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리 걸음

by 산책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신년 계획이 어느덧 4개월을 채워간다. 남들 다 다이어리 첫 장에 적어 놓는 그것. 여름이 다가오고 있고 길에서 나눠 주는 전단지, 포털의 한 꼭지, 광고 메일. 여기저기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그것. 바로 체중 감량, 다시 말하자면 다이어트 말이다. 시작은 체력을 길러보고자 했던 것인데 조금씩 줄어드는 체중계의 숫자를 보니 어느새 체중 감량(사실 그게 더 절실했지만 말이다. 내 특기 중에는 아닌 척하며 본심을 꽁꽁 감추는 것이 있다)이 목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을 비우자고 다짐하면서도 자꾸 체중계의 숫자를 들여다보게 되고 기억하게 되었다. 마의 정체기가 오고 우스갯소리처럼 두 달 동안 0kg 감량했다고 했지만 정말 그랬다. 전혀 변화가 없는 체중계를 보며 내일은 단 1의 변화라도 (이왕이면 마이너스 쪽으로) 일어나길 바랐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니 슬슬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매일 하던 운동을 이런저런 이유로 빼먹기 시작했고 식단에도 관대해졌다. 어떤 일에도 '절대'는 없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대며 말이다.

일 년 전 여름에 매 주 화요일마다 블로그에 글을 남기기로 했다. 그 또한 신년 계획처럼 혼자 시작했고 누구의 강요도 없었다. 글을 쓰고 올리고 가끔 읽고 간 이의 흔적을 보던 시간. 건너뛰지 않으려 노력했고 마감에 쫓기는 사람처럼 월요일 오전부터 마음이 조급해지다가 화요일 늦게 글을 마무리하고 나면 숙제를 끝마친 사람처럼 들뜨기도 후련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 달이 흘렀다. 가장 설득하기 어려운 상대는 '자신'이기도 하지만 한 번 설득하면 포기가 가장 쉬운 상대 역시 '자신'이다. 스스로 인정하기 좋은, 아주 다양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

해서 지난번에는 한 주를 건너뛰었고, 이번 주에는 하루를 넘겼다.

변명 하자면, 같은 이야기를 비슷하게 내용만 바꿔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매일 같은 숫자를 표시하는 체중계처럼 제자리에서 같은 걸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렇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두 달 동안 0kg의 변화 같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그건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그 말을 뒤집으면, 나는 하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매번 다른 바탕을 채우고 있단 거다. 하나의 빛이 스펙트럼을 통과해 무지개 빛깔을 내듯 거꾸로 돌아가 보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색을 입고 장면을 달리하지만 단 하나의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것.

오늘도 체중계의 불변의 숫자 앞에 한숨 쉬고 내려왔지만. 여전히 나의 이야기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아 깊은 한숨을 들이쉬었지만. 단 하나의 것, 그것은 '나이고 나만 할 수 있는 것이며 내가 하고 있는 것'이란 진실 역시 변하지 않는 어떤 쪽에 놓여 있으므로 오늘도 나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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