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는 말 보다 어렵다는 말이

by 산책

힘들다는 말 보다 어렵다는 말이 낫다.

둘 다 비슷한 말 같지만 힘든 시간은 견뎌내야 하고, 어려운 시간은 풀어가야 한다. 이 방법의 차이 때문에 힘들다는 말 보다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견뎌야 하는 것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어서 수동적이고 정적이다. 풀어내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가 깃들 수 있으니 뭔가 할 수 있고 하고 있다는 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차이를 몰랐을 때는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 너무 힘들어, 힘들어 죽겠어.

돌이켜 보면 어린 날의 사랑이 그랬다. 커가는 마음, 처음 겪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 힘들다는 말을 했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 널 힘들게 하니. 결국 등을 돌렸던 마음. 물리적으로 힘든 때가 아니면 가급적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이 어지럽고 복잡할 때 힘들다는 말 보다 어렵다는 말을 쓰게 된 것은 그때 이후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힘들다는 말에는 견디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고, 결국 나는 너를 혹은 이 시간을 견디고 참아내야 한다는 뜻이니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더더욱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걸 그러나 사실,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딱 정해진 답은 없겠지만, 관계나 상황에서 마주치는 어지러운 감정들, 복잡하고 마음 무겁게 하는 현실을 힘들다는 마음의 언어 보다 어렵다는 머리의 언어로 받아들이면 보다 단순해지기도 한다. 어쨌든 풀어내면 되는 거니까. 적어도 내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있으니까. 가만히 앉아 비를 맞는 것 보다 뛰어가 우산을 찾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러니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것은 어려운 일일까, 힘든 일일까. 이번은 어려운 일에 더 가깝다. 하나씩 풀다 보면 뭔가 보일 것이다. 풀이의 가장 우선은 단순한 일을 반복할 것, 일상의 시계추를 다시 움직일 것. 똑딱똑딱. 한숨을 한번 내 쉬고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을 먼저 시작한다. 다이어리를 꺼내 오늘 일정을 적어 내려가기, 내일 할 일 보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기,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기. 답이 나왔다. 빵, 책, 커피. 내일은 도서관에 들러 예약도서를 찾아와야겠다. 도서 검색 목록에도 아직 올라와 있지 않은 따끈한 신간을 일 번으로 받아 들고, 일요일 오후 12시까지만 문을 여는 빵집에 들러 밀크 잼과 버터를 아낌없이 발라 주는 빵을 사서 적당히 뜨겁고 고소한 라테와 함께 먹겠다. 지금 겪는 나의 시간이 그 안에 조금은 녹아 사라질 테고, 내가 겪는 이 어려움은 한 겹 바스러져 있겠지. 그러면 또, 나는 기분이 이끄는 대로 시간을 풀어갈 테다. 바위처럼 견디는 것 보다 돌멩이처럼 구르는 게 더 나을 때가 있다. 지금이 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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