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흐르는 시간

by 산책

연말에 좋아하는 밴드 공연에 다녀왔다. 열아홉 스무 살 무렵부터 함께 했다는 밴드 멤버들은 이제 삼십 대 중반이 훌쩍 넘었다. 첫 앨범을 낸지 십 년이 지났다. 그런데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들이 처음 만났다던 스무 살의 어느 시간이 흐른다. 지금은 2005년이 아니라 2016년인데, 2005년의 어느 시간이 남아서 베이스 소리에, 기타 소리에 묻어 나오는 것 같다.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기억에 남는 생의 전환점마다 챕터를 매길 수 있을 거다. 십대, 이십 대, 삼십 대 혹은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처럼 시간 순으로 굵직하게 분류할 수도 있겠고, 격동의 사춘기, 혼란의 청춘 진입 시기, 첫 연애의 쓰라림, 백수 시절, 파란만장 취업 준비 시기, 정글에 던져진 것 같은 직장 초년기, 선택과 고민의 결혼 준비 시기처럼 사건과 이벤트로 분류할 수도 있을 테고.

그렇다면 생의 연대기를 사람으로 그려 보면 어떨까? 사건과 시간 사이에 서 있는 사람들, 지금 내 곁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처음 만난 시간으로 말이다. 오늘 내게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낸 친구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어제 나에게 저녁을 사 준 그는 스물둘 여름부터 함께 했다. 목요일에 만나기로 한 선배는 한참 삶이 고달플 때 소위 '사회생활'이라는 세계에서 어깨를 두드려 줬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면 나는 몸과 마음 모두 바닥을 향해 치닫던 2010년 가을에 있기도 하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 아무 고민 없던 2000년 여름 이거나, 낯설고 생경한 환경과 친구들 사이에 앉아 있던 1993년 봄에서 시작한다.

시간의 터널을 빛의 속도로 통과해 도착. 지금 2016년 1월 12일에 서 있다. 통과하는 동안 나는 시간의 물줄기에서 뿌려진 역사를 온몸 구석구석에 묻히고 달린다. 그들을 만날 때 내 심장의 나이 역시 그때부터 시작된다. 열넷, 스물둘, 스물일곱, 서른셋. 그래서 우리는 늘 '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는 인사를 서로에게 건네는지도 모르겠다. 거울 속 얼굴이 나이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작이 그때여서.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는 그때부터 시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기 때문에 밝고 맑은 보정이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만나는 이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을 떠올려 본다. 어느 순간에서 내가 달려왔는지 그가 달려오는지를 헤아려 본다. 시간은 사라지는 것 같아도 남아 있다. 그와 나의 어딘가에 남아 우리가 만날 때 다시 흐른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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