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순환을 배우는 공간
2025년 4월 1일(화) / 네덜란드 / 발몬더르호프재단
우리는 네덜란드의 플레볼란트 지역에 위치한 발몬더르호프 재단을 방문했다. 플레볼란트는 본래 염해 지역이었다. 1932년 홍수피해에 대한 대책으로서 대제방 건설 이후 담수를 들이붓고 염수를 뺀 과정을 반복하며, 갯벌성 진흙이 풍부한 고생산 토양으로 탈바꿈했다. 현재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농지로 손꼽힌다.
스마트 농업의 수도나 다름없는 네덜란드에서 우리가 만난것은 바다보다 낮은 간척지 위에 조성된 생명역동농업, 즉 BD(Biodynamic) 농업을 철학적으로 실천하는 교육기관이었다.
/ 에레스 발몬더르호프 중등직업학교(Aeres MBO Dronten Warmonderhof)
루돌프 슈타이너가 제안한 생명역동농법은 단순한 유기농을 넘어, 자연과 인간, 생명 전체의 조화를 지향한다.
이 곳에서 우리를 맞이해준 사람은 엘렌 빈거리였다. 그녀는 생명역동농법을 알리는 홍보와 전문적인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이자, 생명역동농업 정기 간행물의 주 편집자이며, BD농법 100주년을 맞아 간행물 제작을 이끈 사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생명역동농법의 역사에 대한 책을 집필한 전문가였다. 그녀는 우리에게 생명역동농법의 철학적 뿌리와 그 실제에 대해 하나하나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24년 독일, 농업의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농민들은 흙의 힘이 떨어지고, 작물의 맛이 달라졌다는 감각적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때 루돌프 슈타이너는 요청을 받아 8회의 농업 강좌를 열었고, 그 내용을 기반으로 생명역동농법이 탄생했다.
철학자이자 학자였던 루돌프 슈타이너는 단지 농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 농장을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농장 안의 토양, 식물, 동물, 그리고 사람이 서로 관계 맺고 순환하는 전체 시스템이 건강하게 연결될 때 비로소 농장이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농장의 자원은 그 내부에서 순환되어야 하며, 외부 자원 투입 없이도 자립할 수 있어야 이상적이다. 따라서 다양한 생태종과 작물들이 공존해야 하고, 그 다양성이 자원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낸다.
엘렌은 또 식물을 하나의 '방향 지시표'로 보아야 한다는 슈타이너의 관점을 들려주었다.
예를 들어, 나침반 바늘 한쪽이 항상 북쪽이나 남쪽을 가리키듯, 식물도 자라는 방향, 잎의 배치, 뿌리의 구조를 통해 우주 속에서의 위치와 관계를 가리키는 존재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물을 분해해 단편적인 정보로 이해하기보다는, 전체 생장 과정과 주변 환경 속에서 조화롭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슈타이너 철학의 핵심이었다.
또한 엘렌은 유기농과 생명역동농업(BD)의 차이도 설명해주었다.
일반 유기농 인증은 토양과 화학 비료 사용 여부에 집중하는 반면, BD 인증은 그 위에 철학과 공동체 원칙을 더한 방식이다.
예를 들어, 질소 비료 사용 기준에서 유기농은 헥타르당 175kg까지 허용되지만, BD 농업은 112kg만 허용된다. 또, 토양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숙성된 유기 퇴비를 이용해야 한다.
이 퇴비는 동물의 배설물에 6가지 약용 식물(쐐기풀, 서양톱풀, 민들레 등)과 수정가루 등을 섞어 소뿔에 담아 땅속에 묻고 숙성시키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BD 인증은 문서심사보다 ‘동료 농가의 방문 평가’를 중시하는 점에서 공동체 기반 농업이라는 특징이 강하다. 동료평가는 5명의 BD 농부가 농장을 방문해서 농장경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농장경영을 개선할 수 있을지 의견을 교환한다. 이것이 인증의 필수 부분이다.
또 BD농장은 전체 면적의 10%를 항상 자연의 경관을 유지해야한다.
통계적으로도 BD 농업은 작지만 의미 있는 규모를 지닌다.
네덜란드의 유기농 농지 면적은 93,000헥타르, 이 중 BD 농지는 약 9,500헥타르로 전체 유기농의 약 10% 수준이다.
