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뭔가를 배우거나 무엇인가를 하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외국어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계발에 소홀한 이가 되고, 헬스장을 등록하지 않은 사람은 건강 관리를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 되곤 한다. 운동이나 어학에도 유행이 있는 모양인지 다양한 학원, 다양한 운동들이 매일 새롭게 눈에 띈다. 길에서 받아든 광고지, 펄럭이는 플랜카드를 보고 있자면 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 않는 지금의 나는 부동자세로 서 있는 것 같으니까, 마치 붙박이장처럼.
'10kg 감량 약속드립니다!' 라는 패기 넘치는 플랜카드, '10회 완성 달라진 당신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라는 피부 관리실의 유혹적인 문구들. 커피가게도 10잔 마시면 1잔 무료라는 쿠폰을 발행하는데 대체 10, 열 이라는 숫자는 어떤 약속의 숫자일까?
아주 오래전에(그렇다고 머나먼 옛날이야기는 아니지만) 신입생들은 다 피해 듣는 교수님의 원론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수업이 지루하다고 소문 난데다 학점에도 인색하며 노트 필기 검사까지 한다고 해서 수강 신청을 꺼려하는 분위기 이었는데, 나는 타 학과생 인데다가 다른 수업처럼 낯선 과 학생들 사이에서 팀 과제를 하는 것 보다는 앉아서 쓰기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소문을 뒤로하고 신청한 강의였다. 역시나 소문은 틀리지 않았고 수업은 물론 보강 또한 철저했다. 여차하면 날씨 탓 기분 탓으로 강의실 문 앞에서 돌아가는 신입생들(나 포함)에겐 어지간히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게 어려워하며 수업을 들었던 어느 가을, 저녁 보강 시간에 교수님께서 해 주셨던 말이 있다.
'인생에 있어 딱 10년이다. 10년만 뭔가에 열심이면 다 어렵지 않게 살게 된다. 열일곱 살 부터 스물일곱 살까지의 십년인지, 서른다섯 부터 마흔 다섯 까지의 십년인지, 어떤 10년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앞으로 어느 시점에서의 십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한쪽 귀로 흘려버린 줄 알았던 이야기가 10이라는 숫자를 볼 때 떠오르곤 한다.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하는 세상에서, 넋 놓고 앉아 있으면 금세 뒤에 서 있는 것만 같은 세상에서, 그리고 휴식이 진정한 휴식이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열 번은 꽤, 아니 체감 농도가 거의 한 세기 같은 숫자다. 커피가게의 쿠폰만 봐도 열 번의 충성도를 지키지 못하고 쌓여가는 게 여러 장이고, 10회를 기준으로 끊은 PT도 이런 저런 이유로 빠져서 약속한 달을 넘기기 일쑤니까. 별 거 아닌 것 같은 열 번은 정말 별 게 아닌 게 아닌 거다. 그러니 아무리 백세 인생 시대라 해도 그 중 10년을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열심히 할 수 있는 노력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 역시.
봄이 되었고 여러 가지 변화의 시간을 겪고 있다. 앞으로 10년이라면 멀게만 느껴지니 앞으로 딱 열 번, 열 개만 해보자고 다짐해 본다. 양치질 하면서 스쿼트 10번, 하루 열 개 단어 외우기, 책 열 페이지, 지금보다 딱 열 걸음 더 걷기. 하다 보면 어딘가에 서 있을 거다. 어렵지 않게. 꾸준함이 나를 그곳에 세워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