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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사진관 Jan 09. 2021

제주살이 1주년 기념, 축하해 자축!

제주살이 1년 기념으로 출근길에 스타벅스에 들려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서울 사람 코스프레했지만 현실은 다시 내리는 폭설로 버스 30분을 기다렸다.

작년 오늘,

아침 일찍 제주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갔다.

집에는 밥솥이 먼저 들어가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밥솥에 반찬거리를 넣고 공항으로 향했다. 10년 동안 살았던 서울을, 그리고 고모집을 나간다는 게 슬펐을 찰나 공항에서 밥솥을 넣은 상자 밑이 터지면서 밥솥과 반찬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공항직원들은 빨리 안 치우고 뭐하냐는 눈치였지만 고모부, 고모부랑 나는 우하하 하며 웃고 말았다. 


"이건 너 그릇이니까 들고 가"

짐을 싸다 무슨 말인가 싶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은 가족끼리 밥을 먹을 때 유독 접시가 많았다. 설거지 담당인 나는 "고모 왜 이렇게 접시가 많아" 라며 투덜거리기 일 수였다.

"엄지야. 네가 서울 처음 왔을 때 뭐도 모르겠고. 촌티가 팍팍 나는데 밥 먹으면서 눈치까지 보더라" 고모부와 나는 식성이 똑같다 보니 좋아하는 반찬이 나와도 고모부가 후다닥 드시니 내가 손을 못 데는걸 눈치채셨던 것이다. 아무리 고모부랑 친하다고 해도 당시 눈치가 많이 보었을 터. 이후 어떤 음식 심지어 계란 프라이를 해도 각자 접시, 스팸을 구어도 각자 할당량으로 나눠서, 양념장 하나도 각자 접시에 다 담아 줬다. 우리 고모는 그랬다.

그 어떤 순간에도 내겐 고모부와 고모가 있었다. 시집가기 전에 나가서 미안해요. 시집을 못 갈 것 같았어요...


시간에 맞춰 우체국 택배가 20박스가 왔고, 우체국 아저씨는 여기 뭐하는데 이렇게 택배가 많이 왔냐며 입도를 했다고 하니 축하한다고 해줬다. 이삿짐 좀 정리하자고 하니 고모부가 배가 고프다며 일단 먹어야 한다고 해서 우진 해장국으로 갔다. 그때 처음 몸국과 고사리육개장을 먹었는데 그렇게 맛있더라. 고모랑 헤어지는 슬픔도 잠시 두 그릇을 뚝딱 먹었다. 짐을 정리하고, 필름 로그 제주점 청소도 하고 다음날 고모가 올라갔다.


공항에서 인천공항도 아닌 제주공항에서 오열을 했다.

눈물을 꾹꾹 참았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고모도 그랬다더라

눈물을 참으며 버스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남자 친구랑 헤어졌어요?”

“남자 친구 없어요 어어어 어어어 엉” 

첫 자취 집에 오니 그렇게 막막하더라 

10개월간 비어있던 집은 온기가 없고, 그날따라 제주도 바람은 얼마나 차가 뒀는지 부끄럽지만 밥 한번, 세탁기 한번 돌릴 줄 몰랐던 내게 막막한 시간의 연속이었다.(사실 1년 동안 자취하면서 한 번도 밥 안 해 먹음..)  외로움을 워낙 잘 타서 친구들이 걱정했는데 외로움보다 첫 자취가 적응으로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잠잠했던 코로나 19는 생각보다 크게 터졌고, 예전만큼의 일상을 보낼 수 없게 됐다. 여기서 또한 직장생활이었기에 필름 로그 제주점에서 지난 1년 동안 너무 조용했던 공간은 하나 둘 필름 로그 색으로 채워졌고, 태풍과 폭설에도 여차저차 잘 지냈던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하고 싶던 강연, 필름 사진 프로젝트 등은 핑계 아닌 핑계로 미뤄야 했지만..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절대 혼자일 수 없다. 관계라는 게 그렇더라. 서울에서 대학, 직장생활 고향보다 몇 년 이상을 보냈던. 20대를 지나 30대에 걸러질 관계들을 걸러내고 곁에 둘 사람들만 남았을 찰나. 새로운 곳에서는 그야말로 아무도 없었다. 낯가림이 심해 아메리카노만 맨날 먹고 나오던 레이지 커피는 친구가 됐고, 봄 이오 기 전 만나게 된 제주도 87 친구들 모임. 병준이가 밥 한번 먹자고 했던 인연이, 필름 로그 제주점에서 첫 강연에 딱 1명 왔는데 그때 왔던 흥식. 그렇게 만나게 됐다. 타지에서 같은 동년배로 서로 고민도 털어놓고, 무슨 일이 있으면 달려와줬다. 노로바이러스에 걸려 집에 쓰러진 나를 새벽에 응급실 데리고 가서 기다려줬던 날, 종운이 제주살이 천일 기념이라고 외식하자며 거하게 교촌치킨으로 달려갔던 날, 파파존스 먹여야 한다고 서울에서 올때 파파존스 싸왔던 날, 야심 차게 준비했던 캠핑은 폭우로 침수가 됐고, 술이나 먹자며 낮술을 거하게 먹고 텐트 치고 낮잠을 잤지.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 다들 오늘도 으쌰 으쌰 하자며 응원해주는 그게 그렇게 고맙더라. 사실 나이 먹고 친구들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그게 그렇게 좋더라. 일상에 사소한 것을 함께 한. 어느 봄에 설렘처럼 내게 와줬던 모든 것들이다. 


