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위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에게 엽서를 썼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가면 그곳에서 꼭 엽서를 한 뭉치 사는 버릇이 생겼다. 처음에는 수집용 내지는 추억 보관용으로 엽서를 골랐다. 그러다 엽서를 쓸 일이 생기고 아끼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 쓰면서 마음먹게 되었다. '이 엽서를 다시 사기 위해서라도 그곳에 다시 가야겠다!' 그런 마음.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산 엽서는 그렇게 이곳의 소인을 찍어 보내곤 한다.
오늘도 그랬다. 여행지의 엽서답게 풍경을 담은 사진이 넓게 펼쳐진 엽서였다. 가로가 긴, 규격에는 어긋나지만 한쪽 벽에 붙여 두면 꽤 근사한 액자가 될 것 같은 사진엽서의 뒷면에 무심코 가로줄로 안부 인사를 적기 시작했다. 길게 한 줄을 채우다 아, 세로로 쓸 걸, 하는 뒤늦은 생각이 스쳤다. 역시 나는 이렇게 정형화된 사람, 같은 씁쓸한 생각까지.
몇 개의 규칙, 습관 혹은 버릇은 이미 몸에 배어 그것과 이것을 떨어뜨려 생각하기가 어렵다. 이를 테면 가로가 긴 엽서를 세워 쓸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는 것.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오른 편에 서서 손잡이를 잡는 것. 미루고 미루다 정해진 시간이 임박해서야 서두르는 것. 즉, '엽서는 가로 쓰기, 줄 설 땐 오른 쪽, 데드라인은 발끝의 잠재 에너지까지 끌어 올린다' 같은 공식 말이다.
어떤 것들은 스스로 눈치 채기 전에 몸이 먼저 실행하고 있고 가끔 이런 식으로 깨닫게 되는 날은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런 날은 내가 뭐였어도 마음에 안 드는 날이긴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갖고 있는 규칙 중에는 괜찮은 것도 있다. 여행지에서 꼭 엽서를 산다, 여행을 떠나기 전 친구 주소록을 챙긴다, 떠나기 전 엽서를 보낸다, 선물은 반드시 카드와 동봉한다, 줄까 말까 아까워 망설이는 마음이 들어야 진짜 선물이다(그러니 줄까 말까 망설일 때는 주는 게 맞다), 여행 중에 마음에 드는 물건은 그 자리에서 사야 한다(다시 떠나기 위해 남겨두었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지금 당장 여기에서 사자), 용건을 밝히기 전에 안부 인사를 먼저 전한다, 마음에 들어 온 글귀는 모퉁이를 접어 표시해 놓고 노트에 옮긴다, 그리고 꼭 연필로 쓰기, 때때로 하늘의 색을 확인하기, 기울어진 달과 차오른 달의 모습을 담기.
그래도 이처럼 스스로 기특할 만큼 괜찮은 규칙이 있어 나는 백 퍼센트 양장판 하드커버 책은 아니다. 말랑말랑한 규칙이 책 틈틈이 끼워져 있으니 말이다. 반가운 이의 엽서, 어느 해 봄에 발견해 종이 사이에 잘 넣어 둔 하얀 제비꽃잎, 붉고 진한 단풍잎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