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세가지 재료로 완벽한 너에게

밥알이 동동 부의주

by 타래

가끔씩 생각해 본다. 내가 그 날 그 순간에 너 아닌 다른 것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2007년 이었고, 나는 겨우 스물 네 살 이었다. 정말 뜨거운 날이었다. 그 때 나는 한참 이태원 그리고 ‘핫 플레이스’에 빠져있어서 오전 일찍 해밀턴 호텔에 도착해서 [태닝]을 했고, 대낮에 시원하게 맥주를 한 잔 한 그런 뜨겁고 나른한 여름날로 기억한다. 이미 이렇게나 좋은데, 굳이 자리를 옮겨 널 만나러 가야할까 싶은 그런 날.


색색의 이쁜 수영복을 입은 핫바디 언니오빠들을 뒤로 하고 널 만나러 간 곳은 3호선 녹번역 근처 어느 오래된 건물이었다. 상큼보다는 시큼에 가깝고, 갈색 항아리들이 쌓여있는, 서울 한 가운데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은 그런 조금 어둡고, 습습한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약속시간 40분 전에 도착한 나는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10분 정도 지나자 내 또래의 젊은 여자가 들어와 너를 만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해보자고 한다. 젊은 여자가 웃으면서 한 마디를 한다.


“그 녀석을 만나기에는 이런 한 여름보다는 따뜻한 봄날이 더 좋았을텐데요.”


큰 주전자에 가득 물을 담아 가스렌지에 올려 끓이기 시작한다. 동시에 30인분 곰국을 끓일 수 있을 것 같은 큰 들통에도 물을 1/3정도 담아 끓인다. 그러고선 작은 항아리 하나를 번쩍 들어 뒤집어 속에 불 붙은 짚을 넣어 연기가 가득차게 한다. 하나 둘 씩 오는 사람들이 기침을 하면서 들어온다. 항아리를 잡고 있는 나는 이미 눈물 콧물 범벅이다. 항아리가 바닥까지 뜨거워지면 짚불은 끄고 항아리에 조금 전부터 팔팔 끓고 있던 주전자의 물을 붓는다. 고무장갑을 끼고 깨끗한 행주로 항아리 속을 박박 닦아낸다. 거뭇거뭇한 것들이 묻어나지만 닦아내는 작업을 두 세번 하고 나면 깨끗해진다. 다시 끓는 물을 붓고 흔들흔들 흔들어 부어내 버리기를 두 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작업은 너를 만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했던 작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요즘 가끔 널 보기 전엔 그냥 팔팔 끓는 물 위에 항아리를 뒤집어 놓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쌀을 씻어야 한단다. 보통 양의 쌀이 아니다. 아닌게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처음보는 쌀 양이었다. 지름 50cm가 넘는 스테인리스 양푼에 넘치도록 쌀이 있다. 찰랑찰랑 하는 물에 손을 넣고 쌀 밑으로 바닥까지 뒤적이고 물을 버린다. 깨끗했던 물이 금새 뿌옇게 변했다. 물을 받고 버리고, 다시 받아 버려 다시 깨끗한 물이 나올 때 까지 해야한단다. 그래야 깨끗한 너를 만날 수 있단다. 사실 이 때부터 나는 ‘널 안 만나도 그만’ 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복잡하다. 귀찮기도 했다. 그렇게 뽀얗게 씻은 쌀을 체에 받쳐 물기를 뺀다. 그리고 이미 끓어 불을 줄여놓은 들통 위에 시커면 시루를 올리고 구멍이 촘촘하게 뚫린 큰 천을 넣고 쌀을 붓는다. 위로 올라온 천의 모서리들은 대충 접어 시루에 넣어버리고 뚜껑을 덮는다. 그렇게 약 30분 정도가 지나면 김이 나기 시작한다. 어떤 날은 20분이면 충분하기도 하고, 가끔 어떤 날은 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쌀 양에 따라서 다르고, 불 세기에 따라서도 다르다. 시루 뚜껑 위로 김이 마구 올라오면 뚜껑을 열고 넣어뒀던 천을 확 제쳐 연다. 주걱으로 푹 쑤셔 잘 들어가면 성공. 갓 지은 쌀밥 섞듯이 고루고루 뒤집는다. 그리고 다시 뚜껑을 덮고 15분 정도 지나면 어떤 쌀이든 잘 익는다. 대나무로 만든 발이나 멍석같은 것을 깔고그 위에 솥에 넣었던 천 통째로 펼쳐 다 된 밥을 식힌다. 김이 사방팔방으로 올라와 한 여름에 이 작업은 정말 죽음이다.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땀이 삐질 난다. 모두가 너를 만나기 위해서 하는 일들이다. 물론 한 두번 이 일을 하다가 너와의 케미가 별로라고 생각하고 빠지는 사람들도 많다.


