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토지, 삶의 연결을 실천하는 공간
2025년 3월 31일(월) / 네덜란드 / 위스호프 농장
더 이상 사람들은 단지 음식의 맛이나 가격만 따지지 않는다.
내가 먹는 식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누가 길렀는지, 그것이 자연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소비는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신념의 표현이고, 식사는 선택이 아닌 태도가 되었다.
그리고 위스호프 농장에서, 나는 같은 질문과 같은 생각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우리를 맞아준 건 한 의사 선생님이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환하게 인사하던 그의 이름은 마르톤 랑개스터.
우리는 마을의 교회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교회는 단지 종교 활동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공청회를 열고, 회의를 하고, 이렇게 방문자들에게 강의를 들려주는 공동체의 공간이었다.
그들은 멀리서 온 우리를 위해 점심으로 샌드위치까지 준비해주었다. 담백한 빵과 치즈, 그리고 따뜻한 환대 속에서, 우리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이 마을의 철학을 조금씩 체감하게 되었다.
그는 의사였지만, 단순히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로 머무르지 않고, 건강한 삶을 위한 실천을 스스로의 삶에 적용한 사람이었다.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시절, 질병과 치료법에 대해서는 많이 배웠지만, 정작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법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던 중,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한 마을을 여행하며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음식과 영양에 집중하는 의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것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친환경 농업, 생태 다양성, 다양한 토양의 상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고, 1973년 암스테르담에 친환경 채식 식당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채식이나 유기농은 일반 대중에게 조롱받기 쉬운 주제였고, 그의 식당 역시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하지만 그는 그 경험이 자신에게 가장 큰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의대를 졸업한 후, 그는 프리슬란트 지역으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침술을 배웠기에 직접 침을 놓기도 했는데, 마침 네덜란드에서는 침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던 시기였고, 그는 자연스럽게 네덜란드 침술 전파의 1세대가 되었다.
환자들이 어깨나 허리 통증을 호소하면 그는 침을 놓아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통증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통증이 사라지고 나면 그가 영양에 대해 조언을 해도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단지 아프지 않으니 식습관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조언을 따랐던 몇몇 사람들은 몇 주 뒤에 돌아와 놀라운 변화를 전해줬다.
소화가 훨씬 잘 되고, 두통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졌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는 확신하게 되었다. 음식이야말로 건강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그는 마을 근처에 작은 땅을 사서 생명역동농법을 바탕으로 스스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생명역동농법으로 농사짓는 미친 의사”라고 불렀고, 그가 히피처럼 머리를 기르고 풀밭에 앉아 동물을 안고 있는 모습이 신문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그조차도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농사와 의사, 두 가지 삶을 병행하며 그는 새벽에는 젖소 16마리의 우유를 짜고, 아침 9시부터 환자를 받았다. 저녁 5시가 되면 다시 농장으로 달려가 하루의 나머지를 흙과 함께 보냈다.
그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건강한 토양에서 건강한 식재료가 나오고, 그것을 먹는 사람들이 건강해진다. 이 연결고리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삶에서 매일 실천되고 입증되는 것이었다.
그는 건강한 식재료를 위해선 무엇보다 건강한 토양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농업의 핵심은 단순한 생산이 아니라 토양을 살리는 일이라는 철학을 갖게 되었다.
그는 주변 농부들과 함께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친환경 농업을 시도하고 싶어하는 15~18명 정도의 농민들이 모였고, 그는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외부에서 전문가를 섭외해 농업 교육을 시작했다.
하지만 생산만큼이나 고민이 컸던 것은 유통이었다.
친환경 농산물을 어디에 어떻게 팔 수 있을 것인가. 다행히도 지역에 처음으로 유기농 우유를 가공할 수 있는 유제품 공장이 들어서면서 그들은 우유를 합리적인 가격에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
생산자와 가공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첫째, 농부에게는 반드시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
둘째, 변화에는 시장의 수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
셋째, 전환기를 버텨낼 수 있는 지원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농부에게는 영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농부들과 함께 선진지 견학을 다녔다.
가까운 마을로도 가고, 대부분 네덜란드를 다니며, 자신감과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사례들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1991년, 그는 이곳에 국제 친환경 농업 협력에 특화된 아발론 재단을 설립했다.
아발론 재단은 이후 30여 개국에서 180여 건이 넘는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정부, 시민단체, 농부들이 함께 힘을 모아 다양한 교육과 실험적 전환 모델을 만들어나갔다.
그는 말했다. 친환경 농업으로의 전환은 단지 농업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 경관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며,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인식과 관계까지 바꾸는 일이라고.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이 마을 주변에도 생태 지역을 기반으로 한 농업 전환 모델이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고, 그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 스피커로 소개받은 브레이카는 그들의 자녀 세대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을 우리인생에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위스호프농장이 시작되었고, 위스호프의 시작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단지 2헥타르의 땅, 몇 그루의 나무, 흙 속에 지렁이를 풀어 넣는 일부터 시작이었다.
