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대로 일기
하천길을 (템즈강쯤 되면 더 있어 보였으려나, 하지만 현실은 양재천) 걸어서 전망 좋은 카페(공원 앞 스타벅스)에 왔다. 작업실을 가려다 오늘은 다들 떠나고, 나 혼자 있을 거였으므로 사람이 북적일게 뻔한 카페로 발걸음을 옮긴다. 귀에 귀마개스러운, 혹은 대파 대가리 같은 에어 팟을 꽂으면 그깟 거슬리는 소음쯤은 모두 소멸한다. 제법 높이가 있는 돌계단을 내려와 우레탄이 깔린 길에 들어선다. 햇살보다는 바람이 봄 같다. 겨울이 이렇게 안 추워도 되나, 눈은 언제 내렸었나, 올해 농사와 이런 기후변화를 걱정하게 되는 날씨이긴 하지만, 사실 나는 좋아한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불어오는 따사롭고도 차가운 바람. 살을 에이는 찬 바람이 반쯤 가신, 청량한 바람. 겨울과 봄 사이에 계절이 하나 더 존재한다면 좋겠다고 바란 적도 있다. 이 계절을 표현할 다른 말이 있다면. 그렇게까지 반갑게 맞이할 만큼 추위가 매서웠던 것이 아니어서 바람에 묻어오는 봄 냄새가 또 그렇게까지 반가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냄새, 봄이 담겨 있는 차갑고도 미지근한 바람은 설렌다.
3월이 다가오면 설렜다. 새로운 시작의 3월, 노랗고 분홍의 튤립이 한 다발 기대되는 3월에는 신입생의 기운이 있다. 기억에 남지 않는 신입생 시절이었지만, 그리고 남아 있더라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프레쉬맨의 두어 달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입생의 기운만큼은 좋다. 어색하지만 두근대고, 두렵지만 기다려지는 내일이 있던 신입생의 하루. 이제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그것, 그리고 사라져 버린 그것.
주말에 영화 <어바웃 타임>을 봤다. 개봉 당시에는 못 보고, 중간에 이런저런 이유로도 못 보고, 다들 좋다고들 하는데 안 보고 그냥 뒀다. 다들 좋다고 하는 것을 그냥 두는 이 마음은 뭘까? 좋아하는 책, 재미있다는 영화를 상자에 가만히 넣어두고 열어보지 않는 이 마음은 뭘까? 아끼다 뭐 된다는데도 불구하고, 책도 영화도 끝없이 생산되어 나오는 이 시대에 말이다. 쌓아둬 봐야 읽고 볼 게 더 많아질게 뻔한데도 나는 왜 맛있는 걸 아껴 먹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들쳐볼 생각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발뒤꿈치로 살며시 누르는 걸까? 나도 영화 속 주인공 팀처럼 벽장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원하는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아하는 것을 가만 두지 않고 그 자리에서 먹어치워 버릴까?
팀의 아버지는 대물림되는 이런 능력을 책을 읽는 것에 썼다. 디킨스를 읽고 또 읽는 것으로. 팀은 사랑에 썼다. 연인과 가족, 친구를 위해. 그들을 더 사랑하기 위해.
한번뿐이라는 것이 아까워서 못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지나고 나면 안타까운 것들이 있다. 이 계절에 불어오는 바람이 담고 있는 기운, 신입생의 기운을 이제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것이므로 나는 아까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울 뿐이다.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돌아갈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그리워하는 마음만을 담아 그리워하면서 엉엉,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마음을 끌어올려 울다가 먹먹해하면서 바람을 흘려보낸다.
바람이 설레게 하고, 설레는 바람은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생기게 하고, 생기는 마음은 또 무언가를 그리워하게 하면서 도는 이 회오리에 나는 몸을 맡긴다. 왈츠를 추듯이 한 발씩. 빠져드는 것이 무서워서, 감정의 소용돌이에 마음이 빠져들까 무서우면서도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어쩔 도리가 없으므로 그저 맡기고, 돌고, 그리워하고. 언젠가 이 고리를 연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신입생의 기운과 어바웃 타임.
'아름다운 날들, 이 잔에 가득 채워.'
마침 노리플라이의 노래 <아름다운 시절>이 흘러나온다. 가사가 저렇다. (날 보고 있나?)
담을 수 없는 마음을 담으려는 욕심, 한번뿐인 처음을 또 느끼고 싶은 욕심이 결국 나에게 맛있는 것이 가득 담긴 상자를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설렘이 무뎌질까 두려워, 아름다운 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까 두려워, 그런 것이 아닌가.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바람에 실려오는 새 계절의 기운을 깊숙이 폐로 들이킨다.
벽장 속으로 들어가 어느 때로 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언제로 돌아갈 것인가. 그때의 나는 언제인가. 가장 처음 이 계절에 불어오는 이 바람에 이 기분을 느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더 이상 신입생일 수 없게 된 때로 돌아가서 바람이 불어오는 밤에 '이제 이 기분을 매년 느끼게 될 거야, 그러니 지금 울어도 된다' 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못 마시는 맥주를(그때 당시 청정 장기였던 내 간) 한 캔 들고, 공원을 한 바퀴 뛰고 싶다. 그리고 봄을 준비하며 새로운 시작이 들썩이는 잔디밭에 누워 '앞으로도 수많은 것이 사라질 테지만 또 수많은 것을 보게 될 테니 지금 울어도 된다'라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덜 안타까울 것도 아니고, 더 단단해질 것도 아닐 테니까. 그냥, 지금 울어도 된다고, 휘청여도 된다고, 지금의 나에게 어느 날의 내가 말하고 있다.
20200210.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