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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Jan 05. 2019

발명

인류가 발명해 낸 무수한 기기들 속에서 또 새로운, 하늘 아래 새로운 무엇이 나타날까? 어리석은 물음이다. 

분명 나타날 것이다. 생각을 그대로 적어주는 기기 같은 것은 어쩌면 10년 이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소설 한 권쯤, 이라 말했지만 사실은 모르겠다. 검열 없이, 검증 없이 쏟아내는 생각들이 고스란히 적힌다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세상에 비밀도 없어질 것이고 기밀문서 따위 존재할 수 없을 일. 

그렇다면 세상은? 보나 마나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내가 너에 대해 속으로 생각하는 이야기가 메모장에 적히고 그게 어느새 누군가에게 공개된다면. 생각만 해도 후들후들하다. 남편이고 시댁이고 속으로 하는 험담, 친구에 대한 불만, 속으로만 하는 험담. 아, 안 되겠다. 이런 발명품은 생긴다 해도 사지 않겠다. 이것은 마치 파우스트 박사가 영혼을 파는 것과 같겠구나. 젊음을 얻고 영혼을 팔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지난 토요일에 김동률 콘서트를 다녀왔다. 내가 전람회를 처음 들었을 때가 94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청춘의 온 시간을 관통해 온 음악을 들었다. 김동률이 전람회 시절의 노래 ‘기억의 습작’을 부를 때, 나는 삼성역 버스 정류장에 있었다. 때는 여름이었고, 남색 교복 치마를 입고 회색 화단 돌담에 걸터앉아 소니 워크맨으로 노래를 듣던 때.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던 시절, 오토리버스 기능으로 수십 수백 번 같은 앨범을 반복하던 때. 

어떤 노래가 플레이되면 그때의 기억이 자동 재생되는 것은 오토리버스 세대의 특권이 아닐까 썼던 어느 날의 일기가 있다. 그다음에는 휴대용 CD 플레이어가 유행했고, MD 플레이어도 있었다만 워크맨의 자리를 넘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타난 MP3 플레이어! 이후 워크맨은 사라졌다. 카세트테이프도 마찬가지. 

이제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어렵지 않다. 발명은 발전의 다른 이름일까? 새로운 기기가 발명되었고, 음악을 듣는 방법 또한 달라지지만 그래도 변치 않는 하나는, 귀로 듣는 것,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 시간과 공간을 몸에 새기는 것. 

토요일에 그는 말했다. 꼭 변해야 할까, 에 반박하고 싶다고. 변치 않는 맛, 변치 않는 거리, 변치 않는 정취를 지닌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고. 그게 자신의 음악이었으면 한다고. 

그 말을 듣다 생각했다. 누구나 갖고 있는 하나의 지류, 흐름, 생을 통해 말하고 싶고 발현하고 싶은 그것. 발명품의 새로움 속에는 신박함만 있을까. 편리와 발전만이 존재할까. 그 안에도 말하고 싶은 무엇이 있을 것이다. 발명가가 일생을 통해 갖고 있는 어떤 관점 같은 것. 그것과 또 다르게 누군가는 새로움이 아닌 익숙함으로 그것을 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발전은 새로움이 아니고 다양한 변주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익숙함, 새로움 모두를 포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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