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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Oct 04. 2022

나의 필리어스,

한바닥 소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붉은 빛 우레탄 길 위를 걸어왔어. 쑥, 들풀, 잔디의 초록 잎이 사이사이 보이는 봄의 하천 길에서 널 생각했지. 그래도 좋았던 시간이 있었어. 그건 분명 존재했지. 기억하지 못해도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러니 결론부터 얘기하고 시작하자. 난 4월에 떠나. 지난번에 얘기했다시피 남편이 주재원으로 발령 났어. 나도 그곳에서 공부를 시작해보려고. 여기 네가 있긴 하지만, 너는 너일 뿐이지. 우리는 끝내 우리가 될 수 없을 거라는 걸 너도 그리고, 나도 잘 알고 있잖아. 그건 꽃몽오리가 아무리 단단해도 밖으로 삐져나올 수밖에 없는 계절의 진실처럼, 말로 꺼내지 않아도 이미 지니고 있는 무엇이지.  


처음 만난 날 네가 추천해줬던 책 기억해? 테드 창의 소설이었어. 흰 대기가 그려진 지구 바깥 사진 같은 표지의 책을 넌 집어 들었지. 난 내 취향이 아니라 했고, 넌 읽어보면 재미있을 거라 했어. 취향은 찾아가는 거라고, 아직 덜 찾은 취향, 미지의 취향이 있을 거라고. 


두 달쯤 지났을 때였나, 네가 책 한 권을 내밀었어. 앞장 빈 공간에 이렇게 적혀 있더라. 


<탐험, 그것은 고결함이기도 하지. 혹은 순결함이기도 하고.> 


나는 그 말을 한참 곱씹었지. 탐험이 지닌 속성이 무엇인지 너는 잘 알고 있는 듯했고, 나는 전혀 모르겠는 그것을. 어딘가를 탐사하는 일에 이미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고, 치운다고 치워도 달라질 것 없는 풍경이 있었고, 매일이 비슷하게 돌아가는 월화수목금이 있었기 때문에. 탐험이라는 것, 모험이라고도 하는 단어는 마치 탐페레나 치클라요처럼 완전히 낯선 지명, 무엇일지 어떤 곳일지 그려지지 않는 그런 영역이었지. 

고백하자면 대충 읽었어.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하고 싶어서. 다음번 만날 때 네가 물어보면 어쩌나, 냉랭하게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넌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더라. 책을 빌려줬단 사실 조차 잊은 것 같았어. 



두 번째 모임에서 우리는 미셸 우엘벡의 <복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넌 종교와 사회, 정치와 문화에 있어서 기득권과 다름없었던 남성의 나약함을 이렇게 낱낱이 드러내는 것에 더해 엄청난 판타지마저 녹아 있는, 절대 다다를 수 없는 유토피아에 대해 썼다고 극찬했지. 나도 일면 동의하긴 했고, 그렇다면 마지막은 어떤 수순으로 마무리될까, 그런 얘기를 하다 넌 내게 마지막 장 이후의 이야기를 써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어. 그래, 그랬지. 그게 모험의 시작이었어.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이야기를 글로 풀어써 본 적 없었어. 네 제안에 솔깃했고, 오래지 않아 책장을 덮은 소설의 이어지는 부분을 써 내려갔어.  

다음 모임까지 기다리기 어려웠어. 네게 얼른 보여주고 싶었거든. 모임이 있기까지 2주 동안 최선을 다해 참았어. 쓴 글을 고치고, 덧붙이고 또 고치고 네 반응을 그려보면서 설거지를 하고 사과를 사고 쓰레기 봉지를 내다 버렸지. 

토요일 오후 3시 10분 전. 시간보다 일찍 카페에 도착했을 때 오른쪽으로 고개를 반쯤 내리고 책을 읽고 있던 널 발견하고 어찌나 반가웠던지! 내가 내 민 원고를 읽으면서, '오! 이야' 같은 감탄사를 내뱉는 너의 입 모양과 검은색 제도 샤프를 쥐고 밑줄을 긋는 네 손, 그때 바깥으로 노크하던 내 심장도, 골라 쉰 숨도 다 기억나.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이 삶에서 더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것이 자살이든, 실족사이든 생을 종료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어. 하지만 넌 달랐지. 그는 사회적 복종을 택하고 안정을 얻을 것이라고. 얘기는 길어졌어. 넌 모임 사람들에게 내가 쓴 원고를 보여줬지. 사람들은 감탄했어. 

'빵굽, 이런 재능이 있었어요?, 해석도 신선해요.' 

다들 한 마디씩 덧붙였어. 하지만 나는 너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어. 매 번 두 시간의 모임 시간이 끝나고 나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걸 이번 한 번쯤은 어겨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 사람들이 방어회를 먹으러 가자고 했어. 

