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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대여성 Sep 27. 2020

"왜? 사장이 아니라 점장이라서 싫어?"

모든 사람들이 너 같지만은 않아








 대학생 시절 소개팅을 한 적이 있다. 소개를 받기 전에 사진이라든가 그 사람에 대한 여러 정보에 관해 캐묻지 않는 편이다. 일종의 색안경을 쓰기 싫어서다. 그렇게 상대방의 이름과 나이만 알고 소개팅에 나갔다.


 여느 소개팅이 그렇듯 맛집이라는 식당에서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전 그쪽이 마음에 들어요" 혹은 "저는 그쪽이 별로네요. 이쯤에서 시마이 하시죠"라는 말을 하지 못하니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나온 사람들처럼 쉬지 않고 서로에게 질문을 주고받았다.


또 만날 마음이 없었기에 2차를 가자는 그 사람에게 내일 오전에 일정이 있고 혼자 택시를 타고 집까지 가면 무서우니 지하철 있을 때 가겠다고 말했고 다음에 만날 수 있으면 만나자며 대충 둘러댔다. 그러자 본인 어깨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내일 주말인데 무슨 일정이 있어~ 나한테 마음이 없는 거지 그냥"이라고 말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무례하다는 생각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거의 뛰었다) 지하철 역으로 갔고 집으로 가는 길에 우수수 쏟아지는 전화와 카톡을 보고 식겁해서 연락처를 차단했다.






 그 당시에 자주 연락하고 만나던 친구에게 소개팅 후기를 전하며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기에 솔직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의 직업은 한 술집의 점장으로 매장 전반적인 것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프랜차이즈 술집 점장에 대한 기억이 워낙 안 좋았기에(알콜 중독, 성희롱 등) 나는 그 친구에게 "그런데 술집에서 일하면 출퇴근 시간도 나랑 너무 다르고, 보니까 술도 좋아한다고 하셨고 되게 잘 드시더라고. 그래서 그런 부분이 좀 별로라 또 볼 생각은 안 들었어"라는 식으로 말했다. 아마 친한 친구였으니 이렇게 순화해서 말하진 않았겠지만.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

“왜? 점장이라서? 사장님이었으면 괜찮고?"


순간 무슨 의도로 나에게 이런 비아냥 거리는 메시지를 보낸 건지 당황해 그 자리에서 멈췄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멈춰 섰던 역이 뚝섬역이라는 것도 기억할 정도다. '점장이라서 싫은 건 뭐고 사장이어서 좋을 건 뭐야'라는 생각을 하며 그 친구의 말을 곱씹었다. 그 뒤로 그 친구가 보낸 메시지들을 보며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단순 명료하게 이야기하면 나를 속물로 몰아가고 있었다. "말실수해서 당황했지..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해"라며 상황을 넘기려 하는데 "아니? 말실수한 거 없는데 안 민망해"라고 답장이 왔다. 그 뒤로는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난 일인데 아직도 생각하면 당황스럽고 기분이 좋지 않다. 속된 말로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재가며 만난 경험이라도 있으면 억울하거나 언짢지도 않았을 거다.


본인 삶에 씌운 프레임을 왜 나한테도 똑같이 씌우며 혼자 욱한 건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혼자만 속물이 되기 싫었는지 아니면 그냥 나를 까내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남자 친구가 갑자기 망해 모든 돈과 능력을 잃어도 전혀 상관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던 친구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세상 사람들을 나열하는 재미에 살았던 너에게 묻고 싶다.


소개팅에 나온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사장님이면 만나고 점장님이면 안 만났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가 아니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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