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의 유익

되는대로 일기

by 산책

일기를 잘, 매일은 아니어도, 잘(열심히) 쓰자가 이번 주 목표다. 매일의 계획을 세우고 매주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요즘 같이 예측 불가능한 날들에는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방학이고, 방학이다 보니 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튀어나온다. )

매일 뭔가, 똑같은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목표라고 이름까지 붙게 되면 약간의 강제성에 의무감 플러스 부담까지 달고 있어서 단조로운 일상에는 물론, 한 치 앞도 모를 것 같은 (무계획이 계획이 되는 날이 차라리 편한) 날에 알람시계 같은 기능을 한다.

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세 번은 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어제 내가 감기약을 챙겨 먹었는지, 혹은 샤워를 했는지 조차 모르게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하루에 다른 어떤 기운, 생기까지는 아니어도 환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 그런 기운을 불어넣고 싶어서였다.

노트 위에 쓰는 일기도 좋지만, 키보드를 두드리며 하얀 화면을 응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가끔 키보드 소리마저 악기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렇게 공개된 곳에 쓰게 되면 또 다른 의무감에 지켜지는 계획이 될 가능성이 크니까 일단 여기에, 되는대로 일기라고 적어 본다.


삶의 환기를 위해, 가끔은 미술관과 영화관에 가고 외국어를 배우고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그런 것도 물론 매우 필요한 일들이지만 나의 시간을 적어보는 것도 좋다. 소설가 김연수가 말한 것처럼, 일기를 쓰는 일은 시간을 두 번 사는 일과 같다. 하루를 복기하면서 지금 이 시간에 과거의 어느 때를 걷게 되는 것. 버지니아 울프도 그랬다.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확장되고,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현재가 아니라 오직 과거에 대해서만 완성된 감정을 갖게 된다고.

그러니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것은 같은 시간을 다른 식으로 두 번 경험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난 시간에 느꼈던 감정을 현재에 또 다르게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는 일이니 유익이야 말해 뭐해, 심지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벽장에 들어가지 않아도(물론 상황은 바뀌지 않지만) 시간을 두 번 살면서, 완성된 감정을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까지 하게 되니 거의 증강현실 체험과도 같겠다.


아무튼, 일기를 쓴다.

유익에 대해 떠 벌리는 것은 매일 쓰고 싶다는 다짐을 다져서 귀찮음과 게으름, 내 안의 검열관과 싸워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오늘 뭐 했는지, 별 거 없는 하루에서 찾아낸 지질한 감정을, 내가 아직 갖고 있는 동화 속 판타지와 '꿈은 이루어진다' 같은 걸 이제 더는 믿지 않게 된 낡은 어른의 마음이 충돌하는 교통사고 현장을 들여다본다.

이 이야기는 내일 밤쯤 풀 수 있겠지. 오늘은 일기 쓰기의 유익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기로 하자.


시간을 향해 열려 있는 창, 오직 나를 위한 창으로 들어가는 시간. 그게 일기라고. 그러니까 지난 시간이라는 유리가 끼워진 창을 통해 바라본 오늘의 날씨에 대해 턱을 괴고 떠올려 본다. 일기장에 날씨를 적는 것은 정말이지 다 뜻이 있었던 거로군! (방학 숙제, 그중 밀린 일기에서 가장 애를 먹였던 것은 바로 날씨 아니었던가!!) 오늘의 날씨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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