물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물을 좋아하는 언니의 자유로운 모습, 타인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공감하고 이야기해주는 꽃 언니를 만났고, 나아가 지금의 표선 오유리 제국에 입성하게 됐다. 유리는 내가 두부조림이 그렇게 먹고 싶다는 말을 잊지 않고 저녁에 해주고, 집밥을 그렇게 해주더라.

여차저차 행복하고, 즐겁게 지냈다.

코로나 19로 예민했고, 할머니, 조카들이 커가는 모습을 자주 보지는 못했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아주 가끔씩 봐야 했다. 정작 중요했던 문제는 회피하면서 말이다. 바보 같이.  ‘돈’이라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지내다 보니 중요한걸 가장 중요했던 문제를 뒤로 하고 있었더라. 똑 부러지게 말해야 하는데 말주변 머리가 없고, 논리적이지 못해 늘 회피했을 무렵.  '실패' 했다는 마음과 쪽팔림에 퇴사를 결정했다. 고모는 괜찮다고 서울로 다시 오라고 했다. 근데 올라가면 또 후회할 것 같았다. 난 후회를 누구보다 잘하는 사람이니까.  약속했던 만큼 시간이 아니어서 한 번 더 용기를 내기로 했다. 회사생활을 하며 따박 따박 월급쟁이가 프리가 된다는 그 한 끝 차이가 그렇게 겁나고, 아직 두렵다….


유튜브를 해봐, 틱톡을 해봐 그런 거 중요하지 않다. 하고 싶어도 어설프게 할 역량밖에 안되면 내가 잘하는 것에 몇몇 집중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는 정말 진짜 들만 모였다. 그래서 나태해질 수가 없다. 나태하면 도태된다. 도시에서의 각박한? 뭐 그런 게 싫어서 내려왔다면 진짜 한량이거나?

 

21년 제주도에 있으면 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호시절이다.

누군가의 좋은 순간을 담는 웨딩사진, 누군가의 좋은 시간을 담는 스냅사진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필름과 사진으로 접목된 여행 프로젝트와 마을 프로젝트이다.

필름 카메라와 제주도 마을 스토리를 녹인 프로그램, 마을 스토리를 담은 잡지, 인화사진 대학생 때 했던 우리들 일도씨 프로젝트인 영장 사진 프로젝트를 할 것이다. 물론, 제주도에 있는 여러 작가들과 함께 할 것이다.

적어 놓으니 거창한데.. 큰 그림은 그렸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는 하나 둘 나아가면서 해보는 걸로.. 어떤 작가님이 그 말을 하더라 '요즘 카메라만 있으면 다 작가', ' 인스타그램에 좋아요 많이 받는 사진들 찍는 게 더 중요' 하다고.. 그 말이 뭔가 뼈 때리는 말처럼 들렸는데 이 막 물고 나만의 방식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철들고 성숙하라고 하는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10년전에도 사랑앞에 찌질했던 성격이 크게 변하지 않았고, 5년전에도 관계앞에 실패 했던 태도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앞선 경험이 있기에 맷집이 단단해졌을 뿐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하는데 새벽이나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일일이 보여줄 수 있는건 아니지 않나? 어설픈 조언따위에 그냥 너나 잘하세요 라고 넘길 맛큼 맷집이 생겼다.


- 처음제주도 내려갔을땐 서울을 자주 갈거라 공항근처에 집을 잡았는데 이제는 서귀포로 갔다. 무려 쫄보인 내가. 처음 뚜벅이었을때 금능해변을 그렇게 갔지. 처음 제주살이 3개월 그렇게 힘들더라 제주살이보다 제주도는 확실히 여행이 좋다고 느껴지고, 서울에서 회사생활 할때는 제주도가면 여기가야지, 이 카페 가야지 쭉쭉 적어놨는데 이제는 날씨가 좋으면 해변에서 치킨을 먹고, 보고 싶은 금능을 밤에도 갈 수 있다. 걷고 싶은 오름을 내일 아침에라도 올라갈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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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보다 사랑을 받고 자랐던 터라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1년 뒤에 어떤 글을 또 어떤 날을 의미 부여하며 어디서 쓰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생했다 1년 

항상 멀리서 봐주는 친구들 또 어디선가 응원해주고 있을 따뜻한 모든 것들에게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을 산다는 건,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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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모든 글은 오늘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던 글인데

막상 또 워드로 옮겨 적은 생각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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