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이별하며

by 엄지사진관
3월 첫 주말 새벽이었다.
띠리링- 새벽부터 울린 전화. 불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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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90세를 넘기던 해. 건강하셨던 할아버지도 하나둘 아프시기 시작하셨다.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라 조금은 덤덤했다.
세월이란 게 그런 건가.. 할머니 생일이 지난 이틀 뒤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 고향인 진해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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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뒤면 벚꽃이 피는 아름다운 동내 진해는 나의 고향이다.
꽃샘추위가 기승했지만 할아버지 장례를 하는 3일 동안은 참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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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있어 장례식을 몇 번을 치르며, 몇 번을 가보겠냐만은
처음 경험해보는 장례식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 그 기록을 지금 해볼까 한다.
나와 우리 아버지는 '첫째'다. 아직 유교 사상이 남아있는 대한민국에서 장례를 치르면서
'첫째'와 '남자' 즉, '아들'에 대한 많은 생각이 교차했던 순간이었다.

'첫째'
첫째는 감당해야 할 무게가 너무나 많았다. 지금에서야 정신을 차리고 장례식 순간을 떠올려보지만 슬퍼할 시간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맞이해야 했고, 순간순간 의사결정을 해야 할 게 많았던 것 같다. 보수적인 생각일지도, 어쩌면 유교사상에 젖은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그냥 '첫째'라는 이유만으로 감당해야 할 께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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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고구마를 좋아하셨다.
할머니가 아침에 올려 놓은 고구마가 너무 짠했다.
"마지막으로 올리는 아침 잡수소"라는 말이 그냥 슬펐다.
순간순간 감정의 파편들은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어디서도 가르쳐 주지 않은 감정과 생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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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길을 내려오면서 회사에 조부상을 알렸다.
회사에서 장례식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주었다. 가족들은 슬픈 와중에도 너무 좋아해 주셨다.
큰놈이 그래도 뭔갈 많이 도와주네 하면서.. 이튿날 부장님과 차장님이 방문했다. 먼 길을 와주셔서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회사에서 물품을 보내주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거지만
힘든 순간에는 당연한 것에도 작은 것에도 사소한 것에도 감동을 받는 게 사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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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끼리 밥을 먹으면서 틈틈이 장례 진행 과정과 순간순간 결정해야 할 상황을 의논했다.
이런 과정이 너무 좋았다.
할머니는 항상 자식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들 우애는 좋아야 한다고 한 평생 가르쳤다고 한다.
정말 여과 없이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물론 서로서로 양보를 했지만 말이다.
나와 내 사촌들이 함께 늙어가며서 이렇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 추석 이후 이렇게 가족끼리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게 얼마 만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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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아빠. 첫째와 상주라는 이유로 꼼짝 달싹 못했다.
나도 요즘 아버지와 관계가 좀 거시기 했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았는데 장례식 틈틈이 아버지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내가 말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이해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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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장을 치르면서 잠을 잘 못 자도 피곤한지 몰랐는데.
장례를 다 치르고 나니 굉장히 피곤했다. 만만치 않은 이별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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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복이 많으시다.
첫째와 둘째는 독실한 불교이다.
셋째는 독실한 카톨릭시자이다.
막내는 독실한 크리스찬 이다.
아침에는 스님이 다녀가고, 점심에는 신부님이 다녀가고, 밤에는 목사님이 다녀갔다.
종교의 화합을 이뤘다며 다들 웃으셨다.