BD 농장은 약 150곳으로, 전체 유기농 농가의 6.5%, 네덜란드 전체 농가의 0.5%에 해당한다.
그러나 BD 농장의 평균 면적은 65헥타르로, 일반 유기농(41헥타르)이나 관행농업(36헥타르)보다 크다.
그 이유는 BD 농업은 농장안에서 퇴비를 만들고 소 1마리당 필요로 하는 초지의 기준이 더 크기 때문에, 초지면적이 큰 편이다.
우리가 방문한 플레볼란트 지역은 유기농 비율 15%, BD 비율은 2.7%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전 세계 60여개국에 약 7천개의 BD농가가 있다)
도심 근처에도 BD 농장이 약 10곳 존재하며, 연간 약 10만 명이 방문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농업을 ‘체험’하며 생명력 있는 농업의 철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단순한 상품 구매가 아니라, 자연과 관계 맺는 경험 자체가 소비가 되는 구조다.
BD 농업은 탄소중립과도 연결된다. 생물다양성을 높인 흙은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하고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대규모 산업 농업은 생산량이 낮다는 이유로 BD 농업의 생태적 가치를 평가절하하려는 로비를 벌이기도 한다.
무경운 농법에 대해선 내부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경운을 줄이고 흙의 생명력을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과, 땅에 일시적 혼란을 줌으로써 새로운 생태 순환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 모두 공존한다.
BD 인증 기준은 이 부분을 명시하지 않으며, 농부의 철학과 선택에 맡긴다.
가공 기준 역시 BD 농법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영역이다. 예를 들어, 우유를 처리할 때 일반 유기농 우유는 맛을 균일하게 만들기 위해 고온 살균 등의 소독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우유의 향미는 일정해지지만, 원래 젖소가 먹은 풀이나 허브의 향은 사라진다. 반면 BD 농장에서는 이러한 표준화 과정을 최소화하거나 생략한다. 만약 젖소가 딸기향이 나는 풀을 먹었다면, 그 향이 우유에도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곳의 원칙이다. 자연 그대로의 맛과 향을 존중하고, 그 다양성이 생명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태도였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사례들이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예를 들어, 흙의 수분 유지력을 비교한 시범 실험에서는 동일한 폭우 이후에도 BD 농장의 옥수수는 수분을 잘 머금고 건조해지지 않아 건강하게 자랐지만, 관행 농업의 토양은 물을 머금지 못해 작물이 쉽게 말라갔다. 같은 조건, 다른 결과의 차이는 미생물의 활동 여부와 유기물이 풍부한 흙 구조 때문이라고 했다.
채소의 생명력 실험도 인상 깊었다. 오이를 채 썰어 플라스틱 용기에 담고 18일을 지켜봤을 때, 관행농법 오이는 썩었지만 BD 농법으로 키운 오이는 조각이 다시 붙어 자라나는 모습까지 보였다. 생명이 단절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또 다른 사례는 상추 비교 연구다. 1990년대 진행된 이 연구에 따르면, 수경 재배 상추는 30일 만에 수확이 가능했지만 BD 상추는 60일이 걸렸다. 그러나 BD 상추는 맛이 더 깊고, 보관 기간도 길며, 수확 후 시간이 지나도 씨앗을 맺으며 생명 주기를 이어갔다. 반면 수경재배 상추는 시들고 썩어버렸다. 빠른 생산과 생명력은 양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사례들은 BD 농법이 단순한 재배 방식이 아니라 생명의 흐름을 지켜보는 태도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단지 작물을 잘 키우는 법이 아니라 농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을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연을 존중하며 그 흐름에 조화롭게 참여하는 태도, 그것이 이곳 발몬더르호프에서의 농업이었다.
이곳에서 흙은 단지 뿌리를 내리는 바탕이 아니다. 흙은 살아 있다. 식물은 방향을 가리키는 존재이며, 동물은 존엄을 가진 생명체다.
발몬더르호프는 이 모든 것들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회복하는 곳이다. 농장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이곳에선 외부에서 들여오는 비료나 사료를 최소화하고, 농장 내부의 자원으로 모든 것을 순환시킨다. 가축의 배설물은 퇴비가 되고, 그 퇴비는 다시 흙을 살린다. 흙에서 자란 식물은 동물과 사람을 먹이고, 그 순환은 다시 시작된다.