방어가 제철이야, 소주도 마셔야지. 얼마나 환상적이야! 포토푀가 등장하는 프랑스 소설을 읽고 방어라니, 근사하지 않아? 

대체 뭐가 근사 하단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어. 근처에 맛있는 집이 있다면서 외투를 챙겨 카페를 나오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딘가에 매인 몸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슬몃 부러움이 솟았지.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어. 그때 네가 물었어. '집에 가야 되지?' 순간 나도 모르게 '아니, 오늘은 괜찮아.'라고 대답했어. 가끔 그런 충동들이 솟아. 앞뒤를 잴 거 없이 튀어나오는 말이. 그래서 널 다시 만나게 된 건지도 몰라.


독서모임 역시 그렇게 시작한 거였어. 블로그를 하면서 오래 사귄 이웃이 독서모임 하는 게 좋아 보이는 거야. 호기심도 생겼지. 어느 날 그 이가 나에게 모임에 한 번 나와보지 않겠느냐고 물었어. 그러면서 '빵굽님이 오면 모두 좋아할 것 같은데, 아이들 때문에 주말 오후는 힘드시죠?' 하는데, '아니에요, 갈게요.'라고 대답했어. 독서모임이라니, 이제 나도 아이들로부터 떨어져서 자아실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른들의 언어를 쓸 수 있겠네 싶은 데다가 선택받은 것 같아 우쭐했어. 내가 묻기 전에 누군가 나에게 뭔가를 청하는 일이 가족 외에 없었던 것도 한 몫했지. 물 달라, 밥 달라는 요구가 아닌, 책을 읽고 얘기하는 모임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라니, 나는 순간 대단한 뭔가가 된 것 같았어. 블로그에 올라오는 그 이의 후기를 보면서 만들어온 호기심과 욕구가 다른 고려 사항들은 모두 뒷전으로 미뤘고, 바로 승낙하는 답글을 달았지. 금요일 밤에 미리 다음 날 먹을 끼니를 챙겨두고, 냉장고 가득 간식거리를 채워뒀어. 독서 모임이 내게는 반듯한 삶, 반듯한 일상을 환기시켜 주는 식탁 위 꽃 한 송이가 되길 바라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 두려움도 있었고, 토요일 오후에 식구들을 남겨두고 집을 비운다는 개운치 못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렇게 충동적으로 결정한 일을 합리화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설득하는 일. 

나는 분명 즐거울 거야. 책 읽는 걸 좋아하잖아. 

토요일 오후 홍대 앞에서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상상으로, 못난이 같은 충동이 한 선택을 그렇게 환골탈태시키는 거야. 남편은 가족 이외의 일로 주말 외출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나도 마찬가지였어. 토요일 오후, 나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걸렸지만 일상의 환기구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이니까, 나는 모두를 설득했지. 


그래, 거기에 네가 있었어. 15년도 더 지난 후에, 토요일 오후 3시 합정동에서 널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한눈에 알아봤어. 너 구나. 검은 뿔테 안경은 금색으로, 회색빛이 섞인 후드 티는 하늘색 스트라이프 셔츠로 바뀌어 있었지만, 나는 알아봤어. 넌 날 알아볼까, 약간의 조바심도 있었지. 


'안녕하세요, 낙타님 소개로 온 빵 굽는 타자기라고 합니다.'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은 닉네임으로 서로를 소개했어. 넌 필리어스라고 했어. 우리가 사랑했던 폴 오스터 작품 속 주인공 필리어스, 그 필리어스? 너와 눈이 마주쳤어. 네가 웃었어, 반달눈을 하고. 여전한 널 봤지, 네 웃음 뒤에서 튕겨 나온 시간들이 햇살과 함께 쏟아져서 잠시 눈을 감았지. 


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우리는 인간이 지닌 욕망에 관해 이야기했어. 복종 속 주인공처럼, '과연 40대 남성은 먹을 것과 안길 곳이 있으면 모든 게 완벽한가' 하는 질문에 넌 웃었지. 대답하지 않고, 투명한 잔에 차가운 소주를 따랐어. '필리어스, 혼자 드시네.' 앞자리 사람이 그렇게 말하길래 나는 네 잔을 대신 받았어. 그때, 술잔을 집으려던 네 검지가 술잔에서 손을 떼려던 나의 검지 위에 닿았지. 네 손가락과 내 손가락은 그렇게 잠깐, 그러나 짧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머물렀지. 내 손은 차가워졌어. 네가 말했지. 


여전하구나.      