부부는 퍼머컬처 수업을 들은 뒤, 그동안 몰랐던 방식으로 땅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땅을 단순히 표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땅속을 깊이 파서 토양의 구조를 이해하고, 물이 고이는 곳과 마르는 곳, 진흙층의 움직임, 햇빛과 바람이 흐르는 방향까지 꼼꼼히 살폈다.
이 과정은 마치 하나의 생명을 해부하듯이 진행되었다. 그들은 땅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접근보다, “이 땅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먼저 들으려 했다.
지표를 측정하고, 계절에 따라 수분의 흐름을 관찰했고, 흙의 결을 손으로 느끼며 하나씩 기록해갔다.
이 모든 과정은 퍼머컬처 교육에서 배운 '관찰에서 시작하라'는 철학을 실천한 것이었다.
위스호프 농장이 지금처럼 자급 가능한 농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초기의 관찰과 설계 덕분이었다. 브레이카는 지렁이 한 마리 없던 척박한 땅에 직접 지렁이를 풀어 넣고, 생태계의 기본단위부터 다시 구축해 나갔다.
이 작은 시작은 단순한 농사법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다시 관계를 맺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들은 땅을 직선으로 나누거나, 일률적인 농기계 기준으로 나누지 않았다.
오히려 곡선과 구획, 높낮이를 살려 물길이 머물거나 빠져나가도록 자연스럽게 설계했다.
이를 통해 식물은 각자의 자리에 맞게 배치되었고, 병해충도 스스로 조절되었다.
브레이카는 한 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땅이 원하는 것을 듣고 함께 만든다.” 농장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땅과 함께 계획한 것이다.
농부는 땅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땅이 농부를 가르친다. 그렇게 그들은 흙과 대화하며 배우는 농부가 되어갔다.
이 철학은 이후 CSA 모델 구조와 커뮤니티 운영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위스호프는 공동체 지원 농업, 다시 말해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모델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CSA는 2013년 시작되었고 40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이는 단순히 지역 농산물을 사 먹는 방식이 아니다. 위스호프 농장의 일 년 농사를 위해 소비자가 시즌 초에 미리 일정 금액을 지불한다.
그 돈으로 농부는 씨앗을 사고 밭을 갈고 수확을 준비한다.
수확이 끝나면, 작황에 따라 기쁨도 나누고, 실패의 리스크도 함께 감당한다.
여름 가뭄으로 수확량이 줄어도 회원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안다. 이 땅이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우리 모두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위스호프에는 현재 약 200명의 회원이 있다.
이들은 단지 고객이 아니라 이 농장의 주인이다. 대부분 직접 밭에 와서 수확을 해가고, 어떤 이들은 미리 준비된 채소 봉투를 가져간다.
농사는 단지 식재료를 생산하는 일이 아니다.
기후와 토양, 생물 다양성과 공동체, 땅의 소유와 삶의 윤리를 고민하는 일이다. 이곳의 농부들은 매일 그 고민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위스호프는 1헥타르라는 작은 땅에서 200명을 먹이는 시스템을 실현하고 있다.
단작이 아닌 혼작, 반복이 아닌 계절 순환을 기본으로 삼는다.
트랙터 대신 손과 사람의 힘, 인프라 대신 관계와 신뢰가 농장을 움직인다. 그들에게 지속 가능성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매일매일 밭에서 체화되는 선택이자 기술이다.
그리고 이 모든 구조의 바탕에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 놓여 있다.
"땅은 누구의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위스호프는 분명하게 답한다.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땅은 모두의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토지 신탁 모델을 만들었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가 토지를 소유하고, 농부는 그 땅에서 일하고, 그 결과물은 구성원 모두가 나눈다.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구조는 농부에게 안정적인 작업 환경을 보장해주고, 소비자에게는 윤리적 가격을 가능하게 해준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접근 가능성과 연대, 이것이 위스호프의 기본 원칙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떠오른 말이 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이 말은 더 이상 은유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선택하느냐는 단지 취향이나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지지하느냐, 어떤 삶을 살아가고자 하느냐에 대한 실질적인 선언이다.
위스호프는 이 선언을 밭에서, 흙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매일같이 실천하고 있었다.
농사란 그런 것이었다. 뿌리 내리는 삶을 만들어가는 일.
위스호프 농장의 중심은 늘 땅이지만, 그 땅 위에서 자라는 건 단지 채소와 과일만이 아니다.
여기엔 신뢰와 협력, 기다림과 회복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함께 자라고 있다. 작물처럼, 관계도 손이 가고 시간이 걸린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물은 어쩌면 공동체 그 자체일지 모른다.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는 늘 말한다.
“농사는 땅만으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손이 있어야 하고, 마음이 연결돼야 합니다.”
실제로 위스호프의 회원 중 많은 수는 자가 수확을 선택한다.