여기에서는 속도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생명의 밀도다.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느리다. 발몬더르호프는 그 느림을 따라가기로 한 사람들의 공간이다.
농부는 생산자가 아니다. 그들은 관리자가 아니라 관찰자이며, 지배자가 아니라 동반자다. 흙을 살피고, 동물의 리듬을 읽으며, 식물의 방향을 따라간다.
하나의 작물을 키우는 데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기다리는 마음, 존중하는 자세, 그리고 개입하지 않을 용기. 그들은 자연을 설계하지 않고, 흐름 속에 자신을 놓는다. 농부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기다림'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관행 농업의 흙과 생명역동농업의 흙을 나란히 비교한 사진이 있었다. 왼쪽은 딱딱하고 미생물이 적은 땅, 오른쪽은 지렁이가 다닌 흔적이 살아 있는 다공성의 흙이었다. 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생명체들의 공동체였다. 식물은 흙에 당분을 흘려보내고, 그걸 먹은 미생물은 다시 식물의 영양이 된다. 이곳에서는 비료도 식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 흙을 위한 것이라 한다. 흙이 살아 있어야 생명이 지속된다. 흙을 살린다는 것은 결국 생명을 지탱하는 바탕을 회복하는 일이다.
소의 뿔 안에도 생명 활동이 있다고 했다. 그 뿔을 통해 호흡하고, 그 구조가 소화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뿔을 자르지 않는다. 뿔을 자르면 소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 이마가 불룩해지기도 한다고 한다. 동물의 몸을 설계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닭도 수탉과 함께 살아간다. 수탉이 없는 암탉 무리는 불안하다고 한다. 농업의 기본 단위가 하나의 작은 사회이자 생명 공동체라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걸 설명했다. 왼쪽은 단일작물로 채워진 관행농업의 들판. 오른쪽은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울려 있는 생명역동농업의 들판. 네덜란드 사람들은 전자를 '초지의 사막', 후자를 '경관의 기쁨'이라 부른다고 했다. 살아있는 흙, 살아있는 식물, 살아있는 동물이 함께 만드는 풍경은 단지 예쁜 경치가 아니라, 생명의 순환이 실현된 공간이다. 경관조차도 생명의 징표가 된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철학이 시스템이 되었고 시스템이 실천이 되었다는 점이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생명 철학은 단지 책 속에 머무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농업의 방식으로 번역했고, 구조로 구현했고, 일상의 리듬 속에 녹여냈다. 그래서 발몬더르호프는 단지 농장도, 학교도 아니다. 하나의 세계관을 체화한 공동체다. 그들은 흙을 대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대하고 있었다.
이 농법은 시골에만 머물지 않는다. 네덜란드 전역, 특히 도심 주변에는 10개 정도의 생명역동농장이 운영 중이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 연간 1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동물을 만지고, 달걀을 직접 꺼내보며, 생명의 농업을 경험하는 것이다. 도심과 농장이 연결될 때, 농업은 더 이상 낯선 산업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된다. 생명역동농업은 그렇게 우리의 생활 깊숙이 스며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방문은 농장을 본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식을 본 것이었다. 흙을 돌보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빠르고 효율적인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종종 '생명'을 잊는다. 발몬더르호프는 그 잊힌 생명의 언어를 다시 되새기는 장소다. 농업을 통해, 그들은 다시 묻는다.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곧,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로 이어진다. 그곳에서 배운 건, 생명에 대한 태도였다. 기다리는 것, 개입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자세일지 모른다.
* DEMETER 인증 : 생명역동농법 유기농 인증 -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유기농 인증
우리는 자리를 옮겨 재단의 하버링크 대표님과 함께 학교 내 농장을 둘러보게 되었다.
발몬더르호프는 1947년부터 교육을 해왔고, 지금 이 자리에 온 지는 30년이 넘었다. 학생들은 학교 기숙사에서 공동 생활을 하며, 오전엔 강의를 듣고 오후엔 농장에서 직접 일한다.
