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의 어머님이 쓰러지셨다.

큐시트 (Cue Sheet)

by 라희

큐시트 (Cue Sheet)

출근부터 세탁, 공연의상 준비, 그리고 공연 중 이동 동선과 체인지 의상정보가 모두 담겨있는 문서.

보통 공연기간 후반에 작업하며, 바이블(Bible)이라고 부르는 공연자료 중 한 가지이다.



띠리리리- ㄸ….

'알람을 잽싸게 꺼버리는 능력은 세계 1등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부은 눈을 힘겹게 뜬다.

몇 시냐…. 음…? 숫자가 왜 이래…?

내가 …. 미친 도대체 알람을 몇 번이나 미룬 거야?!?!


질펀하게 늦잠을 자버렸다. 그대로 멈춘 채 머릿속으로 출근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머리는 못 감는다 젠장!!!! 그래도 출근시간에는 맞출 수 있을 거야!!!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면서 바라본 얼굴에는 큼지막하게 휴대폰 자국이 나 있다. 핸드폰을 볼에 올려놓고 잤나 보다. 팔자주름도 같이 나서 아주 심술궂게도 생겼네. 난리 났다.

허겁지겁 가방을 들쳐 매고 나가려는데 엄마가 안방에서 달려 나오며 소리친다.



“도토리묵 했는데 어제!!! 아잇 먹고 가라니까!!”


”늦잠 잤어ㅠㅠ (접시를 보고) 아 이거구나-”


“자 봐봐. 먹어봐. 맛있다고. 진짜 잘 됐다고!”



엄마는 헐레벌떡 양념간장을 수저로 떠서 묵 위에 발라준다



“움훔후! (묵을 삼키고) 맛있어! 다녀오겠습니다-“



우당탕탕 집에서 뛰쳐나와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거의 극장에 다 와 갈 무렵, 나와 공연을 함께하는 동갑내기 크루에게서 카톡이 도착한다.



- 라희야 나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지금 당장 전주 가야 돼



카톡을 다 읽기도 전에 통화 버튼을 누른다.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 뒤로 자동차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이동 중인 것 같다. 나는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친구를 다독인다.



“어머님은 괜찮을 거야. 극장도 걱정하지 말어. 공연은 어떻게든 해낼 테니까-“


“응… 지금 운전은 남편이 하고 있고, 감독님께는 말씀드려서 급하게 오늘 대타 구하고 계실 거야. 지금 조수석에서 노트북으로 큐시트 쓰고 있으니까 작성되는 대로 보내줄게… 아 너무 급하게 쓰는 거라 이걸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걱정 말어라- 내가 뭐 하는지 네가 다 알고 네가 뭐 하는지 내가 다 아는데- 일단 보내줘! 모르는 게 생기면 전화해서 물어볼게.”


“응!”



전화를 끊자마자 줄줄이 이어지는 친구의 걱정 가득한 체크사항들.



- 그 안경하고, 혼인신고서, 빨래통.. 그리고 공연 끝나면 나오는 코트 주머니에 백지수표나 노트나 연필 나오니까 체크해야 하고… 잘 부탁해 큐시트가 완전하지 않아서 세세하게 챙기던 것들이나 이동큐가 누락일 수 있어.


- 응 나도 최대한 신경 써볼게.


- 연락하면 최대한 답장해볼게. 무조건 물어봐줘 자잘하게 챙길 게 많아서..



의상감독님의 카톡이 뒤이어 도착한다. 다행히도 공연 경력이 오래된 언니가 와줄 수 있다고 해서 한시름 놓고, 어서 극장으로 향한다.


도착하자마자 무대감독님께 현재 상황을 설명드리고, 혼자서 오늘 공연 의상을 모두 준비해야 하니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작업가방을 둘러메고 의상에 알코올을 뿌리고 스팀을 하고, 그새 카톡에 쏟아져 있는 큐시트를 출력하고 정보를 한번 더 체크한다. 오늘 대타로 도와주는 언니에게 설명을 해야 하기에, 의상들과 액세서리를 짚으며 확인한다. 친구의 담당은 여자주인공이었기에 드레스들도 조금 까다로웠지만 귀걸이와 목걸이 등 액세서리가 많아 챙길 게 많다. 다행히도 함께 체인지하는 구간이 많아서 익숙한 게 신의 한 수.


공연을 위한 프리셋을 하는 중에 대타지원군이 도착한다. 다행히도 내가 아는 언니였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오 언니!! 언니가 오는 거였구나 아 다행이다 진짜 ㅠㅠㅠㅠ 프리셋은 거의 다 되었는데, 무대 돌면서 의상 설명 해줄게요!”



무대를 함께 돌며 의상과 체인지를 확인한 후 한숨 돌리고 있는데, 출근한 배우들이 하나둘씩 소식을 듣고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의상실에 찾아온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데 진짜아… 어머님이? 오늘 갑자기 그러 신거래??”


“네.. 오늘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해요.. 그래서 전주 내려갔고… 지금 수술 중이시래요”


“아 진짜 어떡해….”


“어우 언니 울면 안 돼..!! 메이크업 지워져요..!! 괜찮을 거예요 수술 잘 될 거니까 우리 열심히 기도해요..!”



그렇게 어수선하게 시작한 공연은 정말 다행히도,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저녁공연이 마무리될 즈음,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고, 어머님의 회복을 위해 공연에 참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동갑내기와 함께 공연을 하는 게 흔치 않고 너무 즐겁게 공연했었던 지라 아쉬움에 볼멘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밝게 메시지를 보낸다.



- 극장은 걱정하지 마-! 어머님의 쾌차하시기를 기도하면서…! 우리 또 같이 공연했으면 좋겠다.


- 응.. 고마워 나중에 또 연락할게! 오늘은 너무 지쳤어…


- 응응 쉬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 한 통이 울린다. 언제쯤 도착하냐는 엄마의 전화다.



“아 응, 엄마. 가는 중이야. 그.. 나랑 같이 공연하던 친구 있잖아. 그 친구의 어머님이 오늘 쓰러지셔서…흡”



귓가에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하루 동안 나를 짓누른 긴장과 쓰러지신 어머님에 대한 걱정, 친구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들이 풀려 와르르 쏟아졌는지 전화기를 붙잡은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흐르는 눈물을 끄윽 꺽 쏟아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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