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기 전, 쌉쌀한 아침 공기를 좋아한다. 코끝을 찡긋하게 만드는 찬 공기, 가슬 거리는 스웨터의 촉감이 좋다. 목덜미를 스치는 찬바람에 정신이 든다. 겨울이 오고 있구나 싶을 때면 미처 다 누리지 못한 가을이 아쉬워 진다. 단풍이 아직 완전한 것 같지 않은데 발치에 떨어진 낙엽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은행나무는 보다 샛노랗게 물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어느새 마트에는 트리 용품이 들어오고, 커피 전문점은 크리스마스 시즌 음료를 출시했다. 날씨는 언제 가을이 존재했냐는 듯 하얀 입김을 훅 뿜어낸다.
짧았지만 분명 가을은 존재했다. 즐길 새 없이 지나간 것처럼 보여도 그렇게 서둘러 사라지진 않았다. 그래도 아직 코트는 어색하고, 크리스마스 장식은 낯설다. 공기가 품고 있는 가시지 않은 열기가 있다. 쌀쌀하지만 차갑지 않은, 스산하지만 냉랭하지는 않은 열기가 남았다.
규정하기 애매한 시간 가운데 서 있는 걸 좋아한다. 이불 속 온기와 얼굴에 닿는 차가운 공기가 공존하는 때를 좋아한다.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시처럼 계절의 사이에 걸려 있는 모호함을 좋아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렇다. 둘 다 누리고 싶은 욕심 많은 사람이어서. 아메리카노를 마실 것인가, 카페 라테를 마실 것인가. 자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그렇게 꼭 뭔가를 골라야 하는 삶이지만 시간 위에서는 선택이 없어 좋다. 고르지 않아도 흘러가는 것, 지나가는 것이므로. 그러니까 우유부단 하더라도 조금 밍기적 거리고 있겠다. 붙잡지 않아도 가을은 가고 겨울은 오니까. 계절에서 만큼은 게으르게 욕심 부리면서. 이것만큼은 그래도 내가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삶의 일부니까. 이거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