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래 Feb 25. 2021

새벽의 작은 요가

혼자 하는 새벽의 찻시간을 좋아합니다.

깜깜한 새벽, 혼자 조금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나의 소중한 시간이다. 누운 자리에서 기지개를 켜고 잠시 그대로 있는다. 숨을 쉬면서 몸 구석구석을 깨운다.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와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온다. 찻 물을 올리고서 세수와 양치를 한다. 다 끊은 물에 오늘은 어떤 차를 마실까 골라본다. 요즘은 주로 숙차를 마신다. 가끔 찌뿌둥하거나 어딘지 모르게 속이 답답한 날에는 생차나 우롱, 백차를 마시는 날도 있고 허브티를 마시기도 하지만 아침 차는 주로 몸이 따뜻해지는 숙차를 마신다.

일어나 처음 마시는 차는 좀 흐려도 좋다. 진한 커피색보다는 밝은 호박빛으로 차를 우린다. 물을 끓이고, 차호에 차를 넣고, 세차하고, 잔을 덥히고, 차를 우려 마시는 모든 과정이 유난히 자연스럽게 잘 되는 날은 하루도 자연스럽게 지내진다고 생각한다.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천천히 모든 과정을 지나 우려진 차를 마시면 몸 어딘가에서 “피슝”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안심되고 편안해지는 소리, [와카코와 술]이라는 책의 주인공 와카코가 술을 마시면서 내는 행복의 소리인데, 나 역시도 그 소리를 내는 시간은 주로 밤이었다. 하루 종일 무언가에 시달리고 깜깜하고 조용한 밤에 혼자 혹은 누군가와 마시는 술 한 잔.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고 다 넘어갈 때 즈음 술을 한 잔 마시면 그 소리가 난다. “피슝” 하루 종일 쌓여있던 긴장과 불편함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정말 적절한 소리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그 소리를 새벽 혼자 찻자리에서 듣는다. 밤 사이의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리이다. 그 시간이 언제이든 중요하진 않지만 늦은 밤 하루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푸는 것보다는 아침을 편안하게 맞는 것이 요즘은 더 좋다.

차를 마시면서 여기저기 몸을 풀어본다. 차를 입 안에 담고 목을 양 옆 앞뒤로 늘여보기도 하고, 어깨를 둥글게 돌리고, 팔을 기지개 켜듯 쭉 뻗어 가볍게 흔들어 보기도 한다. 뻗은 손 끝에서 허리 아래 골반까지 쭉 늘어나는 느낌, 움직여서 팔다리를 깨우고, 차로 몸속 구석구석을 깨운다.


차와 가벼운 명상으로 하는 조용한 요가의 시간. 깊은 아사나를 하지 않아도 떨림과 울림이 있는 이 아침의 작은 요가 시간이 소중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06. 찰나의 순간, 깨달은 줄 알았는데 이내 달아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