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수능이 끝난 동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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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앞에 아주 열심히 살았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을 살아간다면 20살이 되기 전 겪는 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아닐까 싶다.
수능을 4번 응시했다. 정확히는 3번을 쳤지만 말이다. 수능은 내게 인생에 있어 '실패'라는 단어를 안겨주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공부를 못했다.
아니 공부와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던 아이 었다. 운동을 포기하고 공부를 해야 했을 때 막막함 보다는 수능을 잘 봐서 서울로 대학을 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게 인생에 성공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기억도 안 나지만 가족들, 친구들, 후배들, 친척들까지 챙겨주는 엿과 초콜릿에 고마움보다는
부담감이 컸다. 아휴. 수능은 고작 하루인데 이 하루에 내 모든 게 끝나는 것 같았다.
내 기억 속에 첫 수능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갔던 것 같다. 꽤나 시골에 살아서 아침에 학교에 일찍 모여 대형버스를 타고 긴 터널을 지나 아주 큰 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봤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문제는 다음 수능부터였다.
재수를 했다.
공부를 잘해서? 아니... 순전히 내고 집 때문에 [좋은 대학=성공하는 인생=남에게 비치는 모든 것]
뭐.. 아직도 남에게 보이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예전에는 더 심했던 아이 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좋은 대학에 보이기 식으로, 잘 가고 싶었다. 물론 가고 싶던 학과가 명확했다.
재수학원을 갔다. 기숙학원을 들어갔다. 10년 동안 좋아했던 사람과도 이별했다.
잠자는 시간 빼고 자율성이라고 없던 그곳에서는 처음에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과는 달리 그 속에서 놀 것들이 있었다. 건너편에 보이는 부산 서면의 화려한 네온 사인 너머 고요한 섬처럼 재수학원의 시간은 흘러갔다. 그 틈에 방심하기도 했지만 모호했던건 나의 소속감이었다.
고등학교는 졸업했고, 대학생은 아닌 한마디로 백수. 친구들은 새내기 모임, MT 등등 그 생활에 바빠졌고
교복을 입고 한 없이 웃고 떠들었던 친구들과는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6월 모의고사, 9월 모의고사를 지나 수능날이 다가왔다.
재수학원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가야지 수능을 잘 볼 것 같아서 반 팔티를 입고 갔다.
(기숙학원이라서 그다지 밖에 나갈 일이 없어서 11월까지 반팔을 쭉 입었다.)
언어 영역을 치고 나서 느꼈다. 아 망했다.
이때 망함은 고3 때와는 달랐다. 고 3 때는 맞고 틀림조차 없는 애매한 느낌이었는데
고작 1년 더 공부했다고 오는 이 불안한 예감은 과탐영역까지 이어졌다.
수능을 치고 교문을 나오는 순간
이 허무함과 다리에 힘 풀림과 알 수 없는 우울함이 밀려왔다.
1년이라는 시간을 더 투자해서 얻은 결과가 참담했다.
그리고 부모님한테 미안했다.
시험장을 빠져나와 앞에 보이는 육교에 올라갔다.
죽을까?...................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하지......... 멍청한 놈............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좆됐다 싶었다.
"뷔페 가자 예약해놨어~ 얼른 와!"
아... 먹고 죽어야겠다 생각했다.(사실.. 그렇게 자살이라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무서웠다.)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 정말 열심히 아르바이트만 했다.
부모님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 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가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정말 대학을 가야 할지, 수능 공부를 한번 더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성적이 나왔다.
1년 투자한 결과로는 고작 조금 오른 성적
고등학교 때와 뭐 별반 다른 게 없는 성적.
지금 돌아보면 말하지만 재수를 한다고 해서 정말 많이 노력 안 하는 이상 많이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재수를 하는 친구들은 정말 상위권에서 아쉬웠던 친구들이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삼수를 해야겠다 다짐했다.
엄마가 말렸다. "왜 굳이. 이성적으로 대학을 가지!!! 대학 가면 바뀌어~ 그냥 가~대학 가면 생각이 달라져~솔직히 돈도 아깝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현명했다.
아빠를 설득했다. 역시나 반대를 했다.
대학에 진학을 했고 부모님 몰래 삼수를 했다.
학교 수업시간 빼고는 수능 공부밖에 하지 않았다. 독학이었다.
하루에 잠자는 시간 3시간, 밥 먹고 쉬는 1시간 빼고는 공부를 했다.
