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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대여성 Oct 03. 2020

인스타그램 계정 비활성화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후폭풍이 있을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내 마음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상 자체의 큰 변화는 없지만 평온한 마음가짐이 이전보다 길게 유지된다.


계정 자체를 탈퇴하고 삭제할 용기는 없었기에 일시적으로 비활성화를 하고 어플을 지우면서 생각했다. 혹시 누군가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을까, 관계의 끈이 전부 끊어지진 않을까 등.


하지만 계정을 없애고 어플을 지운 순간부터 나는 그 세계로부터 잠시 빠져나온 듯하다. 몇 년 동안 꾸준하게 내려받던 사람들의 소식이 차단되면서 누군가의 삶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고 소식을 내려받지 못한다고 해서 불안하지도 않다. 딱히 보고 싶은 사람도, 궁금한 사람도, 연락하고 싶은 사람도 없다. 연락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연락처로 직접 연락을 했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약속을 잡아 만나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정보 찾기가 쉽다는 핑계로 먹고 놀 궁리만 했고, 핫하게 떠오르는 장소들을 알아낼 땐 인생 샷 찍을 생각만 했다. 보여주기 식 친목질에 괜한 소외감과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고 조금씩 자주 사람들과 오해가 생겨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고 별로라고 하는 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다채롭게 생각하던 사고방식은 점점 획일적으로 변해가고 나의 삶은 그렇게 소진되고 있었다.


작품들만 모아놓은 전시회 같은 공간을 감상하면서 전시회를 열기까지의 노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발버둥 치며 애쓰는 모습은 보지 않고,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 착각하며 부러워했다. 어지러운 방 한구석만을 정돈하고는 예쁜 패턴의 천을 깔고 찍은 그럴싸한 작업 공간을 보며 '좋은 집에서 팔자 좋게 사네'라는 단순하고 멍청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을 하는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때가 되면 여행을 가고 캠핑을 다녔다. 퇴근 후에는 혼자 내추럴 와인을 마시며 영화를 보고 출출해지면 아보카도와 연어를 곁들여 먹는다. 아점을 먹지 않고 브런치를 먹는다. 삼다수가 아닌 에비앙을 마신다. 우드 식기에 아사이볼을 가득 담아 먹는다. 테이블엔 꽃과 책이 놓여있다. 계피가 아닌 시나몬을 뿌린다. 혹시 어딘가에 인스타그램 유저 10계명이 있는 걸까.


비가 오는 날엔 온 피드에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 날엔 곳곳에서 눈사람 이모티콘이 보인다. 더운 날에는 비 좀 내리라고 하다가 막상 비가 내리면 우울하다고 막걸리나 마셔야겠다고들 한다.




초단위로 업데이트되는 담벼락을 보며 정신을 차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시간에 많은 정보들이 오가고 수많은 감정들이 소모되는 이 가상공간 속에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사람 사이의 휴식을 취하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늘 생각만 하던 계정 비활성화를 실행에 옮긴 지금은 생각보다 좀 더 괜찮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덜 괜찮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애써 외면하려 했던 누군가의 소식이나 일상들이 문득 궁금할 때면 새삼 그 사람과 나의 거리감을 실감하며 마음이 저릿할 때도 있고, 반강제적으로 내려받던 다른 사람들의 소식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때는 어떤 해방감과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계정을 잠시 없애고 어플을 삭제하면서 몇 가지 다짐을 했었다. 자격증 공부, 독서, 운동, 여행 등이 그런 것들이다. 마음먹었던 일들을 천천히 해나가고 있긴 하지만 인스타그램을 안 한다고 해서 이런 일들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열과 성을 다해 살고 있지 않는 이유를 인스타그램 탓으로 돌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상 세계 속 인물과 사건들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며 현실 속 시간에 집중하지 않은 건 이 어플 때문만은 아니었다. 난 그저 멍하니 흘려보낸 시간들을 합리화할 수 있는 어떤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고 인스타그램은 운이 좋지 않게 걸려든 것뿐이다.


또 다른 시선으로는 타의에 의해 아웃사이더가 되기 싫어 자발적으로 그것을 선택한 사람일 수도 있다. 어딘가에 제대로 속해있다는 안정감을 받지 못해서 오는 스트레스를 스스로 차단해버린 것이다. 관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더니 맞는 말이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나는 사람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현재의 나는 가상 세계 속 관계들과 거리를 두고 잠시 쉬어가고 있다.


요즘 가을 하늘은 매일이 아름답다. 손바닥만 한 세상 속에서 나는 뭐가 그리 즐겁고 또 뭐가 그렇게 신경이 쓰였을까. 내 손으로는 가늠할 수도 없는,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세상에 관심을 가지며 조금 더 단단하고 평온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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