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들

시간의 위로

by 산책

일요일에 본 나무와 화요일에 본 나무의 색이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계절의 색. 집 앞 은행나무의 잎사귀는 마냥 푸르른 것 같은데, 어느 날 고개를 들어 보면 그 또한 샛노랗게 변해 있을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기다린다. 이 하루가 지나가길. 지난하고 또 무료한 하루가. 변하지 않는 무채색의 하루가 지나 먼 나라에서 보내 온 한 장의 엽서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나길 바란다. 부럽기 만한 친구의 여행 사진첩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나길 말이다.

그러나 또 알고 있다. 결제창의 결제 완료 버튼을 누르지 않고서는 티켓을 손에 쥘 수 없고, 도서관의 유리문을 열지 않고서는 열흘도 더 전에 예약한 책을 손에 쥘 수 없다는 것을. 고요히 흐르는 하루 속, 그 안에 요동치는 결정의 시간들을 차가운 커피 한 모금으로 꿀꺽 삼키려 한다는 것을.

오래전 휴가지에서 산 엽서를 꺼냈다.

친구에게.

문구점에 들러 이런 저런 색의 펜을 꺼내 하얀 종이에 끼적이다가 결국 손에 쥔 건 검은 색 볼펜이다. 쉽게 박차고 나가지 못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안에서 꿈틀대는 무엇이 있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게 삶이다. 손에 쥔 검은 볼펜을 만지작거리며 그렇게 나를 위안한다. 그리고 엽서를 쓴다.

먼 나라에 있는 친구에게.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먼 곳의 집에 머물 친구에게.

내가 보내는 소소한 엽서 한 장이 여행 후의 그리움을 토닥여주길. 언젠가 내가 나에게 보낸 엽서를 받던 날이 그랬듯이. 시간은 말없이 흐르지만 꽤 많은 것을 흘려보내고 꽤 많은 것이 바뀌며 꽤 많은 것을 건네주고 간다. 엽서를 우편함에서 꺼내는 순간, 나의 시간이 그곳에 흐를 것이다. 2주일 전의 시간이, 2주일 뒤의 그곳에. 이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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