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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필름 사진기

by 엄지사진관

특정 음악, 특정 공간 나만 알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찾게 되면

뭔가 빼앗긴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제주도가 그랬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면 핸드폰을 들고 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빼놓고 갈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디지털 기기 하나만 버려보자!’ 집안 장롱을 뒤져 뒹굴거리는 낡은 필름 사진기를 찾았다. 굉장히 독특한 외관을 하고 있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도 잘 안 나오는 것을 보니. 이건 나만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버지가 대학생 때 여자친구를 꼬시기 위해 구입을 했다는 필름 사진기. 과연 어머니는 몇 번째로 찍혔을까 궁금하기도 하면서 필름을 넣고 찰칵. 셔터를 누르니 소리가 철컹하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는 소리인가. 남대문시장에 가서 수리를 하니 필름 사진기만원도 안 할 텐데 하나 사라는 아저씨의 말에 아버지의 추억은 만원으로 살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제주도 골목길을 걸으며 필름 사진기의 철컹한 소리는 온 마을을 다 울렸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고고학자예요?” 라며 물어보고, “캠코더인가? 무시 기인가?”라며 물어보기도 했다.

철컹

철컹

투박하지만 이 소리가 너무 좋다.

가을이 오는 길목의 제주도는

여름의 초록색의 옷을 벗고, 억새옷으로 갈아 입고 있었다.

위미리 해녀

아침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 멍하니 위미리 포구에 앉아

해녀 할머니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대정읍 5일장에서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호떡을 사 먹고,

일상에서 맞는 이 여유가 참 좋다.


그렇게 잘 보내는 찰나

전화가 울린다.

회사다.


나 휴가 중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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