삶과 배움이 완전히 통합된 이 구조는, 농업을 단지 기술이 아닌 인간 존재의 일부로 배우는 과정이 된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온실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60종이 넘는 채소를 직접 키우고, 인근 지역에 직거래로 판매한다. 유리 온실 안에서 자라는 작물들은 수경재배가 아니다. 생명역동농법에서는 물속에서 쉽게 영양분을 흡수시키기보다, 흙에서 식물이 스스로 빨아들이며 자라는 강건한 생명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식물은 보관 기간도 길고, 생명력도 강하다.
온실 내 작물들도 순환 재배한다. 재배 위치를 바꾸어 병충해에 강하게 하고, 자연에 가까운 방식을 유지한다. 봄에는 묘종을 미리 키워 옮겨 심고, 가을까지도 가능한 재배를 이어간다. 여름에는 열대작물인 파프리카도 재배한다. 이 모든 것이 태양열만으로 이뤄지며, 인공 난방은 최소화된다.
대표는 자부심 가득한 말투로 말한다.
“여기는 순환입니다. 묘종, 작물, 퇴비, 동물, 사람이 다 엮여 있어요.”
우리는 배추밭에서 2년을 키운 적양배추를 봤다.
씨앗을 받기 위한 재배였다. 유전자 조작 종자가 보편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은 토종 종자를 직접 받아 보존하고, 씨앗을 고르고 수확하는 법을 교육한다.
농부에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씨앗을 알고 지키는 일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식물도 이상적인 모습이 있다는 것, 동물을 보고 품종을 알듯이 식물도 그 형태로부터 정체성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진흙이 절반인 비옥한 땅에서 자라는 다양한 식물들을 관찰했다. 클로버는 이 농장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소가 좋아하는 풀, 녹비 작물, 질소 순환을 돕는 식물. 그 풀을 소가 먹고, 대변을 통해 땅으로 돌아오고, 그것이 다시 생명을 잉태한다. 이 순환은 철학이자 과학이며 교육이었다.
대표는 농지 설계의 역사도 설명했다. 간척지인 이 땅은 300m 단위로 계획되어 트랙터 운행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고, 주거 단지와 물류 거점도 함께 구상된 사회적 실험장이었다.
초기에 외부인으로서 이곳에 정착했을 때는 주변 농민들에게 의심의 시선을 받았지만, 지금은 생명역동농업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85헥타르의 농장 전체는 자급자족 순환을 이루고 있다. 35마리의 소가 배출하는 질소 비료만으로도 전체 농장에 필요한 비료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 1헥타르당 35kg의 비료만으로 순환이 유지되며, 이는 친환경 농가 기준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다. 녹비작물, 클로버, 다양한 뿌리 깊은 작물들이 땅의 질소를 끌어올려 토양을 건강하게 유지한다.
이 탄층 아래에 있는 산성층은 뿌리의 깊이에 따라 순환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BD 농장은 질소산화물의 과잉 배출 없이, 효과적인 순환을 실현한다. 클로버는 소를 위한 풀일 뿐 아니라, 경관을 이루는 중요한 생명체였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존재예요. 보는 것만으로도 좋잖아요.”
학생 선발은 까다롭다. 인터뷰에는 학교 측, 직업학교 교사, 지원자가 함께 참여하며 단순한 관심이 아닌 실천 의지와 공동체 생활에 대한 성숙한 태도를 본다. 1년 차에는 농축산업 전반에 대해 배우고, 2년 차엔 외국 실습을 한다. 마지막 3학년 때는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익히고, 후배들을 지도하며 책임감을 갖는 과정을 경험한다.
졸업 전 4년 차에는 졸업 프로젝트로 ‘관행농가 전환 경영 계획’을 세운다. 기존 농가를 BD 농법으로 전환하기 위한 상세한 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이에는 경작법, 유통, 수익, 비용, 인력 운영 계획이 모두 포함된다. 단순히 농법이 아니라, 하나의 농장을 세우는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평가하는 것이다.
모든 졸업생이 농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친환경 유통, 관련 교육, 작가, 디자이너,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며, 삶의 방식으로 BD 철학을 이어간다. 졸업생은 적지만, 그들이 사회에 남기는 영향은 깊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온 말이 기억에 남는다.
