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아이>를 읽고
“내 삶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 사이의 투쟁이었다.”
『화성의 아이』에서 나는 이 문장에 붙들렸다. 복제된 존재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어쩌면 너무나 인간적인 고백이었다.
사랑은 늘 찬란한 감정으로만 여겨졌지만, 살아보니 사랑은 때때로 감정이 아니라 ‘의지’라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더 그렇다. 엄마와 부딪히는 감정, 치매를 앓는 외할머니를 돌보며 마주하는 무력감과 짜증, 이해하고 싶은데 이해받지 못하는 피로함.
그 모든 감정은 나에게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려는 마음과 사랑하고 싶어하는 마음 사이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하루하루였다.
그러니 라이카의 그 말은, 마치 내 마음의 안쪽에서 울리는 독백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다가 나는 또 한 문장 앞에 멈춰섰다.
“나는 우주 제일의 향기나는 꽃이 되는 거지.”
존재를 향기로 말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냄새야’, ‘나는 생명이야’ 하고 말하는 이 대사는,
인간이 설계한 복제체가 보여주는 가장 순결한 자의식이었다.
누군가에게 냄새로 기억되는 삶. 말이나 논리가 아니라, 감각으로 남는 존재.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살아 있다는 건, 누군가의 감각 안에 남는 일 아닐까.
그리고 냄새처럼, 삶의 의미도 무언가를 ‘남기고 가는 흔적’일지 모른다고.
책 후반, 주인공은 자신을 "미래도 현재도 아닌, 빛 속의 무(無) 속에서 떠도는 유령 같다"고 말한다.
나는 그 장면을 읽고 이상하게도 ‘부럽다’고 생각했다.
목적도, 생산성도, 의미도 없이 그저 멈춰 있는 상태.
너무 오랜만에 그런 상태를 상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의 나는 늘 뭔가가 되어야 하고, 뭔가를 해야만 존재를 증명받는 삶을 살고 있었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그냥 존재만으로 머무는 시간.
그 찬란한 무(無)의 시간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회복의 언어가 아닐까.
『화성의 아이』는 단지 복제 인간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을 이해하고 싶어 했던 존재가,
결국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감정을 가지게 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존재를 외면하고 밀어내는 인간 사회의 모습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어떤 잔인함과 마주하게 되었다.
책을 덮은 지금, 나는 내 안의 ‘사랑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조금 더 정직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오늘도 어딘가에서 싸우고 있을 또 다른 라이카들을 떠올린다.
그들도 나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려 애쓰고 있을까. 아니면 사랑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투쟁 안에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