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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Jan 05. 2019

생각을 말(글)로 바꿔주는 메모장

말을 잘 못하는 편이다. 글 쓰는 것만큼이나 한참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중학교 때인가, 처음 입학해 어리숙했기도 했겠지만, 멍청하다는 말을 몇 번 들었다. 내가 멍하게 있을 때는 주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이다. 뭘 말해야 할지를 생각하려면, 뭘 써야 할지만큼이나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말을 아끼는 편 같지만, 실은 굉장히 수다스럽고,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아무튼 어떤 말을 하려면 생각이 길어진다. 다음의 다음, 다음의 또 다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렵다. 그래서 생각을 글이나 말로 바꿔준다면, 처음엔 너무나 좋을 것 같았다. 

지난번에 여우 책방에서 시 워크숍이 있었다. 많은 생각이 이어진 강의였는데, 마지막 질문 시간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나의 말들은 숙성을 필요로 하는 그런 류의 것들이라서 그랬다. 묵혀둬야 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그런 막걸리 같은? 가끔은 맥주 같은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딱, 하고 병을 땄을 때 청량함이 병 끝까지 차오르는 맥주처럼 시원하고 알싸한 사람. 그런 말을 바로 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래 생겨먹길 그렇게 생겨 먹어서. 혹은 그렇게 뇌 회로가 훈련된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을 곱씹고 생각이 꼬리를 무는 작업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친구가 별로 없기도 했고, 바깥에서 노는 일을 즐기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창 밖을 보면서 멍 때리는 일을 즐겼던 어린 시절부터 강화된 이 작업을 그러니까 거의 30여 년 넘게 해 왔으니, 맥주 같은 사람이 되기는 어렵겠고, 그렇다면 잘 익은 막걸리 같은 사람이 되는 쪽을 택해야겠다. 잘 익은 생각을 또 잘 익은 말로 풀 수 있다면. 세상에 더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 되겠지! 생각을 말로 바꿔주는 메모장이 발명된다면 절대 사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생각이 변하는 과정, 그러니까 쌀이 술이 되는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 있을 테니까. 사실 나는 막걸리를 담가본 적도 없고 익어가는 술을 직접 본 일도 없다. 이 모든 것을 책으로 읽거나 영화에서 봤을 뿐. 뽁뽁하며 술이 익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궁금한 거다. 밤이 되면 술독에서 나는 뽁뽁뽁 소리를 듣는 건 어떤 걸까. 생각도 그렇게 익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면. 내가 내 생각을 다 잡을 수 없으니 어떤 때는 안타깝기까지 하는데, 그걸 책처럼 눈으로 읽을 수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부끄러워 하이킥 하고 싶은 순간도 있겠지만. 그 과정만 엮어도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스마트 렌즈처럼 눈에 끼어야 할까, 아니면 머리핀처럼 머리에 붙여야 할까. 마치 땜빵 자국처럼 머리에 동그랗게 붙이는 패치는 별로다. 칩을 심는 건 조금 무섭다. 안경처럼 쓸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블루투스로 연결되어서 휴대폰 메모장에 쓰윽. 물론 그것은 내가 온 오프 상태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 한대로 남의 험담 같은 게 여과 없이 적히면 서로 곤란하니까. 비밀번호는 당연히 필요하겠지. 

지금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지금 내 손가락이 적어 내려가고 있지만,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노래가 나오고 있고(어머나, 샘 김의 신보) 피넛의 통화 소리가 들리고, 후배가 책 읽는 기척이 난다. 이런 것들을 글에 적을 수도 있지만 적지는 않을 예정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은 메모장에 적히는 거다. 피넛 전화기가 어떻게 됐다고? 이제 알람 울리기까지 몇 분 남은 걸까? 샘 김의 이번 신보는 너무나 좋지! 같은 말이 메모장에 주절주절 적히는 것이다. 아아 이렇게 의식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글쓰기. 

글로 남겨지는 것은 그러니까 두 갈래다. 검열이 된 이야기는 한글 자판으로 남겨지고, 검열 없는 이야기는 메모장에. 동시간에 두 가지의 생각. 지킬 앤 하이드도 아니고, 놀랍다. 이번 글 주제가 아니었다면 생각도 못했을 상황이다. 

이렇게 두 갈래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그렇다면 어느 줄기에서는 맞닿을까. 남한강과 북한강처럼 흘러가다 한강이라는 큰 지류를 만나게 될까. 그런데, 한강은 어디로 흘러가지? 맞다, 인천.    

이미 내 생각은 여기에 남는다. 그러니까 새 발명품은 이렇게 작정하고 앉아 있을 때 말고 길을 오갈 때 필요하다. 산책을 할 때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낙엽도 보고 벤치도 보고. 저녁 메뉴도 생각하지만 그래서 지난번에 쓰다 만 연애 소설은 어떻게 바꿔야 할까도 생각한다. 현재형으로 바꿔야지, 마음만 먹고 노트북을 열지 못할 때, 그리고 어떤 사건들 (이를 테면 연애의 순간과 주인공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을 넣어두어야지 할 때,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카톡의 답장 내용들을 정리할 때도 필요하다. 설거지할 때, 공연을 보거나 영화를 볼 때 그 순간 떠오르는 감상을 붙잡아 두기 위해 내가 얼마나 수없이 되뇌는지! 이럴 때 굉장히 필요하다. 할 일들을 복기할 때도. 아 그런데 이렇게 그 신문물에 기대면 결국 내 뇌는 뭘 하지? 생각을 생각하는 것도 뇌의 일 중 하나일 텐데, 이렇게 뇌의 일을 줄여나가면 결국 뭐가 남을까. 안 되겠다, 아무래도. 이건 마치 막걸리를 속성으로 숙성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일 수 있으니. 시간이 필요한 일에는 시간을 내어주어야 하는 게 맞겠다. 그러니까 재차 말하지만, 이런 물건이 발명된다 해도 구입은 좀... 생각해봐야겠다. (절대 안 사겠단 말은 차마 못 하겠는 것은 매력적인 부분이 분명 있으므로... 생각은 이렇게 또 꼬리를 문다. 끝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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