나의 사촌중에는 신부님이 있다. 신부님이 오직 외 할아버지를 위해 저녁 미사를 올린 강론 내용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분의 죽음을 체험해보신 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주검을 화장해보신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화장을 당한 주검은 말 그대로 뼈밖에 남기지 않습니다. 그것조차도 단지에 담기고자 가루가 됩니다. 혹시 이 뼛가루가 담긴 단지를 손에 받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 뼛가루를 한지에 싸기도 하는데 그 한지를 만져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그 한지를 품에 안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지 안에 있는 뼛가루가 한지를 따뜻하게 데울 만큼 뜨겁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는 1200도가 넘는 불에 주검을 태운 것이기에 당연한 자연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몇 가지 묵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뼛가루는 사람이 흙에서 온 존재임을 잘 보여주는 듯합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람이 죽고 나면 살은 금방 썩어 없어지고 뼈는 바수어져 가루가 되어 땅의 일부분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지막 모습인 뼛가루가 뜨겁다는 사실이 저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해주는 듯 했습니다. 사람의 마지막 모습, ‘흙’으로 돌아간 우리의 모습이 온기를 품을 수 있다는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흙은 따로 혼자 있을 때 차가운 것이지만 태양이나 다른 자연 현상에 의해 데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흙이 하느님의 영을 받아 사람이 되면 뜨거워지고 체온을 갖게 됩니다.

끝내 사람은 죽으면서 다시 차가운 흙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차가운 흙으로 돌아간 사람의 온기는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흙이 된 사람은 평생 자신의 체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의 온기를 전해 받은 이들이 그 사람의 죽음 앞에 다시 모입니다. 그 사람의 온기를 나눠받은 사람들은 차가운 흙이 된 그 사람을 장례 예식 안에서 만지고 품어줍니다. 이렇게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결코 차갑게 남겨진 흙이 아니게 됩니다. 또, 하늘에는 그를 품에 안아 다시 온기를 불어넣으실 하느님이 계십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결코 차갑게 식은 채 홀로 남겨진 흙이 아니라는 사실이 저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지닌 온기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을 더 뜨겁게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나눔의 방법은 다양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용서’나, 사순 시기 때 행하는 고행들 역시 우리의 온기를 나누는 일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따뜻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온기가 나눠지고 퍼져갈 때 함께 살아가는 좋은 세상이 펼쳐지리라 생각합니다. 그 좋은 세상 안에 하느님의 영이 널리 퍼져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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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발인 날
이제 정말 이별이구나 싶었다.
190이 넘는 거구의 할아버지는 한 줌의 재가 되었다.
할머니는 오열했다. 사실 할머니의 모습이 더 마음이 아팠다. 60년 한 평생을 함께한 사람과의 이별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도 할머니는 "나는 더 늦게 갈 테니 잘 지내소"라는 한 마디가 얼마나 마음을 울렸는지 모른다.
정신없이 장례식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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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상을 할 때. 나는 터졌던 눈물이 나왔다.
할아버지에 대해 떨어진 시간이 많아서 어릴 때 기억이 없어서 덜 슬펐던 거였는지 모르겠지만
난 슬퍼할 틈이 없었다. 가족들 그리고 사촌동생들을 챙기기도 하고, 장례식을 진행 전반적인 것도 확인하고,
또한 틈틈이 사진도 찍어야 했다. (하필.. 집에 있던 사진기가 단렌즈 하나뿐이라서 그나마 이거라도 챙겨가서 다행이었다.)
'아이고 이 집은 아들이 많이 없네'라는 소리가 안 나오게 두 배로 열심히 했다. 싹싹하게.
그리고 할아버지한테 미안하지 않게 말이다.

"큰 손녀가 다하면 됩니다"
"이건 큰 손자가 해야 하는데요"
"우리 집은 그런 거 없습니다. 첫째가 다 하면 됩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없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겠지만 그렇다고 손녀들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이번 장례식에서 가족들도 그 부분은 잘 보여줘서 작은아버지와 큰 고모, 작은 고모에게 고마웠던 부분이었다.
오히려 차별을 했던 건 장례식 도우미들이었다. 아마 그들은 유교사상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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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을 함께한 할아버지를
60년을 함께한 아버지를
60년을 함께한 남편을
육신과 이별해야 하는 짧은 3일. '첫째'라는 이유만으로 감당해야 했던 무게들이 너무 많았지만.
학교, 사회, 어디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경험'을 짧은 시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따뜻한 봄날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할아버지 고마웠습니다.
할머니는 아주 늦게 갈 거니까 할아버지 외로워도 잘 지내세요.

끝으로, 할아버지 가는 길에 많은 애도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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