재수 때보다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삼수를 하는걸 부모님께 들켰다.
엄마가 문제집을 다 찢었다. 아빠가 그렇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진짜 한번 더 시험을 보고 싶다고 했다.
다시 그 기숙학원으로 갔다. 기숙학원 가는 차 안에서 아빠가 말했다.
"너가 내 머리를 닮아 공부를 못하나 보다.. 나도 사실 삼수했어..."
정말 묘했던 건 기숙학원 그 교실, 그 자리에 다시 가게 되었다.
이제는 재수하는 친구들보다 터울이 2살이라 처음에는 말도 잘 안 하고 묵묵히 공부만 했다.
하나, 둘 외로운지 서로 안부를 묻게 된다.
언니는 왜 삼수를 하세요.
삼수는 더 힘들지 않아요.
단지 좋은 대학,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어서 삼수를 하는 나를
굉장히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게 인 서울이 그렇게 뭐길래...
시간이 흘러 수능날이 다가왔다.
세 번째 수능을 치니 친구들도, 친척들도 이제 챙기지도 않았다.
세 번째 수능날
하필 시험장 가는 날 차 안에서 엄마와 약간에 말다툼이 있었다.
엄마는 시험 치는 아침에 그래야겠냐며 나는 휙~ 돌아보지도 않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10분 뒤 경찰이 나에게 와서 엄마가 도시락을 전해주었다.
그렇다. 엄마랑 싸워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도시락을 안 들고 내린 것이다.
도시락을 열어보니 작은 쪽지가 있었다.
"딸, 힘내"이런 멘트를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제발 좀!"이라는 글이 있었다. 하지만 알 것 같았다. 엄마의 마음을
역시나 언어부터 망했다.
끝까지 했다 정말 끝까지
제2외국어 아랍어 까치 치고 나오니
정말 정말 깜깜했다. 그리고 무덤덤했다.
세 번째 수능 성적은 하필 또 운도 없지 등급만 나왔던 때였다.
(딱, 2008년에 한 번 시행하고 없어짐...-_-.............................)
몇 점 차이로 등급이 바뀌는데 머리가 핑핑 돌았던 것 같다. 아직도 의문인건 수능 언어영역을 3번이나 봤지만 3번다 6등급이란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언어를 정말 못했다.
하루에도 쏟아지는 뉴스 속에 나와 가까운 뉴스가 있고, 먼 뉴스가 있다.
그래도 수능과 관련된 뉴스를 볼 때, 아직도 수능날만 되면 괜히 울컥한다.
퇴근하고 노량진을 들렸다. 그리고 재수, 삼수 때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주 가깝게는 1년 만에, 3년 만에 전화하는 친구들
그때는 우리 왜 그리 수능밖에 몰랐을까
그래도 그때가 더 좋았지 이야기하면서도
나도 그랬고, 친구도 그랬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지금이 행복하다고
다시 돌아가면 그때처럼 열심히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살 정말 대학 하나만 을 바라보고 3시간도 안 자고 오기를 가지고 공부했던 나와
퇴근길에 영혼이 털려 힘없는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20살에 나는
30살에 이런 나를 상상했을까?
그냥 쓰윽. 미소만 짓게 된다.
슬리퍼를 끌고 걷던 노량진을 뾰족구두를 신고 걷는다.
삼수 때 하루 용돈 2,000원이라 커피도 사치였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좋은 대학을 가면 성공하고, 행복한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그렇다고 좋은 대학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땐 너무 힘들어서 내 앞에 있는 것만 보였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노력해도 시험 결과는 엉망이라는 사실에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공부라는 것도 어쩜 재능과 요령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수능 중독이었다. 다시 보면 잘 칠 것 같고. 또다시 보면 잘 친 것 같고.
누군가 수능 중독이라는 말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수능이라는 것을 잊고 내가 대학교 1학년이 된 건 어쩌면 22살이었다.
남들보다 3년이 늦은 20대의 시작. 늦게 시작한 탓에 조바심으로 또 다른 문을 열고, 문을 열고 나아갔다.
그리고 지금에 내가 있다. 30살이 되었다.
이제 서야 말하지만 그때 죽지 않길 잘했다.
세 번째 수능을 끝나고 집에 와서 울고 있는 나를 보며
할머니가 해준 말이 생각난다.
수능이 끝났지~ 인생이 끝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