그들은 밭으로 직접 와서 손수 상추를 따고, 당근을 뽑고, 흙 묻은 감자를 봉투에 담아간다. 그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식재료를 넘어서는 삶을 대면하게 된다.
비 오는 날 장화를 신고 밭에 들어가는 그 짧은 시간이, 하루를 돌아보는 여유가 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곳에서 채소 하나를 뽑는 일이 나한테는 명상이에요.”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흙을 만지고, 햇빛을 맞고, 계절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일은 사람을 조금씩 다르게 만든다.
흙은 사람의 속도를 늦추고, 시선을 낮추게 하며, 기다림이라는 감각을 다시 회복시켜준다. 농장은 그런 변화를 허락하는 공간이다.
위스호프에서는 계절마다 문화 활동이 열리는데 부활절에는 달걀을 함께 물들여 나누고, 여름에는 긴 식탁을 차려 동네 사람들이 함께 식사한다.
요리사는 농장을 찾아 식재료가 자라는 땅을 구경하고, 아이들은 학교 수업의 연장처럼 이곳에서 흙을 밟고 배우고 논다. 가을이면 회원 총회가 열린다.
지난 계절의 농사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해의 계획을 함께 세운다.
농장의 수입과 지출, 생산량과 품목까지 투명하게 공유된다. 이 모든 과정은 함께 운영하는 삶의 훈련이다.
공동체는 단순히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위스호프는 이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기후 변화로 작황이 나빠지는 해에도 불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올해는 땅이 많이 힘들었겠네요”라며 서로를 위로하고, 어떤 해에는 직접 노동력을 보태겠다며 자원봉사로 돕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더는 농장의 고객이 아니다. 그들은 이 삶의 공동체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농장에서 아이들은 채소를 어떻게 심는지를 배우고, 어른들은 ‘소유’ 대신 ‘공유’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땅이 누구의 것인지, 가격이 아닌 가치로 평가할 수 있는지, 한 사람이 가진 땅을 여럿이 함께 돌보는 것이 왜 더 지속 가능한 방식인지, 밭 한 가운데 서서 자연스럽게 그런 대화들이 오간다.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된다. 농사는 우리에게 늘 “함께”를 가르쳐주는 일이라는 것을.
관계는 돈처럼 빠르게 돌 수 없고, 신뢰는 광고처럼 즉각적으로 오지 않으며, 좋은 삶은 대량 생산되지 않는다.
위스호프의 속도는 느리지만 분명했다.
뿌리는 깊었고,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 연결은 결국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순환을 이루고 있었다.
위스호프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땅을 돌보고 있는가, 아니면 소비하고 있는가?”
우리가 사는 방식은 결국, 우리가 먹는 방식과 닮아 있다. 무심코 소비하는 식사는 무심한 관계를 낳고, 정성껏 돌본 밥상은 삶을 바꾸기도 한다.
위스호프는 말 없이 보여주었다. 좋은 농장이란 좋은 사람이 자라는 곳이다. 그 질문을 들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이제 연결된 사람이 되었고, 다시 묻는 사람이 되었다.
Q. 왜 의사에서 농부로 전향하셨나요?
처음엔 사람들의 몸을 치료했어요. 침도 놓고, 영양 상담도 했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통증은 없어졌다고 하면서도 식습관은 바꾸려 하지 않더라고요. 결국 건강은 약이 아니라 식탁에서 시작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직접 농사를 짓기로 했죠. 그게 더 근본적인 치료라고 생각했어요.
Q. 농약도 기계도 거의 안 쓰는데, 정말 가능한가요?
가능해요. 단순하진 않지만요. 혼작과 계절 순환을 잘 조합하면 병해충도 어느 정도 조절되고, 흙도 회복돼요. 물론 손이 많이 가죠.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많은 농업”을 합니다. 그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기도 하고요.
Q. 위스호프의 CSA 방식이 기존 유통 시스템과 다른 점은 뭔가요?
우리는 돈을 먼저 받고, 수확을 나중에 해요. 이 말은 농부가 안정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회원도 책임을 같이 져요. 수확이 적은 해에는 덜 가져가고, 풍년이면 더 나누죠. 이게 진짜 함께 사는 방식 아닌가요?
Q. 회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처음에는 “로컬 푸드”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점점 더 철학적인 질문을 가진 사람들이 오더라고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먹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Q. 땅을 공동 소유한다는 게 정말 가능해요?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가능하다고 믿고 있어요. 소유보다는 함께 관리하고 지키는 구조가 더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땅이 모두의 것이라면, 책임도 모두의 것이 되고, 그러면 가격이 아니라 가치로 살아갈 수 있어요.
Q. 왜 농사를 선택하셨나요?
세상에서 제일 진실한 일이에요. 흙은 거짓말하지 않거든요. 정직하게 대하면 정직하게 반응해요. 그게 좋아요. 힘들고 느리지만, 결국 그만큼 확실한 삶이에요.
위스호프 (Ús Hô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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