15년 전 이후, 서로의 기억이 없는 너와 나에게 지금은 뭘까? 과거에 너와 함께 했던 날들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였어. 그 말 한마디에 나의 지금이 소용돌이쳤어. 맥주 컵 안으로 녹아버리는 소주처럼 말이야. 사라지지 않고, 기억하지 못해도 존재하는 시간들을 들이켰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거든. 이제 난 술을 마셔도 추위를 타지 않아. 네가 모르는 15년이 내게 있어. 너도 그럴 테지만, 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 앞에서 다시 떨기 시작했지. 네가 한 말은 마법의 주문 같아서 나를 스물다섯 살 가을로 데려다 놓았어.  

9월이었지. 한여름 열기가 바람 사이를 유영하고 있었어. 다들 아직은 덥다고 손부채질을 할 때 였지. 다른 애들이랑 함께 술 마시고 나와 선 신천 역 먹자골목 앞에서 난 이를 부딪히며 떨고 있었어. 넌 날 끌어당겨 네 후드 티 앞 호주머니 속으로 내 두 손을 넣어주었어. 친구들은 캥거루 같다고 놀렸고 넌 웃었지. 

반쯤 채워진 소주 잔과 초고추장이 담긴 종지 사이에 장갑을 내려 놓으며 넌, '캥거루 대신.'이라고 덧붙였어. '도움이 될 거야.' 라고도 했지.

검은 바탕에 얼음꽃무늬가 그려진 울 장갑을 끼고 돌아가는 길에 네가 말했지.  


아이들이 빵 좋아해? 근처에 내가 하는 빵집이 있어. 언제 들를래?


아이들이 무슨 빵을 좋아하나,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 한기를 느꼈어. 그래, 너와 나 사이의 시간. 그 거리. 15년의 시간을 우리는 다르게 또 같이 걸어왔지. 

너를 만나는 동안, 너를 만나러 가는 몇 달 동안 나는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모험을 했어. 알아주길 바라. 15년 전, 너와 헤어진 이후에도 줄곧 모험이었어. 갑자기 호주로 떠난 널 이해하기 위해 쏟은 불면의 시간들부터, 불쑥 도착한 캥거루 인형도, 다시 끊어진 연락까지. 사이사이 나는 파도를 넘었고, 절벽에서 기어올라왔고, 늪지에 빠진 다리를 어렵게 끌어올리면서 살았어. 



네가 말했지. 그리워. 네 손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던 때가. 

나는 대답했지. 나에겐 ‘우리’가 있어. 너랑은 그냥 이대로이고 싶어. 


정말이냐고 넌 몇 번 되물었지. ‘이런 이야기들을 집에서도, 밖에서도 나눌 수 있다면, 내가 네 글을 매일 읽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필리어스를 알고 야구게임을 사랑하고, 브루클린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어. 넌 날 알잖아.’


아니, 아니야. 난 널 몰라. 하지만 남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 그 사람은 청양고추를 넣은 된장찌개를 좋아해. 일요일에는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 경기를 보곤 하지. 짙은 남색 외투를 좋아해서 소매가 닳을 만큼 입었어. 우리는 보통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 오후에 외식을 한 번쯤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 아이들은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이니 엄마는 외계인 같은 긴 이름의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내키는 날에는 하천을 따라 걸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플랫화이트가 맛있는 집에 들러. 그는 알고 있어. 내가 주저할 때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스크림 콘 두 개와 커피가 든 종이컵 두 개. 이만하면 됐잖아. 

어제는 회색 소파에 앉은 남편 자리에 널 그려봤어. 아무리 해도 널 그 자리에 놓을 수 없더라. 나는 이제 변화가 두렵고, 놓쳐도 아깝지 않을 그런 나이가 됐어. 하지만 넌, 여전히 필리어스야. 네가 모르는 15년 동안 나는 너 보다 곱절은 늙었어. 아마도 넌 중력 가까이 있어 몰랐을 테지만, 나는 내내 23층에 살았거든. 중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걸 알려준 건 너였어.  


우연히 널 다시 만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모험을 했어. 

네 어깨를 툭툭 치며 이야기할 때도, 오랜만이라며 악수를 나누던 순간에도. 나는 끝없이 널 향한 모험 중이었어. 네 스킨 향이 남은 내 손, 너의 웃음, 턱 밑으로 촘촘한 면도 자국의 검은 흔적들. 빠르게 눈으로 훑었고, 냄새 맡았지. 어느새 나에게는 널 향한 망원경이, 돋보기가, 안테나가, 전파 탐지기가, 온도계가 달려 있었어. 마치 우주복을 입은 사람처럼 그렇게. 어떤 발견, 어떤 파장에 나는 흔들렸지. 그렇지만, 그게 다야. 


이제 우주복을 벗는다. 안녕. 

서쪽으로 가, 필리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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