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사진관 Feb 02. 2018

네 번째 주제.
직장인의 점심, 점심시간

직장인 여러분 점심시간은 편안하신가요?

네 번째 주제. 직장인 점심시간

출근길 지하철을 타면 드는 생각 "오늘 점심은 머먹지?"

출근하니 부장님이 말씀하신다 "오늘 점심 냉면 어때?"

남자 친구였으면 진작에 헤어졌다. 내가 냉면을 싫어한다는 건 뉴욕에 사는 잭슨(소셜미디어 친구)도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주 최강 편식이 심하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편식이었다. 김치, 김치찌개, 냉면, 부대찌개 등등 소위 말하는 아재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햄버거, 피자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초딩 입맛이다. 그렇다고 어찌 점심시간은 직장생활의 연속이기에 나의 식성만 고집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인턴기자 시절 요즘 흔히 말하는 혼밥에 익숙했다. 간단히 빨리 먹고 다른 취재를 가야 하기 때문에 혼자 먹는 게 편했다. 이따금 눈치를 보며 밥을 먹어야 했지만 그 시간만큼은 온전한 나의 시간이었다.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고민보다. 한 끼 배불리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곤 했다. 

이후 취업한 첫 회사 선배는 식탐이 심했다. 순두부 찌개를 시켰는데 나의 순수부에 숟가락이 쑥~들어오더니... 계란 노른자를 쏙. 그리고 태연하게 "내 껏도 나눠먹어"... 다음날  새우 볶음밥을 먹는데  볶음밥 위에 올려진 새우튀김 5개 중 3개를 쏙~ 빼먹곤 했다. 먹는 거 가지고 쪼잔하지 않은데. 이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당시 점심시간은 늘 스트레스였다. 선배는 중식을 매우 좋아해서 한 달 내내 중국집을 점심시간에 간 적이 있다. 신입사원이라 마땅히 선배와 당연히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 거절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그 한 달 이후 점심시간에 중식을 먹으면 오후에 토하거나, 소화가 잘 안된다. 생각해보았나. 한 달 내내 자장면만 점심시간에 먹는다는 사실은 고문 그 자체였다. 


이후 거짓말을 했다. 약속이 없지만 약속이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 차라리 혼자 먹는 게 편했다 싶다. 

먹기 싫은 음식을 더 이상 먹기 싫었다. 

내가 믿는 원칙 '음식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게'먹기도 잘 안된다. 

싫어도 억지로 웃으면서 먹기로 변한다.

당시 거짓말을 하고 갔던 곳은 남대문 시장 갈치 골목이었다. 

맛은 그저 그렇다.
하지만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 있는 여유가 너무 좋았다.


점심시간에는 사실 다 같이 밥을 먹지만 말을 아껴야 하는 자리였다.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이런 말들이 오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런 말을 듣기보다.
그냥

맛있는 밥이 먹고 싶었다. 

그리고

맛있게 먹었고 돌아오곤 했다.

5년 차가 된 지금 지난 점심시간은 추억이 되었다. 지금 회사 선배들은 '점심시간' 만큼은 자유롭다. 

먹고 싶은 것이 비슷하면 같이 먹기도 하고, 때론 혼자 먹기도 한다. 눈치 하나 없는 문화가 존재하고 있어 너무 감사하다. (글 마무리가 이상하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맛있게 먹고 싶다. 


최근에 재미있게 읽고 있는 소설 <서른의 반격>에서 이런 문단을 보았다.


정진 씨를 만들어 낸 건, 이 답답한 도시 생활에서 하나의 숨통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언제나 같은 사람들과 밥을 먹는다는 건 정말이지 숨 막히는 일이다. 매일 점심때마다, 뭐 먹을래, 아무거나요, 오늘은 돈가스 어때, 좋아요, 메뉴는 짜장면으로 통일할까, 그러죠, 따위의 대화를 나누는 것. 나서서 냅킨을 깔고 숟가락, 젓가락을 놓고 도맡아 물을 따르는 것. 다들 그런다고 생각하면 어렵진 항ㄶ지만 그래도, 그래도 가끔은 도피처가 필요했다.


직장생활의 연장선이 점심시간이지만 이따금 나 또한 정진 씨를 만나러 간다고 한다. 

9시간 함께 보내는 시간 중 

아니 어쩌면 하루 1시간만큼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아닐까 싶다. 

퇴사 전까지 죽어도 냉면을 먹을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글. 엄지사진관



점심시간에 홀로 사무실에 남겨진 적이 있는가?

팀 동료나 후배들이 ‘약속 있다’, ‘병원 간다’면서 홀연히 사무실을 떠날 때 말이다. 

혼밥에 꽤나 익숙한데도 그럴 때면 밥을 먹을지 말지, 뭘 할지 고민스럽다. 

미리 이야기라도 해주던가! 그래야 계획이라도 세우지.


그 같은 심정을 알기에 지난주 수요일에 팀 후배들에게 미리 알렸다. 

“나 오늘 다큐멘터리 제작사와 광고주 점심 약속 있다. 알아서들 챙겨 먹어라!”

쳐다보지도 않고 “예”라고 답한다. 

그래서 말을 보탰다. 

“나는 누구처럼 점심 일정이 있는데도 미리 이야기하지 않는 그런 사람 아냐!

