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합니다

시간의 위로

by 산책

돈이 되지 않는 일,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결과가 없는 일에 대해 과연 '일을 한다' 고 말할 수 있을까?

보내야 할 원고가 있었다. 돈이 되는 것도 누군가의 눈에 띄는 일도 아닌 것. 누가 묻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요?'

가방에 이것저것 챙겨 서둘러 걸어가는 내게 누가 물었다.

'반가운 약속이라도 있나보네.'

'아니에요. 뭐, 그냥.'

뒷말을 잊지 못하고 머쓱하게 웃었다. 일이 좀 있거든요, 오늘 까지 써야 할 게 있어서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 뒤에 이어질 어떤 물음들을 예상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스스로도 뭐라 이름 짓기에 부족하다 느꼈기 때문일 수 있다.

분명 할 일이었다. 전 날 부터 내내 머릿속에서 오늘의 할 일로 우선 꼽은 것이었음에도 나는 왜 대답을 주저했을까.

'짜잔, 빰빠라 빰!' 폭죽을 터트리듯 '실은 제가 이런 일을 해요.'라고 완성품을 내밀 수 있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막연하고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때를 상상하면서 여전히 무엇을 하는지 말하지 못하는 지금은 몇 년 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때에도 나는 자주 가는 카페 앉아 뭔가를 쓰고 있었다. 그곳에는 나만큼 자주 오는 외국인이 한 명 있었는데 카페 옆 영어 학원의 강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나에게 무엇을 하는지 물었다.

'글을 써요.'

'작가? 소설? 논픽션?'

그는 묻기 시작했다. 어떤 글을 쓰는지, 소설을 쓰는지, 어떤 내용인지.

막연하게 노트북 자판 앞에서 백스페이스를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음에도 파란 눈의 외국인에게는 '작가인양'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놀라면서 대답을 이어갔다.

'소설을 쓰고 있어요.'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매일 매일 나를 재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내가 쓴 글을 읽지 못할 테니,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라는 그는 내가 쓴 것을 평가할 수 없으니. 그 마음으로 나는 세상모르는 어린 아이를 앞에 두고 온갖 허풍을 늘어놓는 어른처럼 말할 수 있었다.

재화로 산정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일'이라 말하기 어려운 시대다. 사람의 생명마저도 돈으로 환산되는 사회. 여행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한 이들이 '여행자 보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헤드라인 인 시대. 돈이 되지 않은 일은 '잉여 짓'이라고 하는 지금. 타인의 평가와 잣대가 수시로 자신을 지배하는 요즘, 나는 '무용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한때는 글을 써서 (누구나 한 번쯤 상상했을 법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살기를 꿈꿨다. 과정은 생략한 채, 결과만으로 판단하는 세상에 나 역시 온 몸을 푹 담그고 있었다.

무용한 것이 부끄러웠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하는 행위가 내세울 일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에 누군가 물으면, '그냥, 뭐' 라고 얼버무렸다. 무용한 일을 하는 나 자신 역시 사회적으로 무용한 인간이라 생각했으니까.

평가가 없다면, 판단이 두렵지 않다면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림을 그려. 나는 글을 써. 나는 기타를 쳐. 나는 산책을 하고 도시를 기록해. 나는 프랑스어를 배워.

돈이 되지 않는 일이지만 돈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해. 누군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일. 그렇기 때문에 무용한 일을 할 때엔 어깨를 펴고 더 당당히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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