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산책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 역시 너무나 뛰기 싫은 날이었다. 감정에 지배당하는 영역이 속절없이 넓어질 때면, 마냥 고꾸라져있고만 싶어서 달리기를 멈추고 싶었다.
그렇지만 역시나 7월 1일인데, 시작부터 안 뛰면 안 되지. 하루키 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뛰지 않을 이유가 백 가지 여도 뛰어야 할 이유는 하나, 달리기를 하기로 했으니까. 안달려도 상관없지만 달려도 상관 없으니까.
습도가 80퍼센트를 넘어가는 양재천을 따라 달렸다. 한낮의 더위와 다르게 밤 바람은 시원했지만 곧 온 몸은 땀 범벅이 되었다. 축축한 티셔츠가 무거웠다. 1킬로미터만 뛰고 걸을까 하다가 그 만큼을 넘어가자 멈추고 싶은 유혹이 사라졌다. 하지만 숨이 가빠지고 호흡이 고르게 되기 까지 중간 중간 나는 멈추고 싶었다. 힘들다는 생각을 잊고 싶어서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하지만 들리는 건 내 숨소리 뿐. 힘들구나, 힘들어. 오늘도 역시 힘들어. 숨소리가 마치 그런 박자로 나오는 것 같았다. 2.8키로 반환점(내 나름의 반환점)을 돌아 오면서 내 앞에 뛰고 있는 한 노인의 등을 보았다. 같은 속도, 같은 걸음으로 뛰는 백발의 노인의 등을 따라 뛰기로 했다. 한번은 추월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검은 등을 따라갔다. 선바위 역 근처 부터 멈추지 않고 체육공원을 지나 성당까지. 덕분에 나는 4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고, 거기에 1킬로미터를 더 뛸 수 있었다. 단단한 노인의 등. 체격이 좋고 달리기가 빠른 젊은 이들을 페이스 메이커로 둘 수 없는 나 같은 초보 러너에게 그의 달리기는 알맞은 박자의 메트로놈이었고 지표였다. 어쨌든 목표가 거리라면, 그리고 멈추지 않는 거라면 어떤 속도든 언젠가 도달하게 되어 있다는 것.
받지 못한 원고료, 아이의 학교 생활로 받게 된 뜻밖의 전화, 예측이 불가능하고 평온을 깨는 사건 역시 내가 무엇을 마음의 목표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어떻게든 평정을 찾게 될 것이다. 길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그럴 것이라고, 믿어나 보자. 뛴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안 뛰어도 달라질 게 없으므로 오늘도 달린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