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마카오 3박4일 자유여행
가을방학을 기다려
여름휴가를 기다리지 않는 직장인이 세상에 있을까. 술 마신 다음날 해장은 커피가 진리고 여독은 일로 풀어야 하는 게 맞나 보다. 출근해 책상에 앉으면 10초 만에 여독이 풀린다. 여독보다 진한 일상의 피로. 어떨 때는 내가 휴가를 다녀온 게 맞나싶다.
다시 그렇게 일상이다.
그렇게 지쳐 동태눈을 해서 한 달쯤 지내다 보면 민족 대명절 추석 연휴가 나를 유혹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남은 카드 할부금을 확인하고, 다시 할부를 긁는다. 할부 갚는 맛에 회사를다닌다는 자기 합리화가 이럴 때는 꽤 유용하다. 사실, 연휴가 반가운 것은 아직 혼자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추석 연휴가 다가올수록 낯빛이 변하는 팀장님, 신혼이라 아직은 괜찮은 대리님, 결혼 재촉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픈대리님, 거기다 빨간 날이라면 무조건 좋은 나. 연휴를 피하고싶은 자, 연휴를 즐기는 자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아무렴 어떠냐.
지금 즐기지 않으면 또 언제 즐길 수 있을까.
멀리 가지는 못해도 연휴에 여행을 가니 가을 방학을 선물받은 기분이다.
불경기는 무슨
사실, 명절 연휴는 언제부터인가 제2의 성수기가 되었다.
뉴스에서는 늘 불경기라고 떠들어 대는데 나만 불경기인가 싶다.
유독 수화물이 늦게 나오는 홍콩 공항을 빠져나와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한숨 돌린다.
- 넌 정말 대단해. 그 머리가 공부에도 쓰였으면 좋았을 텐데
- 그러게 말이야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내비게이션으로 통한다. 한 번 갔던 곳은 신기하게 다 기억이 나고, 웬만한 곳은 지도만 보면 다 찾아갈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디를 가도 목적지 찾기에 만 바쁘다는 것?
여기서도 그랬다.
오기 전에 맛있는 망고 주스 가게가 있다며 대리님이 꼭 가보라고 해서 열심히 찾아갔더니 다들 ‘A1 노 젤리’를 외치고 있다. 그렇게 외치는 사람은 전부다 한국인들. 누가 먼저 외치기 시작했을까.
입맛이 비슷할 수는 있지만 똑같이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입맛을 맞추는 것 회사 점심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같은 나라를 두 번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전에 갔을 때 좋았던 곳을 꼭 한 번 다시 가 본다.
- 여기야! 내가 전에 말했던 곳
- 여긴 그냥 시장이잖아
- 그래도 좋잖아. 그럼 뭘 기대한 거야?
-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거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던가 하는 그런 것?
- 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곳을 너에게 보여 주고 싶었을 뿐이야
나만의 여행지를 찾아서
여행을 가기 전에 정보를 찾으면 유명한 맛집, 관광지가 나온다. 그런 데를 가면 한국인만 바글바글하다. 다들 같은 곳에서 정보를 찾아서겠지. 내게는 색다른 곳이 필요했다. 어느 영화에서 본 것처럼 지나가는 이에게 ‘여행지 좀 추천해 주세요’라고 해볼까도 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결국, 호텔 프런트로 향했다.
- 근교에 버스 타고 갈 만한 좋은 곳이 있나요?
- 흠…… 스탠리 마켓이 어울릴 것 같은데?
나를 잘 안다는 듯 자신 있게 추천하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가고 싶어졌다.
빅버스를 타고 스탠리 마켓으로 가는 길, 2층 맨 앞자리에 타고 싶어서 제일 먼저 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가 밀려왔다. 더워도 너무 더운 것이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도심 속 빌딩 숲을 지나 30분을 달리니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더위와 맞바꾼 멋진 풍경을 질리도록 바라본다.
