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내어 주기

시간의 위로

by 산책

도서관에서 반납 알림 문자를 받았다. 목요일까지 반납하시기 바랍니다. 책상 위에는 반쯤 읽고 덮어 둔 책이 있다. 책을 집어 들어 읽던 페이지로 돌아가기 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인터넷 서점에서 온 메일에는 신간 소식이 한가득 이다. 그중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는 시간은 삼십 분도 채 되지 않는다. 배송까지 하루, 길어야 이틀쯤. 그렇게 받아 놓고 쌓아 둔 책이 책장에 줄을 서 있다. 등을 보이는 책을 집어 들어 표지에서 페이지로 넘어가기까지는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좋은 와인이니 맛보라고 선물 받은 것이 한 병이 있다. 술은 맥주밖에 마실 줄 모르는 터라 와인 맛을 잘 몰라서인지 선뜻 마개를 따기 쉽지 않았다. 와인은 묵혀야 제 맛이라며 그대로 둔 지 어느새 3년이 지났다. 여전히 반듯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는 와인 병의 코르크 마개는 과연 올해 안에 열릴 수 있을까?

마음을 낸다는 것은 시간을 낸다는 것이다. 마음을 낸다는 것은 몸을 움직인다는 뜻이다. 생각 속의 일들을 현실 속으로 옮기는 일, 그것이 진짜 마음을 내는 일이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 반납일이 한참 지나서야 읽다만 상태로 반납 통에 넣은 빌린 책, 먼지 쌓인 채 책꽂이에 다소곳하게 등을 보이고 있는 산 책, 장식품 역할을 몇 년째하고 있는 그때 그 와인. 읽기 전에는, 마시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세계가 그곳에 있다. 마음을 내주면 동시에 시간도 몸도 내주어야 한다. 눈동자를 움직이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것, 가족이 되는 것, 연인이 되는 것 또한 그러하다. 그를 위해 시간을 쓰지 않으면 내 마음 역시 제자리일 뿐. 사랑한다는 백 번의 말은 그저 말로 그칠 뿐이다. 사랑한다면, 마음을 내어 주기로 했고 이미 내어 줬다면 시간 역시 나눠야 한다. 당연한 것은 무엇도 없으므로.

당신을 위해 편지를 쓰고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의 목소리에 대답하는 것. 귀찮아 미루고 당연하다 외면했던 것들을 돌아본다. 밥 먹었냐는 엄마의 전화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지내냐는 친구의 문자에 답장을 미루지는 않았는지, 이것 좀 보라며 내 손을 이끈 아이의 손을 잡았는지, 그가 내민 생일 선물 뒤에 담긴 그의 시간을 생각했는지. 그들은 나를 위해 시간을 냈다. 그 시간 나를 생각했고 나와 함께 하고 싶었다는 사실을 종종, 그리고 자주 잊는다.

그래서 마음에 다시 적어 본다.


마음을 내어주는 것은 시간을 기꺼이 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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