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심플리 리조트에서 보낸 며칠
두바이 팜 아일랜드의 밤은, 낮보다 더 깊었다.
심플리 리조트의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바다 건너로 희미한 도시 불빛이 반짝였고, 파도 소리는 생각보다 더 낮고 또렷했다.
세상의 소음이 하나씩 사라지고 나서야, 내 안의 작은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건 다름 아닌, 내가 나에게 오랜만에 건네는 인사였다.
아부다비에서 두바이까지는 약 두 시간 반.
길 위의 시간은 늘 그런 것처럼 낯설고 또 익숙했다.
유리로 둘러싸인 빌딩들, 가로등 사이로 스쳐가는 그림자들, 그리고 어딘가 무표정한 도시의 표정.
그러나 그 끝에 도착한 심플리 리조트는 조용했다.
환한 조명도, 번잡한 로비도 없이, 그저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는 창 하나가 전부였다.
나는 그 창을 열고, 오래도록 파도 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나도 아무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첫날 밤, 나는 해변으로 향했다.
모래사장은 부드러웠고, 파도는 천천히 밀려왔다.
바람은 약간 습했고, 그 안에 소금기와 어딘지 모를 낯익은 향이 섞여 있었다.
나는 슬리퍼를 벗고 모래 위를 걸었다.
물결이 발끝을 적시며 다시 사라질 때마다, 마음도 조금씩 정돈되는 기분이었다.
이곳의 밤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아무도 나를 채근하지 않는 시간.
그 침묵이 오히려 위로였다.
그 며칠 동안 나는 많은 걸 하지 않았다.
하루는 리조트 근처 조용한 카페에 들러 책 한 권을 펼쳤고,
하루는 택시를 타고 두바이 안쪽의 작은 한국마트를 찾았다.
진열대에는 익숙한 것들이 가득했다.
라면, 그리고 간단한 스낵 몇 개,
병에 담긴 식혜와 바나나맛 우유, 초록 병의 사이다까지.
고추장을 손에 쥐었을 땐 조금 웃음이 났다.
멀고 먼 사막 도시에서 이런 것들을 마주하게 되다니.
어쩌면 사람은, 조용한 위로보다 더 강한 연결을 익숙함에서 찾는지도 모른다.
밤이 되면 다시 해변을 걸었다.
모래 위에 남은 낮의 온기,
가끔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그리고 파도 소리 너머로 밀려오는 정적.
나는 그 고요 속에 묻혀, 나를 천천히 풀어갔다.
평소엔 말도 생각도 너무 많았던 내가,
그 밤에는 아무런 무게 없이 그냥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누구의 역할도 아닌 그냥 나.
리조트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누일 때면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묘하게 채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허락한 시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며칠의 밤이 내게 남긴 것은 화려한 기억이 아니라, 조용한 확신이었다.
나는 지금 괜찮고, 또 앞으로도 괜찮아질 거라는 작고 단단한 확신.
여행이란 결국 그렇게, 우리를 낯선 곳으로 데려다 놓고는
가장 익숙한 나를 다시 만나게 만든다.
두바이의 밤바다 앞에서 처음으로 깊이 호흡하며,
나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혹시 당신도 지금, 아무 말 없이 조용한 밤이 필요하지 않나요?
그 밤이 어쩌면, 가장 큰 대답이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여행 중, 가장 조용했던 밤을 기억하시나요?
그 시간 속에서 어떤 마음을 마주하셨는지 댓글로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