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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대여성 Oct 19. 2020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해외여행을 할 때면 한국인을 최대한 덜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처음 가본 낯선 땅에서 가장 간절해지는 건 한국 음식과 한국인이다.


모두가 일할 때 떠났던 해외여행. 그리 유명하지 않은 지역의 끝자락으로 갔었기에 한국어는 일주일 넘도록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호스텔에 묵으면서 자연스레 많은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서툰 영어로 열심히 대화를 하다 보니 현타가 많이 왔다. 내가 표현한 것과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것이 다를 때 오는 그 싸한 분위기. 서로의 표정을 통해 캐치는 했지만 모르는 척하는. 그런 것을 느낄 때마다 한국인이 그리웠다. 어디서 왔냐는 물음으로 시작된 대화는 그들이 몇 살 때 어디서 대마초를 해봤는지 알게 되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다. 호스텔에서 그들을 마주칠 때마다 ‘네덜란드-대마초’ 이런 식으로 기억을 해냈다.




'기승전대마초' 틀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인을 찾아야 했다. 자극적인 이야기보다는 소소한 주제로 수다를 떨 상대가 필요했다. 오늘 뭘 먹었고 뭘 했는데 한국이랑은 이런 게 비슷하고 이런 게 다르더라.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할 줄 알았는데 비슷하다. 여기는 그런 게 신기하지 않냐. 새로운 여행지에서 알게 된 것을 공유하고 싶고 공감받고 싶었다.


그렇게 웬만해서는 묵지 않으려 했던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한국인들이 주로 묵는 숙소답게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김치찌개에 삼겹살이 있었고, 주섬주섬 챙겨 온 한국 아이템들을 한두 개씩 꺼내 곁들여 먹고 있었다.


두 명에서 세명, 세명에서 다섯 명, 인원은 그렇게 늘어 열명 가까이 되었다. 나이도 하는 일도 관심사도 취미도 입맛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뤘다.




온천물에 계란을 삶아 먹고, 노을을 보러 20분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고, 맛집(혹은 그렇게 보이는 곳)을 함께 다녔다. 낮이면 수영을 하러 가고 오후면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밤이면 재즈바에 갔다.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다 보니 같은 곳이었지만 다르게 느껴졌다.


한 명씩 사람이 더 모일수록 마음을 나누고 채웠다. 언제 어디로 갈 지 모르는 수많은 갈래가 있는 여행길에서 만났으니 언제 또 헤어질지 몰라 하루하루가 아쉬웠다. 아쉬움이 짙어지는 만큼 추억의 깊이도 짙어졌다.




마중을 하던 손짓은 배웅으로 바뀌었다. 막연하게 ‘안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냈다.


혼자만의 여행을 위해, 회사 휴가기간이 끝나서, 사업 때문에, 결혼 때문에, 온전한 배낭여행을 위해, 이젠 다른 여행지를 가고 싶어서. 각자의 또 다른 여정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다.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10명에서 9명이 되어도 휑했다. 어떤 말을 그냥 듣는 것과 실제로 체감을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그냥 허전한 것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겠거니 생각했던 이 문장을 직접 겪어보니 알았다.


한 사람의 자리가 비어지는 것은,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그 사람의 인생, 서로가 공유했던 감정,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떠나간다는 것이었다. 어쩌다 한번 꺼내볼 추억으로 자리 잡는 과정이 어떤 단어로 대체가 될까 싶었다.




원래는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을 통해 배운 것들을 곱씹어보는 요즘. 여행이 간절해지는 시기인만큼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


혼자에서 두 명, 세명 늘어 10명이 넘게 모였다가 다시 혼자가 된 지금이지만 그때 사람들과 공유했던 온기와 향기는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누군가가 떠남으로써 눈에 보이는 것은 줄어들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두둑이 채워진다는 것을 배우고 온 지난 여행을 통해 이 문장은 단순히 '있을 때 잘해라'라는 뜻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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