벽마다 들려오는 모스크의 기도 소리, 예고 없이 몰아치는 모래바람, 도로 위를 가득 메운 SUV 차량들, 검은 아바야를 두른 여성들, 빛나는 유리창으로 뒤덮인 빌딩들, 그리고 그 모든 위를 덮고 있는 묵직한 하늘. 아부다비는 나를 특별히 환영하지 않았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무심함이 처음엔 서운했지만, 이제는 그 무심함 속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아니 점점 더 편안해지는 것 같다.
그날도 평소처럼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무쉬리프 공원 근처였다. 보통 같으면 곧장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걷고 싶었다. 아부다비에서 걷는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이곳에선 거의 아무도 길을 걷지 않는다. 한낮의 태양은 가혹하고, 아스팔트 위로는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사람들은 모두 자동차나 택시에 몸을 싣고 다닌다. 실내는 늘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고, 바깥은 마치 또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늘은, 이 도시에 드물게 찾아온 선선한 계절이었다. 바람이 조금씩 불고, 햇살이 부드러워지는 시간. 해가 기울어가며 낮의 열기를 천천히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모처럼 그 공기 속을 걸어보고 싶었다.
무쉬리프 공원 주변은 의외로 항상 조용한 듯하다. 공원 안에는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고, 아이들은 잔디밭 위에서 공을 차거나 모래를 만지며 놀고 있었다. 벤치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쪽에선 누군가 책을 읽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선 연인들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공원 가장자리에는 줄지어 늘어선 야자나무들이 도로 쪽으로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그 그림자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햇빛은 여전히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공원의 야자나무 아래에는 얇은 그늘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늘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얕고, 잎 사이로 새어드는 빛들이 바닥 위로 점을 찍듯 박혀 있었다. 나는 그 나무 아래에 멈춰 섰다. 늘 이 길을 지나치며 보던 나무였다. 아침 출근길에도, 피곤한 퇴근길에도 무심히 스쳐갔던 그 나무. 그런데 그날따라 그 나무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그 그늘 안에 앉았다. 낮 동안 뜨거웠던 땅은 아직 식지 않아 온기를 품고 있었지만, 그 온기가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느껴졌다.
귀에 들어오는 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 공원의 아이들 웃음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 도로 위 자동차의 낮은 엔진음,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낯선 소리들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놀라게 하지 않았다. 바람에 실려온 냄새들도 익숙했다. 모래냄새, 바다냄새, 그리고 향신료 냄새. 처음엔 그 냄새들이 나를 불편하게 했지만, 이제는 이 도시의 체온처럼 다가왔다. 이곳에서 두 달, 나는 아주 조금씩 이 도시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늘 안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야자나무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작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빛과 그림자가 얽힌 그 모습이 내 마음 같았다. 빛이 있기에 그늘이 있고, 그늘이 있기에 빛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늘 빛을 향해 걸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늘에 머무는 건 나약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그 야자나무 그늘 아래 앉아보니, 그곳 또한 나를 감싸주는 공간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땀으로 젖은 셔츠가 등줄기에 달라붙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시원했다. 아무 계획도, 생각도 없이 그저 앉아 있었다. 바람이 지나가고, 시간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흘러갔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나도 나를 다그치지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게, 그토록 원하던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햇살이 점점 기울어 그림자가 길어졌다. 나는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다시 집으로 향했다. 걸음은 느렸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어디론가 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 그 감각이 내 안에 작은 떨림을 남겼다.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닌, 앞으로의 나를 견디게 해줄 용기의 떨림이었다. 그늘 안에 잠시 앉아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다시 걸어갈 수 있었다.
아부다비의 무쉬리프 공원 근처, 야자나무 그늘 아래. 그곳은 내가 잠시 숨을 고르고 나를 되찾을 수 있는 작은 성소였다. 아무도 나를 몰랐고,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혹시 당신도, 마음의 그늘이 필요하지 않나요? 오늘, 잠시 멈춰 서는 용기를 내어보는 건 어떨까요. 야자나무 아래 조그마한 그늘처럼, 작아 보여도 충분히 당신을 감쌀 수 있는 그늘이, 어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 잠시 멈춰 서셨나요? 그 순간,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