스탠리 마켓의 음식점 거리는 스탠리 베이를 따라 노천카페와 바Bar가 있어 맥주 한잔 시켜 놓고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기에 그만 이다. 햇살을 즐기는 외국인들이 많아 유럽의 한 바닷가를연상하게 한다. 홍콩에 이런 곳이 있다니. 높은 빌딩과 차들로 정신없이 북적이는 도심과는 달리 포근한 곳이었다. 호텔에 돌아오니 잘 다녀왔느냐며 아는 척하는 직원에게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보였다. 그는 수줍게 나의 엄지손가락을 바라보더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또 물어보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1타 2피, 마카오페리여행
페리를 타고 마카오로 이동하면서 생각했다. ‘마카오 하면 카지노지!’ 카지노에 가면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세계라는 기분이 든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숫자들, 화려한 장식들 틈에서 내가 아는 돈의 가치와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는 사뭇 달랐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부러워지다가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돈은 얼마큼일까. 얼마가 있으면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 학자금을 갚으면서 더는 빚 없이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집을 사려면 어쩔 수 없이 빚을 내야겠지?
- 이렇게 돈 벌어서 언제 집 사고, 애를 낳냐
- 대체 언제. 이러다 사표는 낼 수 있을까?
그랬다. 그곳은 내가 오래 서 있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여행지를 기억하는 맛
마카오를 대표하는 세나도 광장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규모도 굉장히 작고 눈에 띌 만한 특징은 없으나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산책하기 좋은 위치 덕에 많은 이들이 방문한다. 무엇보다도 이곳에는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베이커리가 있는데 따끈따끈한 상태로 먹을 수 있어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에그타르트 맛이 다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두 눈이 튀어나 올 정도로 맛있다. 이렇게 콜로안 빌리지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작은 버스를 타고 타이파 빌리지로 향했다.
버스 안의 실내 장식부터 스쳐 가는 풍경들을 넋 놓고 보는 내가 신기했는지 기사 아저씨가 연신 바라본다.
타이파 빌리지에 도착해서는 쿤하 거리로 향했다. 백여 걸음이 채 안 되는 짧은 골목은 육포와 쿠키 냄새로 진동한다. 한 아이스크림 가게에 사람들이 떼로 줄을 서 있어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중 가장 있기 있다는 ‘두리안 아이스크림’. 맛은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먹을 때는 몰랐는데 냄새가 고약하다. 나도 모르게 친구를 옆에 두고 트림을 했더니 친구가 각자 갈 길 가자며 등을 보였다. 그렇게 입안의 두리안 냄새는 한국 에 도착할 때까지 빠지지 않았다.
100년 전통 호텔
마카오 관광지 근처에는 숙소가 마땅치 않았다. 전부 비싼 호텔뿐이었다. 그래서 숙박비도 아낄 요량으로 1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 호텔에 묵었다. 예약할 때도 간단한 메일만 주고 받은 것이 전부라 안 되어있으면 어쩌나 반신반의했는데 숙소 찾기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문제는 같이 간 나와 친구가 100년의 세월을 간과했다는 것.
좁은 방과 방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누웠을 침대. 눅눅한 침구. 이끼가 잔뜩 껴 어항인지 세면대인지 구분이 안 가는 세면대는 배수가 잘 되지 않는지 양치만 해도 금세 물이 찼다. 침대 에 누워 천장을 보니 방과 방은 판자 하나로 아슬아슬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알아들을 수 없는 각국의 언어들이 들려왔고 그 틈에서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문득 재수 시절 기숙 학원이 떠올랐다. 그 좁은 공간이 다시 그리워지다니. 숙박비 좀 아끼려다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덤으로 얻었다.그래도 우린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코를 골며 잤고 영화 <도둑들>의 한 장면을 흉내 내기라도 하듯 발코니에 서서 사진도 찍었다. 어디서든 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묘한 확신도 들었다.
사실 홍콩과 마카오는 워낙 좁은 땅에 사람들로 북적이기에 여유를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여유가 없으면 없는 대로 북적이면 북적이는 대로 좋다.
아무렴,
회사만 안 갈 수 있다면 다 좋다.
-
사진·글 엄지사진관
필름. 미놀타 dynax5 & 미러리스. 올림푸스 OM-D E-M5 Mark Ⅱ 촬영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시면 저작권법에 따라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