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40년 지기 친구를 만나다.
어느 순간부터 딸들은 아빠와 서먹해지고 엄마랑 더 가까워진다. 나는 어릴 때 아빠랑 굉장히 친했고 가까웠다. 무전여행도 떠나고, 어떤 고민이 있어도 늘 엄마보다 아빠한테 먼저 말을 했다. 내 인생에 엄마랑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늘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아빠가 서운할 만큼 엄마와 더 가깝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아빠 생각이 날 때가 많다.
집에만 오면 피곤하다 하셨고, TV와 소파는 독차지 셨다. 쭉 늘어난 러닝셔츠를 입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회사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람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후배에 선배에 동기들을 챙기기 바빠서 늘 술이었고, 월 말이면 마감날이라며 바쁘셨고, 양말 좀 세탁기에 넣으라는 엄마 잔소리, 엄마가 아침에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조금만 늦게 챙겨줘도 회사에 지각한다고 발을 동동 구르셨다. 사실 아빠가 늦잠을 잤는데 말이다. 어렸던 나는 이해를 못 했다. 회사를 다니면 어떤 스트레스를 받으시는지. 주말에 회사 전화를 받고 끊으시면 늘 담배부터 피우셨는지를...
여름휴가를 맞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부모님, 그리고 아버지의 40년 지기 죽마고우 친구를 만났다. 굉장히 어색할 줄 알았던 자리였는데 나보다 나의 아버지를 오래 봐온 친구분께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 아버지 고등학교 땐 어떠셨어요?
- 군대 가기 전에 여자친구는 있었어요?
- 아버지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분이세요?
- 회사 생활은요?
짓궂은 질문부터 정말 궁금했던 질문까지
아버지 친구분은 말씀하셨다.
"그땐 우리가 가진 게 없고 못 살아서 친구들끼리도 너 잘 났고, 나 못났고 이런 건 없었던 것 같아. 아버지랑 40년 동안 서로를 이해하면서 친구 사이냐 물어봤지. 친구라서? 친구라도 서로 이해 못 하고 몇 년 못 가는 경우도 많아. 믿음이 있었어 서로에게"
난 누군가의 이런 친구일까.
믿을 만한 사람일까.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다.
"너희 아버지 엄청 울보인데. 회사 생활하면서 술만 마시면 힘들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지? 사표 쓴다고 맨날 노래를 불렀지"
"아 겁쟁이인 것도 알아? 무슨 발표만 시키면 논리는 있는데 벌벌 떨어. 우황청심환 먹는 건 필수였어. 그래도 너희 아버지가 동기들 많이 챙겼지."
놀라운 건 아버지랑 많이 안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피는 못 속이는 건가. 나와 아버지는 성격도, 어떤 상황을 대하는 태도, 생각 정말 많이 비슷했다. 이래서 자식인가?
예전보다 지금 2030대들이 살기가 더 힘들지만
그때와 지금이나
그 시기를 지나는 고민은 비슷했다.
아버지가 회사생활 다니면서 하셨던 고민.
그리고 아버지가 하고 싶던 꿈. 아버지가 희생을 하면서 지키고 싶던 가족들.
미워해서
미안했다.
부모님과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냥 눈물이 났다.
당산으로 가는 당산 철교 위에서 양화대교를 바라보는데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노래가 귓가에 맴돌면서.
눈물이 그냥 쏟아졌다.
누가 보면 실연당한 줄 알았을 듯.
왜 이렇게 서먹해지고
왜 가끔은 아버지가 미웠을까.
서먹함 뒤에 가려진 무언가를 아버지 친구분이 보여주신 느낌이다.
아버지를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이제 그만큼 나이가 들었나 보다.
아직 철들고 싶지 않은데
조금씩은 철이 들고 있다.
모진 세상
불평불만을 이겨내고 어떻게 그렇게 사셨는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상사의 구박
후배들의 뒷담화
부인의 바가지
자식들의 등쌀
정작
본인은 무엇을 위해
사셨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나에게 슈퍼맨입니다.
사랑합니다.
표현이 서먹한 자식이라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