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사라진다 해도

시간의 위로

by 산책

'이것 좀 보세요!'


놀이터에서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살구 빛의 매미 껍데기를 내밀었다. 보물이라도 되는 양 엄지와 집게손가락 두 개로 꼭 눌러 잡고서는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우와, 이거 어디서 주웠어? 매미 허물이구나?'


알아봐 주니 아이는 신이 나서 상황을 설명했다.


'저기 바닥에서 주웠어요. 저 오빠들은 엄청 많이 잡았어요. 살아있는 걸로요.'


아이가 가리킨 곳에는 남자 아이 세 명이 각기 색이 다른 잠자리채를 들고 은행나무 위를 목을 잔뜩 꺾은 채 올려다 보고 있었다. 한 아이가 들고 있는 채집통에는 이미 매미가 한 가득 이었다.


'저기 아래 놀이터에 가면 엄청 많아요.'


출퇴근길 지하철 2호선을 연상시키는 채집통 안의 매미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니 채집통 주인이 한 마디 했다. 아이들은 전리품처럼 자랑스레 채집통을 흔들어 대고는 다시 매미 잡기에 나섰다.

그래 봐야 한 철이다. 매미가 울고 가는 것은 그래 봐야 찬바람 불기 전까지 백일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베란다 창에 붙어 귀 찢어질 듯 울어대는 매미도 한 철이다. 맨 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동네를 걷다가 서늘해진 공기에 겉옷을 하나 더 챙겨야지 생각이 드는 때에 귀 기울여 보면 매미 소리는 한참 희미해져 있을 것이다. 미국에 사는 매미는 17년을 땅 속에 있다 나온다는 걸 읽었다. 그 외의 매미는 종류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평균 5년 정도 땅 속에 머무르다 짝 짓기를 위해 나무 위로 올라온다고 했다. 매미 허물을 손에 쥐고 있었던 아이 만큼, 아니면 더 오래 살았을 매미가 지금쯤 어느 나무에서 울고 있을지 궁금했다. 혹은 이미 제 할 일을 다 마치고 또 하나의 껍데기가 되어 땅 위로 떨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봐야 한 철, 그래 봐야 한 때.

훔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첫 문장을 읽었다. 내 것이 아니어서 가슴을 치게 하는 첫 문장이었다. 어쩌면 재능, 어쩌면 성실.

마주하게 될 때마다 감탄을 마지않는 그의 글을 읽게 될 때에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아니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의 반짝이는 문장은 긴 세월이다. 지금까지 그가 지내 온 시간의 집이다. 읽고 썼던 그의 날들이 단단하고도 윤기 있게, 한 입 베어 물면 고슬고슬 부서지는 잘 만든 주먹밥처럼 문장으로 서 있다. 아이의 손에 투명한 껍질로 남은, 매미가 벗어 놓은 집처럼 그의 땅 속 시간이 그렇게 문장으로 서 있다.

정말 그래 봐야 한 철인가, 정말 그래 봐야 한 때라고 무심히 말 할 수 있을까. 지상에서 가을을 맞기도 전에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 다는 것을 매미는 알았을까. 알고도 기를 쓰고 허물을 벗고 나무 위로 날아 짝을 찾기 위해 밤새 울었을까. 한 철 울고 마는 지상의 삶을 위해 깊은 땅 나무뿌리에 기대 수년의 시간을 지냈을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기어코 땅으로 나와 우는 여름의 매미. 그리고 그. 땅 속에서 살아 온 수년의 시간을 벗어낸 허물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무엇이 되고, 새벽녘 여전히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을 보며 쓴 그의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줄 말이다. 이렇게 사라진다고 해도, 매달려 있던 은행나무의 잎이 노랗게 변하고 첫 서리가 드는 계절을 마주하지 못하는 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므로, 앞으로 남은 시간은 한 여름 쨍한 햇볕 아래 맴 맴 맴- 쓰륵쓰륵 찌르 찌르 울 뿐이다. 그렇게 울다가 짝을 만나면 죽고 말아 낙엽처럼 떨어져 사람들 발에 밟히고 개미의 가을 양식이 된다 하더라도.

여기 어딘가 에도 내 시간이 모여 있을 것이다. 그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없다고 해도 누군가의 마음에 남지 못한다고 해도 그가 보아주지 않는 다고해도. 그래 봐야 한 철, 그래 봐야 한 때여도 사랑은 지금 여기에서 빛나고 나는 여기에서 울고 있다. 우리의 문장은 이렇게 삶 안에 서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단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