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떡국
한 해를 통틀어 따지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끓여 먹는 게 떡국이지만, 공식적으로 ‘나이를 먹는 떡국’은 두 번이다. 1월 1일의 떡국, 그리고 설날아침 떡국.
엄마는 1월 1일의 떡국은 ‘간단한 떡국’이라고 불렀는데, 아침에 해돋이를 보러 산에 올라갔다 내려온 다음 다들 씻는 동안 휘리릭 끓이는 떡국으로, 비린내 안 나는 좋은 멸치와 다시마를 제법 많다 싶을 정도로 넣어 육수를 내고 물에 한 번 씻은 가래떡을 넣고 끓인 우리집 보통날의 떡국이다. 차례로 씻고 나오면 불지 않을 정도로 알맞게 익은 떡에, 황백지단과 김을 가지런히 길게 썰어 고명으로 얹고 마지막으로 마늘과 간장 양념해서 볶은 다진 쇠고기도 한 숟가락 올라간다. 불지 않은 떡 덕분에 국물도 맑은 편이라, 겨울날 밥 해 먹기 싫은 날에 혼자서 종종 끓여먹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국이다.
음식 공부를 시작하면서 팔도 지역의 떡국이 모두 조금씩 다른 스타일로 끓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의 푹 끓인 사골국물이나, 양지로 끓여 맑은 고깃국에 끓인 떡국, 큰 만두를 넣은 이북식 떡국, 개성의 목을 조르는 조랭이떡국, 심지어 지진 두부가 올라가는 강원도식 떡국. 우리나라가 이렇게 넓었던가 싶을 정도로 떡국이 다양했다. 공부를 하면서 만두가 들어간 떡국도 먹기 시작했고(개인적으로 물에 넣어 끓여진 만두를 싫어한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인사동 어느 만두집에서 개성 조랭이떡국을 먹으러 가기도 한다.
그런 많은 떡국을 만들고, 먹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떡국은 바로 [닭장떡국]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닭장 떡국은 전라도식 떡국이었다. 토종닭(할머니는 노계를 고집하셨다.)을 푹 삶아 뼈를 발라낸 다음 살은 결대로 찢는다. 이 때 삶은 닭 안에서 알이 나오면 럭키! 아이들의 몫이었다. 가끔 두 개 붙어 나오기도 했다. 그냥 할머니가 좋은 거라고 해서 그런지 나는 알이 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은 닭을 손질하는 할머니 옆에 앉아 할머니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알이 나오지 않아도 좋았다. 할머니는 크게 찢은 살을 입 안에 넣어 주셨다. 쫄깃쫄깃 하다 못해 질깃질깃한 닭살. 그게 무슨 맛이라고…
찢은 살에 기름을 걷어낸 육수를 다시 붓고 다진 마늘 한 두 수저와 집간장을 많다 싶을 정도로 붓는다. 다시 끓이기. 찢은 닭살에 양념이 고루 배면 간을 보고 “아이고 짭다” 할 정도로 간이 되면 불에서 내린다. 식으면 닭 육수가 젤리처럼 굳는다.
음력 1월 1일. 까치 설날이 지나고 우리우리 설날이 되면 아침에 차례상을 차린다. 온 식구들이 모여 한복을 갈아입고 제기에 과일이며, 전이며, 술과 한과 등을 올릴 때 엄마는 할머니가 전 날 만든 닭장을 꺼내 떡국을 끓인다. 물에 닭장을 넣고 끓으면 떡을 넣는다. 떡이 떠오르면 간을 봐서 싱거우면 집간장을 더 넣어 간을 맞춘다. 미리 만들어 둔 고명을 올리면 설날 떡국은 완성이다. 사실 차례를 다 지내고 나면 미리 끓여둔 떡국은 불을대로 불어있다. 식구들이 먹을 떡국은 나중에 끓이지만 상에 올렸던 떡국과 냄비에 남은 불은 떡국도 누군가는 먹어야 한다. 아빠, 작은 아빠, 삼촌, 할머니 보통 이렇게 하면 상에 올린 떡국이 끝나지만 가끔 조금 많이 끓인 날엔 나에게까지 불은 떡국이 오는 경우가 있다. 푹 퍼진 떡과 쫄깃질깃한 닭살의 조화가 정말 한마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맛이다.
한 해가 시작하고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새해 새 마음 새 뜻으로 세운 계획 중 절반 이상은 이미 흐지부지 되었고, 슬슬 아침에 늦잠을 자기 시작한다. 다시 마음을 잡아야지 하면서 달력을 본다.
‘맞아, 아직 진짜 새해는 시작 안했잖아. 진짜 새해는 설날부터지~ 지금부터 다시 계획을 잘 짜봐야겠어. 무리하지말고 할 수 있는 선에서 계획을 세워야지.’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왠지 설날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분이다. 대단히 새로운 일은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시작하자고 마음먹는 날. 오늘, 할머니와 엄마에게 전화를 해 가면서 닭장을 만들고, 남편과 마주앉아 닭장떡국을 끓여 먹었다. 이젠 시집을 와, 설날아침 할머니와 엄마의 합작품인 닭장떡국을 먹을 수 없게 되서 그런지 그 맛과 마음이 조금 그립다. 다시 시작하며 화이팅 하는 마음. 시작하는 날 선물같은 음식. 닭장떡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