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듯 그러나 빠르게 연휴가 끝났다. 오늘은 월요일. 세상의 공기마저 다른 것 같은 연휴 끝의 월요일이다. 다음 연휴를 맞이하기 위한 시작의 월요일이기도 하다. 물론 다음 달의 빨간 숫자는 일희일비하게 만들지만.
여행지에서의 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몸은 그곳의 습기를 한껏 머금어 무겁다. 그곳에서 음식과 물만 마신 게 아니라 여행지에서의 흥분과 여유까지 과하게 들이킨 모양이다. 여행 가방을 풀면서도 거의 억지로 몸을 놀렸다. 바닥에 얼굴을 대고 누워 굴러다니는 먼지를 보면서 '청소기를 돌려야하는데' 생각만 할 뿐이다.
소파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여행지에서 사온 몇 가지를 들여다봤다. 곧 생일인 친구에게 쓸 카드, 새로운 시작을 준비 중인 친구의 공간 한 편에 매달 모빌, 고마운 분께 드리려고 산 자수가 곱게 놓아진 손수건과 작은 책방에서 구입한 책 같은 것들. 이번에는 내가 갖기 위해 산 물건은 없었다. 물욕이 없어졌나 싶었다가 이번의 늦은 휴가가 모든 것 그 자체였으므로, 물건을 사서 간직하는 것으로 여행의 기억을 남기는 행위 보다 지금 여기에 머물고 있는 것이 '여행의 기억'이 될 것이므로 곱게 포장 된 길을 걷고, 오래된 나무 아래에 서 있고 동이 트면 햇살이 처음 닿는다는 동네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는 것으로 이번 여행을 기억하고 싶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주에 묵은지 처럼 집 안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던 물건을 정리했던 것의 여파가 여행지까지 간 모양이다. '내가 안 치우면 아무도 안 치워' 내지는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늘어놓는 사람 따로 있지!' 라는 잔소리를 내내 듣고 살았는데 어느새 내 입에서 그 말이 엄마의 것과 토시 하나 다르지 않고 튀어나오는 걸 발견한 어느 날.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어느 날. 그간 잊고 있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온갖 버릴 물건들에 마음까지 무거워진 그 어느 날을 뒤로 하고 여행지에서의 날을 보냈다.
연휴가 낀 여행 일정이라 쉬는 상점이 많았다. 그렇게 문을 닫은 상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의 골목에서 '가을 방학'이란 간판을 걸어 둔 집을 봤다.
가을방학.
뜨거운 열기를 피해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던 여름과 추운 바람을 피해 또 안으로 안으로 들어갈 겨울 사이에 가을의 방학. 좋은 날들, 밖으로 가고 싶었던 곳,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만나러 가는 주인장의 들뜬 마음이 느껴지는 글씨였다. 고개 숙이고 안쪽만 들여다보지 말고 고개 들고 바깥을 둘러보라고, 시간은 외운다고 외워지는 게 아니라고, 버린다고 다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계절은 그런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가을이 방학이다. 깊고도 푸른 하늘이 머리 위에 있고, 색을 바꿔 입으려 초록이 더 짙어지는 계절. 그들 덕에 쉬지 않아도 쉴 수 있는 시간. 방학이니까 쉬엄쉬엄 걸어가기로 한다.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밖으로 나가보기로 한다. 겨울의 땅을 위해 필요한 것을 끌어안고, 필요치 않은 것을 내 놓는 가을. 가을 방학에는 그렇게 가을이 걷는 시간을 따라 걸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