“소는 땅을 위한 존재이고, 사람은 이 모든 순환 속에서 겸손하게 함께 사는 존재입니다.”
흙 위에서 배우는 이들은 말로 철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은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손으로 철학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 농장은 느리게 걷는 법을 잊지 않은 사람들의 학교였다.
Q. BD 농법에서 사용하는 증폭제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재료인가요? 현장에서 농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실용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증폭제는 BD 농법의 핵심 중 하나이며, 슈타이너가 제시한 9가지 프리파라트를 기반으로 구성됩니다. 소의 뿔, 약용식물, 수정가루 등을 활용하는 방식은 오랜 시간 실험과 관찰을 통해 이어져 왔습니다. 예를 들어, 뿔에 담긴 퇴비는 미생물 활동을 자극하고, 식물에 뿌리는 증폭제는 뿌리 성장과 잎의 기운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실질적인 토양 변화와 작물의 반응은 꾸준히 관찰되고 있어 많은 농부들이 체감하고 있습니다. BD 농업은 단지 과학적 실험이 아니라, 농부의 감각과 오랜 시간의 관찰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Q. BD 농법을 적용하기 위한 농장의 적정 규모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요?
최소한의 적정규모는 없습니다. 2~3헥타르 이상되어야한다 그런 기준도 없구요. 다만 땅이 너무 작으면 자원순환을 하는데 제약이 있을 수 있고, 최소한의 농가 수입도 보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핵심은 규모 자체가 아니라, 순환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입니다. 인증기관에서 규모에 대한 규제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Q. 한국에도 여러인증이 있는데 (유기농, 친환경, GAP 등) 일반 소비자가 차이점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덜란드/유럽 소비자는 BD인증과 유기농 인증의 차이점을 잘 알고 있는지, BD인증받은 농산물을 알리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궁급합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잘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친환경 농산물 시장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도 친환경 인증이라고 하면 익숙해 하는 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BD농가의 전략은 친환경 소비자들에게 농가의 철학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한살림과 비슷한 친환경협동조합 오딘이 네덜란드 전역의 유통망을 갖추고 있고, 그곳에 우리의 관행물을 배포해두고 있다.
Q. 탄소 중립과 유기농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데 네덜란드에서도 유기농, 그리고 BD농이 탄소 중립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다고 생산자, 소비자들이 인식하고 있나요?
네덜란드에서도 뚜렷하게 소비자들이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BD 농업은 미생물 풍부한 흙을 통해 탄소 흡수력이 높고, 생물다양성을 통해 탄소 순환에 기여한다. 하지만 전체 농업 생산량과 비교하는 산업계 논리에 막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수확량이 적은데 지속 가능하다고 볼 수 있나요?
A. 생산량은 적더라도 생명력, 저장성, 영양 측면에서 장점이 크고, 긴 관점에서 생태계 보전과 토양 회복에 더 효과적이다.
Q. 무경운 농법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요?
A. 명확한 기준은 없으며, 농민의 철학과 판단에 따라 경운 여부는 자율에 맡겨진다. 데메터 인증에서도 인증 기준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Q. 한국에도 해수표면보다 낮은 간척지가 112,464ha 정도 있습니다. 이 농지들은 염해문제로 물을 사용하는 벼나 소먹이용 풀 외에는 재배할 작물이 없습니다. 네델란드는 간척 사업후 오랜기간동안 염해가 많았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염해를 제거하기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추가로 혹시 간척사업의 폐해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A. 간척 후 담수 유입으로 염분 제거를 몇년에 걸쳐 계속 해왔구요. 현재는 갯벌성 진흙 토양이 농사를 짓기에는 가장 영양분이 많은 오히려 매우 생산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 곳 녹지는 다른 농지에 비해서도 농업 생산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농지 거래가도 비쌉니다.
담수를 흘려보내고 드러난 바다의 갯벌을 점점 말려서 농지로 조성하는 과정이 3~5년 정도 걸렸구요. 몇년에 걸쳐서 헬리콥터로 씨앗을 뿌렸습니다. (독일의 역사학 박사님이 만드신 다큐가 있습니다)
그렇게 풀들이 계속 자라게 하고, 그 풀들이 염해를 강하게 견딜 수 있고 흡수하는데 몇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