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변화를 위해서 3가지를 바꾸라고 한다.
'환경, 사람, 시간'
한 번에 세 가지를 바꾸려고 생각해 보니 '환경' 하나만 바꾸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으면 매일 공부하기 좋은 환경으로 가면 된다. 그곳에는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그런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는 공부를 위한 시간을 쓸 수밖에 없다.
단순한 삶의 원리들이 가끔씩 거창하고 무겁게 다가올 때면 힘을 빼는 게 비책이었다.
현실적인 범위 내에서 환경을 바꿨다. 육체적으로는 그간의 공간에서 크게 분리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벗어났다.
'난 이제부터 완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거야.' 하고 뇌를 속인다.
하지만 물리적인 변화가 없으니 주변 사람의 변화가 있을 리 만무했다. 매일 보는 가족, 오며 가며 만나는 익숙한 이웃들, 오늘도 다름없는 카페 아르바이트생, 똑같은 카톡 대화창.
삶을 덩어리째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구분은 의미가 없었고 오프라인 친구들 대신 온라인 친구들을 만들었다. 덕분에 삶의 70%를 바꿀 수 있었다.
시간을 다르게 쓰기 위해 집중할 때마다 감성이라는 영역이 나를 방해했다.
집중을 할 때 쓰이는 뇌의 일부분은 자꾸 과거의 기억을 소환했다. 때문인지 이따금씩 울고, 종종 분노를 되새김질하고, 상대방을 향한 미안함에 죄책을 곱씹다가, 추억에 젖어 옅은 미소를 짓기도 하고, 즐거웠던 기억을 소환하고, 누군가를 혐오했다.
미친 건가 싶은 잡스러운 모습들은 현타가 오는 동시에 멈췄다. 인생 좀 바꿔보겠다고 늘어놓은 것들이 눈에 보이면서 다시 이성을 주섬주섬 챙긴다.
'유연한 단단함. 온화한 냉철함'
따스하다 못해 뜨거운 감성을 누르려면 이성은 필요 이상으로 차가워야 했다.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부러질 듯 연약해지고 멋없이 냉소적인 태도를 반복하면서 '시간'이라는 영역은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인지했다.
하루를 삭제하듯 견딘 수행에 가까운 날들이 하루씩 채워졌고 부풀어 오른 몸집과 노곤한 얼굴 속 약간의 총기 있는 눈빛이 그 결과로 남았다.
3가지를 모두 바꾸었음에도 삶의 큰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다. 서러울 만큼 모든 것들이 그대로였고 또다시 출발선이었다.
누군가를 마주하는 게 두려울 만큼 자신감도 총기도 잃어갈 때쯤 나를 처음 만난 사람이 말했다.
"요즘 어린 친구들하고 다르게 눈빛이 살아있네요. 뭐 하나 하겠다고 다짐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어떻게 해서든 해낼 것 같아요. 눈이 강인하고 힘이 있어요"
차가운 이성을 가져야 한다고 수천번씩 되뇌던 혼잣말이 무색하게 난 그 한마디에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우는 건 또 처음이라 휴지를 건네받으면서 민망함에 웃다 울다를 반복했다.
삶이 조금이라도 변했으면 좋겠다는 절실함은 나의 온몸 곳곳에 묻어있었다. 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걸 알아주었고 그걸 알아주는 마음들이 전해질 때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다.
계속되는 고통과 흠집을 인내하고 메우는 과정에서 내 몸들은 묵묵히 초과회복을 해주고 있었고 덕분에 두터워진 굳은살은 다른 사람들 눈에 띄었고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들로 인해 나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환경, 사람, 시간' 3가지 영역에서 변화의 주체가 되어보면서 그동안 몰랐던 내면의 욕구와 삶의 변화를 만났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느끼고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