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은 참깨
마트에 가면 말 그대로 “없는 것 빼곤 다 있다”. 그런 마트는 정말 편하다. 특별히 유기농이나 착한 농작물을 먹어야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나는 장을 보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 길어도 이주일에 한 번은 대형마트에 간다.
한국음식을 하다보면 가끔 ‘실깨’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실깨, 생소할 수도 있는 이것은 우리가 깨강정이라고 하는 것의 재료이다. 유난히 하얀 깨. 통깨를 불려 껍질을 깐 깨를 말한다. 나는 잘 하진 못해도 떡과 과즐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이 귀찮다고 할 만한 작업은 대부분 내가 먹기위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 레시피를 딱히 보지 않더라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과즐중에 깨강정이 있는데, 고소하고 바삭한 그리고 달콤한 맛을 시간차로 느낄 수 있는 깨강정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깨강정은 그냥 통깨가 아닌 실깨를 이용해서 만든다. 물론 통깨를 사용했다고 해서 못먹는 음식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양과 색이 고급스럽지 못하고, 입안에서 깨의 껍질이 영 불편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실깨를 만드는 과정인데, 깨를 물에 불리고 커터기를 이용해서 드륵 살짝 돌린 다음 물에 껍질이 씻겨 내려가도록 일일이 손봐야하는 것이 영 일이 많다. 게다가 껍질이 완전히 제거되고 나면 물을 가득 머금은 깨를 다시 볶아 수분을 다 날릴 수 있도록 볶아주어야한다. 이런 귀찮은 과정을 마트에 가면 ‘실깨’를 판다. 하얗게 껍질을 벗긴 실깨. 물론 통깨에 비해선 값이 비싸지만 과정에 내가 들이는 공을 생각하면 많지 않은 양은 구입해서 먹을만 하다.
이렇게 실깨조차 마트에 통에 담아 파는데, 엄마는 아직도 깨를 직접 볶아 사용한다. 여기저기 시골에서 깨를 보내주는 탓이겠지만, 판매되는 깨들은 확실히 국산인지 믿을 수도 없고, 국내산이라고 스티커 한 장 붙어있으면 그 가격도 만만치가 않으니 늘 집에는 한 번에 많은 양은 아니더라도 1~2주 가족이 먹을만큼씩 볶아 통에 담아 사용하신다.
문제는 엄마는 내가 집에 들를 때마다 깨를 볶는다는 것이다. 나는 집에서 많은 일을 하진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하던 몇몇가지 주방일이 있다. 카레를 눌러붙지 않게 저어주는 것과 깨를 볶는 일. 희안하게 엄마는 깨를 볶는 일은 나에게 시켰다. 물론 깨의 티를 제거하거나 물에 씻는 작업은 한참 커서야 알려주셨지만, 낡은 붉은 궁중팬에 물 젖은 깨를 넣고 나무주걱으로 살살 고루고루 뒤집어가면 볶는 일은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물을 무치는 동안, 쌀을 씻는 동아 나에게 나무주걱을 넘기시면서 “알지? 타면 안돼, 큰일나” 라고 하셨다. 그때는 귀찮은 일이라 나에게 넘기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깨를 볶는 동안 엄마와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왜 깨를 굳이 볶아야 하는지, 엄마는 왜 시금치를 그렇게 다듬는지, 왜 나물에는 집간장을 쓰는지, 찌개의 거품은 왜 걷어내야하는지 등을 물어보면서 어느순간 타닥-하는 소리와 함께 깨가 튀면서 그 모양이 빵빵하고 동그래 지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깨를 볶으면 온 집에 고소한 향이 가득하다. 아빠는 퇴근하고 들어실오시면서 “깨 볶았나?” 라고 물으셨고, 동생은 딱히 좋아하지도 않으면서도 “언니, 나 한 입만” 하면서 넓지도 않은 주방에 들어왔다.
신혼의 알콩달콩함을 흔히들 깨볶는 소리, 냄새에 비교하곤 한다. 고소한 그 향과 크지 않은 소리로 타닥타닥 하는 것이 드라마, 영화에서 보는 그런 예쁜 신혼부부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아마도 나는 결혼을 하면 남편에게 나의 나무주걱을 쥐어주면서 또 다른 주방을 만들어 내겠지. 가끔은 타닥 하는 소리와 함께 “불 줄여!!” 라고 급하게 소리 지르기도 하고, 부분부분 태운 깨를 보고선 앞으론 그대의 반찬에는 탄 깨를 뿌려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겠지.
문득 마트의 편리함과 집안에서의 소소한 즐거움을 우리가 바꿔버린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말에는 집에서 가져온 깨를 일어 고소하고 탱탱하게 볶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