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인정하는 일

by 산책

아이가 색종이를 꺼내 접고 있었다. 정사각형 모양의 파란 색종이를 반 접었다 펴니 중앙에 선명한 선이 생겼다. 그 선을 따라 종이의 귀를 삼각형 모양으로 접길래 비행기를 만드나 싶었는데 다시 펼쳐 사각형으로 접어 나갔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반복해 접힌 파란 종이는 점점 길고 좁은 모양의 직사각형 모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건 책이에요.’

아이는 주름이 가득한 색종이를 엄마에게 내밀었다. 아코디언처럼 펼쳐지는 색종이를 들고 아이는 나비 흉내를 내다가 또 금방 비행기 조종사로 변신했다. 종이비행기가 되려다만 색종이 또한 책이 되었다가 나비가 되었다가 날개가 되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은 마음을 여러 번 접는 일이다. 종이 귀를 접듯이 내가 그에게 대해 가진 마음을 조금 혹은 많이, 살짝 혹은 크게. 그렇게 그에 맞춰 접어 나가는 일.


주말에 아버지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가족이어서 가족이기 때문에 어색한 게 이상할 법도 하지만 가족이라 어색한 때도 있다. 단 둘이 콘서트라니.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주말마다 어린 나를 데리고 광화문으로, 교보 문고로 장충동으로 외출하곤 했는데 아버지의 어떤 시기, 그와 꼭 맞물린 나의 십 대 시절을 보내며 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두게 됐다. 그러나 세월이란 것은 어색함마저 적절히 봉합하는 능력을 지녔으므로, 그리고 가족이란 것은 어색함 마저 쉽게 용인하지 않으므로. 이제 성인이 된 지 한참인 나와 노인이 된 아버지는 그렇게 두 시간여를 같은 공간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나는 잘 알지 못하는 시대의 음악들, 들어 본 기억은 있지만 선호하지는 않는, 온전히 아버지의 취향인 공연장에 앉아 그 시절의 아버지를 상상했다. 그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이기도 했지만 2층 객석에 앉아 공연장을 조망하고 있으니 아버지와 비슷한 연령층의 관객들 속에서 퍼지는 그들만의 빛, 분위기, 감정 같은 것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슷한 색깔의 초경량 울트라 패딩과 거의 같은 색의 등산복 바지를 입은 사람들. 흑백 사진 속에서는 다채로운 옷차림이었을 그들. 그들 속에 아버지가 있었다.

타인에 대한 원망이 미움이란 옷을 입지 못하고 남겨지면서 체념과 무심함으로 바뀌었다. 체념은 아무런 힘이 없다. 쏟을 에너지가 없는 상태의 무심함은 어색함이 되었다. 아버지의 어떤 시기, 자신 만의 세계에서 한 발도 물러나지 않았던 시기에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온 가족을 무능으로 빠뜨린 그때가, 시처럼 읊조리는 가수의 노랫말에 따라 떠 올랐다. 무서웠을 것이다. 두려웠겠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겁났을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과 풀리지 않는 상황과 매달 빠져나가는 생활비와 커가는 아이들. 순간, 그때의 아버지 마음이 되었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순간, 살아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순간. 내가 본 그때 그의 굽은 등은 나약함이 맞았다. 두려움이 맞았다.

아버지는 강하지 않았다. 성공 신화 속 주인공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의 재기는 그가 가진 그릇만큼 이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내가 가진 기대를 한 마디씩 줄이는 일이었다. 접고 또 접어서 그에 맞추는 가장 그럴만한 조각을 만드는 일. 이번엔 시간이 도와줬다.

작가의 이전글지금, 최선이 모여 이룬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