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 Oct 24. 2021

뛴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달려라, 산책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 역시 너무나 뛰기 싫은 날이었다. 감정에 지배당하는 영역이 속절없이 넓어질 때면, 마냥 고꾸라져있고만 싶어서 달리기를 멈추고 싶었다.

그렇지만 역시나 7월 1일인데, 시작부터 안 뛰면 안 되지. 하루키 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뛰지 않을 이유가 백 가지 여도 뛰어야 할 이유는 하나, 달리기를 하기로 했으니까. 안달려도 상관없지만 달려도 상관 없으니까.


습도가 80퍼센트를 넘어가는 양재천을 따라 달렸다. 한낮의 더위와 다르게 밤 바람은 시원했지만 곧 온 몸은 땀 범벅이 되었다. 축축한 티셔츠가 무거웠다. 1킬로미터만 뛰고 걸을까 하다가 그 만큼을 넘어가자 멈추고 싶은 유혹이 사라졌다. 하지만 숨이 가빠지고 호흡이 고르게 되기 까지 중간 중간 나는 멈추고 싶었다. 힘들다는 생각을 잊고 싶어서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하지만 들리는 건 내 숨소리 뿐. 힘들구나, 힘들어. 오늘도 역시 힘들어. 숨소리가 마치 그런 박자로 나오는 것 같았다. 2.8키로 반환점(내 나름의 반환점)을 돌아 오면서 내 앞에 뛰고 있는 한 노인의 등을 보았다. 같은 속도, 같은 걸음으로 뛰는 백발의 노인의 등을 따라 뛰기로 했다. 한번은 추월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검은 등을 따라갔다. 선바위 역 근처 부터 멈추지 않고 체육공원을 지나 성당까지.  덕분에 나는 4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고, 거기에 1킬로미터를 더 뛸 수 있었다. 단단한 노인의 등. 체격이 좋고 달리기가 빠른 젊은 이들을 페이스 메이커로 둘 수 없는 나 같은 초보 러너에게 그의 달리기는 알맞은 박자의 메트로놈이었고 지표였다. 어쨌든 목표가 거리라면, 그리고 멈추지 않는 거라면 어떤 속도든 언젠가 도달하게 되어 있다는 것.  


받지 못한 원고료, 아이의 학교 생활로 받게 된 뜻밖의 전화, 예측이 불가능하고 평온을 깨는 사건 역시 내가 무엇을 마음의 목표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어떻게든 평정을 찾게 될 것이다. 길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그럴 것이라고, 믿어나 보자. 뛴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안 뛰어도 달라질 게 없으므로 오늘도 달린 것 처럼.

작가의 이전글 There's no finish lin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