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포
명절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결혼 전에는 즐겁게 집에 내려가는 날이었는데, 결혼 후에는 딱히 어렵고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절이 다가오면 이것저것 신경이 쓰인다. 추석에는 직접 송편을 빚어서 한 바구니 만들어서 갔었고, 지난 설은 시댁에서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선물 같은 건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불현듯 육포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2월에 마무리한 클래스에서 전통발효음식을 했었기 때문인지, 울산집에 육포가 (드디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집은 육포라고 하는 건 만들지도 사먹지도 않았다. 가끔 아빠친구분들이 오셔서 양주를 드실 때 포 종류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어포였지 육고기로 만든 포는 아니었다. 지금처럼 백화점에 [비첸향]이 들어와있지도 않았고, 우리집은 ‘좋은 고기는 회로 먹거나 구워 먹는다’ 분위기였기 때문에 양념하고 이후 공정이 있는 고기는 생각을 해 본적도 없다.
그러다 대학원에 와서 향토음식시간에 처음으로 육포 라는 것을 만들었다. 당시 반에서 제일 막내였던 나는 경동시장 어느 정육점에서 교수님 성함을 말씀드리고 육포용 고기를 구입해 왔다.
‘기름기 없는 우둔, 5mm, 넓게 넓게’
교수님은 언제나 강의시간 30분, 어떤 날은 한 시간 정도 먼저 오셔서 실습 준비를 하셨다. 그 날은 한 시간 정도 먼저 오셔서 넓직한 플라스틱 채반에 고기를 넓게 펼쳐 핏물을 빼셨다. 같이 실습 준비를 하던 나에게 교수님은 소주를 살짝 젹혀서 빼면 잡내가 더 빠진다고 말씀하셨고, 더불어 고기가 양이 많을 때는 켜켜이 키친타올을 깔고 시간을 더 오래 두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장물을 끓여 식히고 고기에 양념을 하고 다시 채반을 꺼내 이렇게 널어 말리면서 약간 꾸덕한 느낌이 들면 뒤집어 주면서 잡아 당겨주어야 바른 육포가 나온다고 알려주셨다. 아마도 그 날 나이가 많았던 언니가 통째로 들고가서 다음 시간에 말려왔고, 그게 내 첫 육포였다.
그 이후로는 강의도 몇 번 했고, 선물용으로도 몇 번 말려 육포는 나름 자신있다 했는데, 이번에 말린 육포는 정말 큰 미션이었다. 친정과 시댁 상에 올리고, 남편의 아는 몇 분에게 선물도 하면 어떨까 싶어 한우 우둔을 주문했다. 적당히 5kg정도 했는데, 집에 펼쳐보니 양이 제법 많다. 남편이 먹다 남긴 소주에 향이 좋은 매실주를 섞어 양푼에 담고 고기를 한 장씩 젹셔 채반에 널었다. 켜마다 키친타올을 깔면서 밑손질을 하고 나니 10cm*30cm 고기가 서른장이 약간 넘는다. 오 마이 갓. 제일 위에 키친타올을 몇 장깔고 위에 시루를 올려 베란다에 두고 핏물 빼기를 약 다섯시간. 아래 받쳐둔 양푼에 맑은 피가 제법 고였다. 핏물을 너무 빼진 않는다. 완전히 빼버리면 고기잡내는 사라지겠지만, 동시에 고기의 풍미도 사라진다. 핏물을 빼는 동안 진간장과 설탕, 물엿에 생강, 건고추 그리고 물 반컵 정도를 넣고 팔팔 끓인다. 통후추도 적당히 넣는다. 생강과 마늘은 고기 잡내를 잡고 장물을 맛있게 만들고, 건고추는 간장특유의 찝지름한 맛을 개운하게 만들어 준다. 통후추는 없으면 순후추를 사용해도 되지만, 육포에 까만잡티가 생기게 되서 아무래도 보기가 좋지가 않다. 장물이 한 번 팔팔 끓으면 꿀을 300g정도 넣고 섞어 녹여준다. 전통육포를 약포라고도 하는데, ‘약’자가 들어가는 것들은 대부분 꿀과 참기름이 들어간다. 꿀은 장물에 섞고, 참기름은 먹기 전에 발라 굽는다. 핏물이 다 빠졌다 싶어 확인하면 끓여 걸러 받쳐둔 장물도 다 식었다. 고기를 (좀 귀찮지만) 한 장 한 장 정궈 큰 양푼에 차곡차곡 쌓는다. 다 쌓고 난 다음에도 장물은 남는다. 그 때 장물을 고기에 다시 부어 주물거려 고기에 흡수 시킨다. 고기 양이 적을 때는 바로 장물을 부어 주물러도 되지만 양이 많아지면 한 장씩 정군 다음 다시 주무르는게 양념이 더 고루 배인다. 10분 정도 주무르고 나면 조금 남은 장물이 핏물처럼 붉어진다. 남은 장물은 버리고 고기를 한 장 한 장 건조기에 손으로 잘 펼친다. 이 때 잡힌 모양이 거의 최종 모양이니 잘 잡아 주는 것이 좋다. 찢어진 부분은 서로 붙이고, 조금 두껍다 싶은 부분은 늘여준다. 모양도 거의 비슷하게 맞추면 나중에 선물 할 때나 상에 올렸을 때 보기도 좋다. 집에서 사용하는 가정용 건조기를 40도에 맞추고 시간을 가장 길게 맞춘다. 채반에 널어두면 날씨에 따라 마르는 시간이 다르지만 건조기를 사용하면 완성까지 거의 10시간 정도로 일정하다. 크게 오그라들지도 않아 잡아 당기거나 나중에 다시 손으로 잡아 펼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서른장을 다 말리니 사흘이 지났다. 한 번에 말릴 수가 없어 한 번 양만큼 포장해 냉장에 두었다가 꺼내 말리기를 반복했다. 사흘 내내 집에선 날 것도 익은 것도 아닌 고기 냄새가 난다. 비릿한 고기 냄새.
말릴 땐 아침저녁 환기시켜도 집에 들어올 때 마다 나는 냄새가 지옥같아 다신 집에서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면서 냉동고 한 칸 가득찬 육포를 보니까 든든하다. 차례상에 예쁘게 올려 조상님께 소원도 하나 더 빌어보고, 살짝 구워 명절 저녁 시댁에서 맥주 안주로도 먹고, 친정 아빠 등산용으로 길고 얇게 잘라 포장해 보내드리고, 예쁘게 대추, 호박씨 모양내서 올려 선물도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