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라는 도시는 어떤 매력때문에 여행자들이 많을까?
뭐 언젠가 가고 싶은 곳이면 이제는 가봐야겠다는 도시가 몇몇 곳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늘 런던이었다. 몇 번에 기회가 있었고, 또 몇 번 스탑오버 정도로만 스쳐 지나갔는데 진짜 런던에서 24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길 잘했다.
하지만 친구, 가족과는 절대 못 갈 곳인 것 같다. 물가가 너무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거의 이틀 동안 쓴 비용은 5만 원 이하. 무조건 걸어 다니고, 밥은 한인 민박에서 때웠고, 여행만 오면 이상하게;; 식욕이 그다지 없는...
커피만 열심히 마셨다. 하루 만에 보기에는 너무너무 아쉬웠던 곳이었다.
신사의 나라라고 하지만 인종(?) 약간 동양인을 무시하는 것을 몇 번 경험했고,
런던에서 가장 많이 한 것은 무단횡단이었다. 거의 태국, 베트 남급의 수준? 아니 그럼 신호등이 왜 있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나도 어느 순간 열심히 건넜다.
첫 날 미리 예약했던 한인민박에 도착해 바로 뻗어 할매처럼 새벽에 일어나 미친듯 걸었다. 런던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 뿐. 런던을 하루만에 다 보려고 한건 욕심이었다. 최애도시는 바뀌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좋았다. 비가 오다가 안오다가. 해는 떴는데 비가 오다가. 신기한 날씨를 가진 도시다.
다음날 게트윅 공항으로 가야 하기에 빅토리아 코치스테이션(빅토리아역 옆에 있는 버스정류소라고 보면 됨)에서 버스 표를 바꿔야 했다. 이때만 해도 행복했다. (다시금 말하지만... 공항 갈 때는 무조건 기차 타세요...................................... 엄청 막혀요.......................덕분에 다른 곳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쳤다... )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 즉, 도심으로 가는 길은 검색을 통해 익히 알아오는 편인데
처음 내려서 마주하는 도심의 온기는 역시나 낯설다. 참 예뻤던 빅토리아역
런던을 여행하면서 찍고 싶던
몇몇 순간들이 있는데,
짧은 시간이라 많이 마주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만났던 순간,
진짜, 최고로 좋았던 코벤트가든(Covent Garden London) 골목길과 구석구석
서점도 많았고, 소품샵들도 진짜 많고, 필름 현상소들도 곳곳에 있었던...
시간이 짧아서 야속했다. 영화 세트장 들어온 기분도 물씬 들었다.
커피 없이 못 살지만. 아메리카노를 처음 마시게 된 건 칼로리가 0이라는 말에 마시게 되었고,
정작 커피 맛과 깊이를 알고 있지는 않고
여행을 계획하다 보면 기대했던 곳이 별로 일 수 있고,
예정에도 없던 곳이 너무 좋았던 곳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였다.
그냥 명동 한복판과도 비슷할 것 같지만 균형감 잡힌 런던 건축물과 사거리 사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과 그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너무 좋았다.
흑백으로 담고 싶었던 순간들
그 모습 그대로 현상을 하니 남이 있어 주었다.
왜 그렇게 관계에 집착했을까, 어차피 접착도 안 될 사이였는데. 끈끈하다 생각했던것들이 한 걸음 물러나 느슨해 졌을때 오는 공허감은 역시나 시간이 약이었다. 잘가 가을! 여름보다 단단했던 마음이어서 고마워, 사춘기도 아닌데 사춘기 잖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은 '넌 왜 이렇게 바쁘냐'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무척이나 듣기 싫어했다. 사람마다 '바쁨'에 대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바쁘다고 생각 안 하는데 왜 보이는 것만으로 말할까라는 뭐 그런? 약속이 많아 보이지만 퇴근하고 집이나 근처 카페에서 글 쓰는 시간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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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열심히 살았고, 바보처럼 성과도 없었다. 이 바쁨을 탓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줬지만 피해는 주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바빠 보이지만 굉장히 여유롭던 삶, 24시간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삶에서 이제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이 느껴지니 정말. 존나. 바쁘다. 부디 이 바쁨에는 바보처럼 성과가 없진 않길, 바빠도 주변 사람들에게 까칠하게 대하진 않길
한 때 '적당히 벌고, 잘살자' 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어느 순간 인생에 '부동산'이라는 단어가 들어온 순간부터 '적당히'라는 부사는 사치가 됐다.ㅌ
짧았던 하루의 런던. 순간순간 변하는 날씨가 좋다가도, 변덕스럽다가도.
비가 오면 비를 그냥 맞았고,
그러다 비가 너무 오면 카페에 들어가 글을 썼다.
시간과 사건이 하나의 흐름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 덩어리, 덩어리째 파편이 되어 과거의 시간들이 지나갔다. 채 1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 무수한 변화에 내가 잘 선택한 건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생각하고 싶다가도, 무엇에 막혀하지를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어쩜 계획한 것으로 되지 않으니 그것마저 스트레스라 하지 않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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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2019년 마지막 여행이자 그렇게 달려온 마침표 여행이다.
그래서 원치 않게 흑백으로도 찍어 보았다 (물론 필름은 현상해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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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와 변화는 놀랍다. 사소했는데 소중한 것들을 돌아 볼 수 있었고,
나만 끌어당겼던 관계에 대해 느슨할 수 있는 거리를 가져다줬으니 말이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행지에서는 좋아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짧다.
하루에도 수많은 국적의 여행자들이 모이는
런던 아이 주변,
똥물이었던 템스강
생각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런던이란 도시를 여행하고 있더라.
오후가 지나면 필름의 감도 때문에 필름 카메라로 더 이상 담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도 흑백으로 꼭 담고 싶었던 순간인데, 역시나 조리개와 감도 때문에 소위 말하는 '망'한 사진이지만
이 사진이 잘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런던에서 마지막 저녁이었고, 분위기가 좋았던 순간이었다.
물론 나만 알아볼 수 있지만 말이다.
여행중간중간 드는 긴 호흡에 문장들은
여행이 끝난 후 막상 노트에 옮겨 적으려고 하니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네
24시간 런던이라는 도시를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민박집에서 캐리어를 끌고 잘 나와 시간적인 여휴를 두고 공항으로 가는(네셔널 익스프레스)버스를 참 잘 탔는데 프라하가는 비행기를 놓쳤다. 말도 안 되는 인종차별과 영어를 못하는 서러움. 그냥 그때는... 런던을 빨리 벗어나고 싶더라. 어쩐지 런던을 여행하는 내내 운이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