엄 작가야~ 잉숑아~ 나는 괜찮다~!”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직장인의 점심, 점심시간은 복잡하다. 1시간 내외의 그 시간에 ‘미생’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있다. 불필요하게 고민하고 쓸데없이 힘쓰게 만든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다!”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앉아서 일을 하고 있으면 꼭 등 뒤에 와서 뻔한 클리셰를 던지는 사람이 꼭 있다. 보통은 선배다. 밥 먹으러 나가자는 소리다. 

내가 밥벌이하러 온 건지, 밥 먹으러 온 건지 실존적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그래서 던져보는 논쟁적 주제 1. ‘점심시간은 업무 시간인가, 휴게 시간인가?’

PR을 업으로 하면서 점심시간은 주로 기자를 만난다. 아니 만났다. PR회사를 다닐 땐 홍보 대행 업무를 하다 보니 고객사의 출입기자를 주 3~5일 점심시간에 만났다. 

사람이란 존재가 그렇게 고차원적(?)이지 못해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에는 먹고 마시고 운동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게 없다. 

그렇기에 점심시간은 언론관계 활동을 해야 하는 중요한 업무 시간이다. 고객사의 활동을 알리고, 업계 정보를 교환하며, 출입 기자의 근황을 파악한다. 


그러면 이 같은 일을 하지 않으면 휴게 시간인 건가? 그렇지도 않다. 

광고주와 밥 먹고, 협력사와 밥을 먹는다. 

바로 옆에 앉은 우리 팀 동료와 편하게 밥을 먹기도 하지만, 옆팀 동료, 옆옆팀 동료, 다른 본부 동료와도 밥을 먹는다. 

이런 관계 관리 활동으로 협력해야 하는 일들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사람이란 존재는 그렇게 고차원적이지가 못하다 보니…

점심시간은 온전한 휴게 시간도 아니다.  


주제 2. 메뉴는 누가 결정을 하는가?


“자~ 밥 먹으러 갑시다. 오늘 뭐 먹을까?”

부서의 長께서 자리에서 일어서며 외투를 입으신다. 

순댓국, 김치찌개, 낙지볶음, 청국장, 중국집, 해장국 등등 각종 메뉴들에 ‘어떠십니까?’가 붙어서 주위를 떠돈다. 

추천과 제안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사실은 퀴즈다. 

선배의 마음속에 그날 먹을 음식은 이미 정해져 있다. 정답을 맞혀야 한다.

전날 저녁의 음주 여부, 최근 며칠간의 점심 메뉴, 취향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빅데이터 분석이 따로 없다.    

메뉴 선택권은 권력이다. 간혹 1호의 기호가 뚜렷하지 않은 날에는 2호의 추천으로 메뉴가 결정된다. 


이번 주 월요일 점심때 일이다. 

후배들에게 “뭐 먹을까?”했더니 2호가 “매운 고추장에 참기름을 비빈 쫄면 같은 거요!”라고 답했다. 

그래서 “그럼 비빔밥 먹으러 가자”라고 결정했다. 

회사 근처에 전주비빔밥집으로 후배들을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비빔밥이 고추장과 함께 유기에 담겨서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최고로 치는 집이다. 

“밥알이 탱글탱글 살아있고 고추장 양념의 양과 계란 노른자의 조합이 거의 완벽하니

젓가락으로 솔솔 비벼서 먹으라”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자리에 앉은 3호가 “여기 고추장 좀 더 주세요”하더니 

두 숟가락을 퍼서는 퍽퍽 때려 넣는다.

이건 반항하는 거다. 내 메뉴에.


주제 3. 밥값은 누가 내는가?


선배들과 밥을 먹으면 보통은 가장 연장자께서 밥값을 내신다. 

후배들과 밥을 먹으면 가급적 사는 편이다. 보통 2명까지는 사는데, 3명부터는 부담스럽다. 그럴 땐 좀 천천히 계산대로 나서면 알아서 더치페이를 한다. 

선배들이 밥을 사는 ‘미풍양속’(?)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그냥 각자 사 먹는다. ‘탈권위’다. 


밥값은 권위이다. 밥 값을 내는 사람은 밥을 먹여줌으로써 권위를 갖는다. 사람이란 존재가 그다지 고차원적(?)이지 않다 보니, 먹고 먹여주는 관계는 중요하다. 오죽하면 ‘食口’라고 했던가!


물론 갑을 관계에서 밥값은 보통 을이 낸다. 하지만 그 밥값에는 훨씬 복잡한 관계가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다. 한 고깃집에 걸린 팻말인데 이렇게 쓰여 있다. 

“소고기 사주는 사람을 주의하세요.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예요.”

오죽하면 청탁 금지법에서 밥값을 규정하겠는가!


화요일의 일이다. 

3호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야 할 일이 있기에 택시를 탔다. 

3호가 택시비를 자기가 내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점심은 내가 낼께” 했더니, “커피는 제가 살게요” 한다. 

만담 같은 주거니 받거니에 택시 기사님께서 “참 보기 좋네요. 살 맛이 나네요”라고 하신다. 

“왜요?”라고 되물으니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잖아요”라고 답하신다. 


고차원적이지 않은 우리는,

이렇게 한 끼 밥을 함께 먹는 것으로도 살 맛이 난다. 


글.엘리엇


- 별별차이나는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 별별차이나에서 앞으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세 번째 주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