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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omDK Oct 09. 2015

17/642 : 헛간, 폭풍, 하늘색깔.

폭풍 치는 하늘의 색을 묘사하라.

글쓰기 좋은 질문 642를 씁니다.


연습장에 펜으로, 노트에 만년필로, 블로그에 키보드로 씁니다.

세 번을 쓰다 보면 처음과 마지막은 조금씩 달라지곤 합니다.

손에 쥐고 있는 노트와 블로그에 올려둔 텍스트를 간직합니다.


브런치에 올리는 '642'에 대한 답은

블로그에 있는 마지막 수정본을 내키는 대로 수정한

혹은 노트에 적어둔 글을 다시 읽으며 쓰는

'세 번째 수정본'이자 '네 번째로 쓰는 글',

'다시 읽고 써보는 글'이 될  듯합니다.




열일곱 번째 질문. 폭풍으로 삼촌의 헛간이 부서지고 여섯 살 난 조카가 목숨을 잃었다. 폭풍이 휩쓸기 전 하늘의 색깔을 묘사하라.


  (아마도 사촌동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이는) 조카가 여섯 살이었다면 나도 초등학생이었을 시기다. 물론 조카(사촌동생이 아닌 게 뻔한)가 목숨을 잃는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내겐 아직 조카가 없다) 10대 이전의 철부지 남자애가 봤던 폭풍이 휩쓸기 전 하늘은 과연 어떤 색채를 품고 있었을까?

  특출 나게 대단하고 어휘가 풍부한 묘사를 할 수 없는 까닭은 그 당시의 나는 여전히, 아니 그 시절이 시작이었겠지만 독서량 부족의 출발선에 서있었을 테고, 흡수한 표현 가능한 단어의 수가 적었으니 내뱉을 묘사의 자세함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처사.

  아마 두 가지 불상사가 발생하기 전 날 하늘은 둘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 비바람이 몰아치는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날이었거나, 반대로 단어에 충실한 폭풍전야였거나.


   전자의 하늘은 까만 것이 아니라 시커먼 것이었을 테다. 폭풍이 몰고 왔을 것이 분명한 빗방울은 쉴 새 없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을 터. 나는 필시 다음 날 학교에 가는 게 싫어서 얼굴을 찌푸리며 그런 하늘에 야유(혹은 육두문자의 단어들)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하늘이 슬프게 보인다거나 좋지 않은 기분이 드는… 따위의 감정과 결합되는 생각은 아마도,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자의 하늘은 폭풍전야. 밤하늘의 반짝거리는 별구경. 여전히  마음속 한 켠에는 학교 가기 싫음. 차라리 내일 하루 아팠으면 좋겠다는 잔꾀. 이런저런 잔머리를 굴리고 있을, 사실 하늘에는 별 관심도 없었을 어린 시절의 나.


  그렇게 폭풍이 치는 날의 아침은 밝았을 것이고 (있지도 않은 건물이긴 하지만) 삼촌의 헛간은 기어코 무너져 내렸을 것이며 여섯 살이었던 (내 맘대로 사촌동생이란 의미를 부여한) 조카는 목숨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2015년 10월 2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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