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위로
영화를 보고 나왔다. 언제 어디서든 영화를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걸 좋아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티켓 박스로 올라가기 전부터 풍기는 달콤한 팝콘 냄새도, 시간은 환한 정오이지만 들어서면 저녁인 듯 어두운 조도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커다란 스크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자의적으로 강제된 시간이다. 재미없다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리거나 흐름이 끊겼을 때 갑자기 해야 할 일이 떠올라 집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럴 수 없는 시간. 일단 표를 끊고 나면 오로지 영화를 보며 생각을 흘려보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시간(무의식적으로 팝콘 통으로 손을 움직이는 정도)라서 좋다.
그래서 인지 엔딩 크레딧을 마지막으로 영화관을 나서면 책 한권을 한 자리에 앉아 통째로 읽은 것처럼 마음속에 꽉 차는 무언가가 있다. 어떤 대사, 어떤 장면, 어떤 눈빛들이 채웠을 시간.
극에서는 대사도 유심히 듣지만 배우의 눈빛에 마음을 주는 편이다. 뚫어지게 보는 스크린 속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게 되는 순간, 그 순간 배우의 눈빛을 본다. 그리고 어떤 경우 눈빛에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흔들리는 눈동자, 채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감정을 담고 있는 눈동자에 마음을 빼앗긴다. 수많은 갈등의 순간이 담긴 눈동자, 둘 만의 역사가 스쳐지나가는 눈동자, 생의 전부와도 같을 결정이 오고가는 눈동자. 어느 순간 그렇게 배우의 눈빛에 빠지고 나자 그 다음부터 눈빛은 배우의 연기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이 영화에서도 그랬다. 뻔한 전개와 결말이 예상되었지만 어느 한 장면에서 나는 마음이 울렁였다. 흐려졌다 일렁이는 눈동자. 지금은 같이 있지만 이제 더는 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 이 순간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의 눈빛. 정말 끝이구나, 이제는 놓아줘야 하는 구나, 하는 그의 마음이 스크린 밖 내게도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문득 이국의 낯선 풍경들이 그리웠다. 낯선 건물과 언어, 생경한 사람들 속에 있고 싶었다. 막연한 어떤 것에 대한 동경, 그리움, 손에 쥘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만질 수 없음에 애 닳는 마음이 몽글몽글 솟아났다. 왜였을까. 포기와 체념이 대부분인 인생을 닮은 눈빛 때문이었을까. 그리워했었고, 이렇게 돌아서면 다시 그리워하게 될 앞으로의 그리움이 담겨 있는 눈동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눈빛은 나의 마음에 박혀 그리움을 피웠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곳,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사람, 만지고 싶지만 손 댈 수 없는 것들. 그렇게 그리워만 하다 끝날 것들. 영화는 해피엔딩이었는데, 나는 유쾌함 보다 더 큰 그리움을 마음에 담고 나왔다. 잘 닥은 마룻바닥처럼 반질반질하고 쨍한 하늘을 보니 그리움은 더욱 짙어졌다. 파란 하늘, 맑고 깨끗한 공기, 진짜 가을 날씨가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멀어 잡을 수 없는 것 말고, 가까이 있으나 손 댈 수 없는 것. 붙잡고 싶지만 잡히지 않는 마음. 지금의 순간, 행복한 마음, 끝내주는 날씨, 평온한 공기, 사라져버릴 것을 아는 그런 것들이, 곁에 있음에도 순간순간 사라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나의 그리움은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