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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Oct 24. 2021

스타카토, 보다 정확하게

달려라, 산책

올 여름 부터 낭독 모임을 시작했다. 화요일 오전에 만나 읽기 시작한 책이 벌써 세 권째에 접어든다. 이른바 벽돌책 프로젝트로 <모비딕(허먼 멜빌, 문학동네)> 와 누구나 한번 쯤 들어 봤지만 완독한 이는 드물다는, 고전계의 유니콘 같은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프루스트, 민음사) >를 읽고 있다.

함께 읽을 때 가만 살펴 보면, 모임을 이끄는 우리 동네 철학자 쌤은 빨간 펜과 파란 펜으로 번갈아가며 밑줄을 치면서 감탄을 아끼지 않으신데, 책을 그렇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읽는 모습이 새로웠다. 나에게 책은 늘, 혼자 읽고 혼자 곱씹으며 혼자 책 귀퉁이를 조심스레 접었다 펴는 작업이었다. 그런 내가 얼마 전 부터 철학자 쌤을 따라 책에 밑줄을 긋고 낙서하고 앞 자리에 앉은 친구를 따라 페이지의 여백에 고래와 마들렌을 그린다.


얼마전 낭독모임에서 나는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에 대해 이야기하다 내가 가진 잣대가 얼마나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를 고백했다. 후학들에게 존경받는 지휘자이자 음악가,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많은 이가 즐기기를 바랐던 무대 위의 철학자, 그의 지휘는 아름답다마는 그의 사생활 만큼은 도저히 분리해 생각하기가 어려웠던 나는 아바도의 지휘 음반을 부러 찾아 듣지 않았다. (클래식 라디오에서 단골로 흘러나오는 게 아바도의 지휘 음반이어서 어떻게든 듣게 되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 동네 철학자 쌤은 내 이야기를 듣고 '모든 현상은 하나의 점일 뿐이며, 점을 연결해 맥락을 만들면 이데아가 생기고 그리하여 편견과 잣대가 발생한다'는 견해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을 소개해 주었다. 맥락을 만드는 것은 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당연한 결과라는 말도 함께.


점을 이어 형상을 만들기 좋아했던 나는 그간 많이도 만들어 낸 각각의 틀 안에서 사고하고 판단하느라 어떤 것은 놓치고 어떤 것은 외면했다. 틀에 끼워 넣기 위해서 애를 썼는데, 틀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버렸다. 안 듣는 음악이 있었고 안 읽는 책이 있었고 안 보는 영화가 있었다. 달리기도 같은 범주였다. 숨차는 건 싫어, 걸으면 됐지 뭘 또 뛰기 까지. 뛰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고 대단한 사람만 뛴다고 생각했다.


달리기 하나에 천지개벽 쯤 기대했던 건 아니었는데 매일의 기분과 생각이 신선하고도 생생하게 달라 붙는다. 호흡을 추진력 삼아 뛸 때, 순간이 다음 순간으로 나를 밀어준다. 달리기에는 순간만 존재한다.


스타카토, 호흡과 발자국 위에 찍히는 삶의 스타카토 같은 게 달리기 아닐까. 누르듯 튕기며 무시하지 않고 정확히 살아보라고 달리기가 말한다. 순간과 순간으로, 어떤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혹은 확장시키기 위해 달려보라고.


현상과 사실만 직시할 것. 맥락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는 걸, 사실과 사실을 연결 지어 평면과 입체를 만들어 결국 편견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내가 보는 시야는 실뜨개 안의 세상 정도가 될 테니까, 실을 끊기 위해 오늘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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