밥이 식혀지는 동안에 또 다른 준비를 한다. 깨끗한 물을 준비하고 누룩을 부어 불린다. 이걸 보통 ‘수곡’이라고 부른다. 여름에 너를 만나기 위해서 해야하는 반드시 해야하는 일 중에 하나다. 사람마다 다르고, 너를 소개한 책마다 다르긴 하지만, 요즘 나는 보통 30분에서 1시간 정도 불려둔다.


밥이 다 식으면 큰 양푼에 쌀과 수곡을 섞어 손으로 휘젓는다. 꾹꾹 누르기도 하고 조물조물 만지기도 한다. 어떤 이는 대충 섞어서 그냥 두기도 한다. 각자의 방식대로 섞어 아까 눈물 쏟아가면서 소독한 항아리에 담아 이불로 감싼다. 이 작업이 처음 시작할 때에는 제일 중요하다고 느꼈었는데, 나중에 널 자주 만나다보니, 이 작업은 때때로 중요하기도,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 봄과 가을엔 이 작업을 약간 소홀해도 말 그대로 ‘날씨가 도와줘서’ 완벽한 너를 만나기 쉽다. 겨울엔 이 일을 소홀히 하면 영영 너를 만나기 힘들기도 하다. 이래서 사람은 여러번 만나봐야 알 수 있다고 하나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완벽한 너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니 정말 어렵다.


이렇게 눈물 콧물에 땀까지 쏟아가면서 너를 만나기 위해서 준비를 했는데, 아까 그 젊은 여자가 앞으로 3주후에 너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Oh My GOD!!!” 어렵다 어렵다 소문만 들었는데, 과정도 이렇게나 복잡하고 어려운데 시간은 더 걸린다는 말인가? 너무 길다고 투덜거렸더니 외국에 사는 네 친척은 만나려면 3개월 1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그나마 니네 집안 식구들 중에서는 빨리 얼굴을 보여주는 편이니까 느긋하게 기다리라고 한다.


이렇게 저렇게 3주가 지나고 8월의 한 가운데에 드디어 너를 만났다. 넣은 쌀과 물을 합쳐서 희뿌연 색으로 찰랑찰랑 잔에 담은 너를 손에 받고는 감격했다. 사과, 복숭아, 포도, 아니면 이건 꽃인가?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너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향기로 나를 압도했다. 잔에 입을 대고 한 모금 마시는데, 시원하고 약간은 새콤하고 달달한 그리고 전에 느낀 적 없는 무게감으로 내 혀를 목을 타고 들어간다. 짜르르 하다. 목구멍에서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온전히 느껴진다. 짚불로 소독한 항아리의 뜨거움, 희뿌연 물 계속 올라와서 환장하게 만들던 쌀,쿰쿰하고 꼬릿한 냄새 나서 비위를 상하게 했던 수곡, 그 어렵고 짜증나던, 귀찮았던 과정을 모두 잊게 만드는 맛이다. 이 맛에 너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은.


그 후로도 나는 혼자서 혹은 사람들과 너를 종종 만난다. 어떤 날은 좀 모자라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넘치기도 한다. 처음 너를 만났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너를 가장 친한친구, 동시에 어려운 친구로 사람들에게 소개 하면서 다닌다. 덕분에 먹고 살고 있기도 하다. 널 만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이 벌써 칠년을 가득 채웠다. 가끔 내 맘같지 않은 네 모습에 다신 만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앞으로도 넌 내 가장 친한 친구로, 선생으로, 가까운 곳에 두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딱 세 가지 재료 그리고 자연으로 완벽한 부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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