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살이 7년
만만치가 않네 서울 생활이란 게
이래 벌어가꼬 언제 집을 사나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나오네
월세 내랴 굶고 안 해본 게 없네
이래 힘들라고 집 떠나온 것은 아닌데
점점 더 지친다 이놈에 서울살이
어릴 때 개구리를 잡고 놀았고, 치토스 따조 하나에 연연했으며, 다마고치(지금의 개복치 정도?)를 바지에 주렁주렁 달고 다녔고, 인형 뽑기에 환장했으며, 가수들 사진을 400원 주고 샀고, 매달 나오는 잡지 부록을 받고 싶어서 샀고
미니카 / 하드보드지 필통 / 운동회 때마다 등장하는 병아리 판매 / DDR / 펌프 / 국진이빵 / 핑클 삼양라면 / 요요 / HOT 음료 / 필통축구 야구 뚜버기 필통 / MRK 다이어리 / 메달뽑기 / 변신필통 / 깜찍이소다 / 공중전화카드
나열하면 참 추억이 많은 단어들. 그렇게 순수하게 살아왔던
응답하라 1997의 약간은 낀 세대이다. 대학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야망과 나의 욕심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살이 7년
사는 게 녹록지 않다 정말.
처음에 서울 왔을 때 지하철 탈 때
촌티 안 내려고. 지방 친구들, 고향 가족들이 오는 전화도 안 받았고 최대한 서울말 쓸려고 했지만 흥분하고, 화를 내는 순간에는 사투리가 나왔다.
서울 생활은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의 연속이었지만
나의 20대 만큼은 시골에서 살았던 서러움을 버리고 싶어 욕심을 내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덕분에 많은 경험을 통해 나는 많이 변했고 세상에 책으로 접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하고 내가 피부로 느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아침에 숨도 못 쉬는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출근하고,
지옥철을 타기 싫어서 1시간 일찍 출근할 때도 있고, 지방에서 친구들이 올라오면 맛 집도 추천해주고 그렇게 보내고 있다.
서울살이를 시작했던 노량진 다리가 철거가 된다고 한다. 다른 공시생들 보다 내 삼수 시절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노량진에서의 생활. 마치 저 다리를 건너면 인간 세상으로 넘어가고
넘어가면 다시 수험생으로 전략하는 노량진 육교. 모의고사 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육교 위에서 멍하니 차들이 지나가는 모습들을 보여 세상을 원망하기도, 내 인생은 왜 이렇냐며
참 많이 울기도 했었다.
컵밥을 헐레벌떡 먹었던 지난날
처음 지하철을 탈 때 무가지 신문의 존재를 몰랐다. 사람들이 신문을 하나 둘 들고 가길래. 와.. 서울 사람들은 신문을 매일 읽는구나 싶었다. 나도 모르게 무가지 신문을 정리하는 아주머니께 슬그머니 500원을 드렸다.
아주머니는 웃으시며 "학생 이건 무료신문이야"라고 말씀하셨다. 어찌나 부끄럽던지.
아침이면 왜 그리 다들 달리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다들 우사이언 볼트!
지하철에 BGM으로 '말 달리자'를 틀어도 좋을 만큼
하루가 시작된다.
서울살이를 하다 보니 좋아하는 공간도 생겼다.
- 당산에서 합정으로 넘어가는 2호선 당산 철교
- 뚝섬에서 청담으로 넘어가는 7호선
점점 좋아하는 공간은 생기는데
나만의 공간은 없다.
집, 나의 집.
세상에 아파트가 이렇게 많이 지어지는데
집
나의 집은 없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앞에 앉은 사람 쳐다보다가도
밀려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상이 구겨지고
강남 한복판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뭐가 이래 반짝거리는지 눈이 커질 찰나
밀려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디론가 떠밀려 가고
내가 잘 살아보고 싶어 선택한
서울살이인데
가끔 외롭고
그래도 좋다가
많이 외롭고
그래도 좋다?
백반 7,000원
내가 끓여 먹는 된장찌개 보다
엄마가 해주는 밥이 그립다.
따뜻한 밥
가끔 울적한 날.
지하철에서 내려 바로 앞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이어폰을 꽂아본다.
첫 번째 노래는, 서울살이는 - 오지은
두 번째 노래는, 서울 이곳은 - 로이킴
세 번째 노래는, 서울살이 - 장미여관
노래가 끝나면
툴툴 털고 다시 힘을 내어 본다.
오늘도 잘 버텼다.
서울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